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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가 G Sep 04. 2021

순수한 목소리, 화끈한 이야기: 비비

뒷북 둥둥 지난 싱글 리뷰 & < 인생은 나쁜 X > EP 리뷰

오늘 함께 탐구해보고 싶은 인물: 비비 BIBI



얼마 전 머시론 피임약 광고를 유튜브에서 본 이후


조금 더 알고 조금 덜 안고 싶어


이 노랫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서 이제는 하다 하다 피임 광고 노래까지 내가 흥얼거리는구나 싶었다.

하다 하다 내가 피임약 광고 노래를 흥얼거리다니

요즘에는 피임 광고를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하면서 신기하기도 했고 이 가사를 쓰는 것이 어느 정도 맥락상 (?)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오 매우 기발하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비비는 2019년 SBS의 '더 팬'에서 준우승하면서 많은 팬을 끌어모으고 또 올해 4월에 '인생은 나쁜X' EP를 발매하면서 계속해서 상승선을 타고 있는 R&B 아티스트이다. 그녀가 찍은 광고 수만 봐도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PUMA/브랜디/KT) 요즘 얼마나 핫한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약간 나만 혼자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늦게 비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만큼 그녀의 노래와 앨범의 이모저모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딱 머시론 광고 노래 소절을 듣고 '아 노래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내 귀에 꽂힌 그 노래 소절은 바로 비비의 <나비>라는 곡을 광고 음악으로 쓴 것이다. 역시 좋은 노래를 들었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알면 알수록 매력 넘치는 비비. 작사/작곡/프로듀싱까지 하는 능력자이자 순수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도발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 멋진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I. 비누: do you know how I keep myself clean? 




<나비>를 들은 이후 비비라는 가수가 누구인지 검색하면서 가장 두 번째로 들었던 노래가 바로 '비누'다.  뒤에서 나쁜 말 하면서 나를 욕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던지자는 것을 비누로 몸을 씻는 것에 비유하는 매우 재치 있는 노래다. 비누 be new 말장난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BIBI naked 착하더라
 사람들이 말하더라 
저년 저거 이상했다
 머릿속에 어떤 것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솔직히 이 부분을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진짜 누가 내 욕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말투로 쓰인 가사는 듣는 이를 흠칫하게 만든다. 


'저년 저거 이상했다'라는 상당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걸 그냥 '이상하다'라고 치부해버리는 말, 마치 예전부터 잘못될 걸 아는 듯하는 조롱하는 말투, 남은 자기 멋대로 평가하는 말투  - 집단에 속해본 사람이라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남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는 그냥 흘려듣기에는 내가 너무 비참해지니 비비의 말 그대로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비누로 깨끗이 씻어내면
상처 입은 것들을 다 씻어내면
그 속에 든 이쁜 마음이 보여
너랑 나랑 같이 비누 하자 


노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절인데 이 부분을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비누로 씻어버리고 너도 나도 순수하고 예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욕을 하는 그 사람도, 무슨 이유 때문이든 욕을 먹는 나도 결국 그 안에 '이쁜 마음'이 존재하는 걸 비비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II. 나비 (광고 듣고 꽂혔던 바로 그 노래)

<나비>는 길고양이의 관점에서 쓴 노래다. 길고양이에게 잠깐의 애정과 관심을 주면서 과연 고양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 안 하지 않는가. 고양이를 쓰다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 피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예뻐해 주려고 해도 왜 도망갈까 싶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잠깐의 삶
길고 따분한 붉은 실이 아님
풀어줘 내 목줄과 이름표에
나비는 내가 아님"


비비는 이 노래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을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에 비유하며 노래한다. 자기 멋대로 남을 사랑하는 방식을 정의하는 모습이 마치 길고양이에게 마음대로 '나비'라는 이름을 제멋대로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나비>에 등장하는 이 고양이는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동시에 너무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고 귀엽게 경고한다. 내 멋대로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고양이에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처럼 말이다.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어 줘
한 발 한 발 다가갈 때
기뻐하면서 쓰다듬어줘"


III. 쉬가릿 (엄빠 주의)



나의 지극적인 한국인 마인드로는 '오 마이 갓'스러운 가사지만... 오히려 솔직해서 좋다. 


예전에 Cardi B가 작년에 WAP으로 대답 히트를 칠 때 말했다- 왜 남자 래퍼들은 되는데 여자라고 선정적인 랩을 하면 안 되는가? 


같은 맥락에서 한국 알앤비와 힙합 판에 남자 아티스트들도 선정적인 내용의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데 여자인 비비가 이런 노래를 부른다고 우리가 크게 놀라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누구는 여자 '몸몸몸 매'에 대해 거침없이 찬양하고 누구는 자꾸 '풀어 풀어 pour up'을 외치지 않는가. 


<쉬가릿>은 애절한 사랑을 원하는 여자가 아닌 그냥 심심풀이용으로 남자를 이용하는 여자를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R&B 노래에서 보기 드문 노래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은 터부(taboo)로 생각되는 소재를 거침없이 노래에 쓴다는 것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아티스트로서 매우 대범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담배 한 갑 절실해 널 피우고 난 다음엔
더러운 주위를 연기로 덮을래"


딩고에서 찍은 <비비의 노란 딱지> 시리즈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쉬가릿' 노래를 부르는 비비 본인은 정작 비흡연자다 (당연히 흡연자일 거라고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노래로 만드는 가수들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또 꼰대 마인드가 발동해서 '늬 부모님은 니가 이러는 거 아시니'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인터뷰에서 비비가 말했 듯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노래로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게 하라고 음악이 있는 거야. 그러니깐 음악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노래로 풀어내는 비비도 멋있지만 딸의 음악을 응원해 주는 아버지의 모습도 너무 멋있는 것 같다. 



IV. [EP 리뷰] 인생은 나쁜 X: 폭력에 대한 고찰

곡 구성이나 소재를 생각하면 상당히 깊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EP다.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가사를 곱씹으며 다시 들어보니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의 노래가 많아서 솔직히 놀랐다. 

5곡 밖에 없고 수록곡 역시 매우 짧은 편이라 전체 러닝타임도 짧은데 노래들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듯 전체적으로 잘 이어지는 느낌이다. 비비도 인터뷰에서 이번 EP의 곡 등장인물이 여러 번 나오기 때문에 자신이 숨겨둔 Easter Egg를 찾는 재미도 있을 거라고 했는데 하나의 콘셉트 앨범으로 느껴질 정도로 EP의 주제가 뚜렷하면서도 각각 개성 있는 수록곡들이 담겨있어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감상했다. 


1번 트랙: Umm...Life

what happen to you

오프닝 곡인 1번 트랙에서는 데이트 폭력이나 가학적인 연인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오프닝 곡을 통해 비비는 EP에서 연인 사이 나타날 수 있는 폭력적인 관계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삶의 힘듦이 우리에게 가하는 '인생의 폭력성'에 대한 내용을 잠깐 맛보기로 보여준다. 


"Oh my god bish you black and blue
Who did this to you
No no no no no no no no
Bish who have tough one
Boy who got rough one
Did it to me
So Don't blame him all the blues I have"


'black and blue' - 멍든 것을 흔히 이렇게 표현하는데 ' who did this to you - 누가 너한테 이 짓을 했어?'라고 말해도 노래 주인공의 대답은 'umm...'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마지막 벌스에 ' boy who got rough on did it to me, so don't blame him-인생 힘든 남자애가 그랬어. 그러니깐 걔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며 노래가 후반부로 달리는데 이는 끝까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을 감싸는 전형적인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래 해석을 할 때 가수가 실제로 그렇다고 말하기보다 앨범 속 '캐릭터'의 행동이나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 앨범 리뷰를 적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엘르 코리아 유튜브 인터뷰 중에서 비비는 <Umm... Life>에서 이 부분은 "저 사람이 여태 살아왔던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니깐 그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라는 뜻으로 썼다고 밝혔다. 내가 느꼈던 노래의 의미랑은 약간 다른 것 같지만 원래 예술의 묘미는 듣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에 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가사인 것 같다. 


2번 트랙: Bad Mad and Sad


"Black my bone and purple my eyes
You red my mind"


<Bad Mad and Sad> You red my mind (마음을 붉혔다/ read - 읽었다)처럼 워드 플레이가 돋보이는 노래다. 이 노래에서는 자꾸 상처 받으면서도 여전히 그 사람을 찾는 '중독'된 상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내게 부족한 것/ 채워줄 수 있는 건 너'라고 가사처럼 나를 함부로 다루는 그 사람에게서 오히려 부족한 결핍을 채움 받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중독되었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것을 찾는다는 의미 한다. '왜 계속 그렇게 당하고만 있어?'라고 물어도 이런 나쁜 관계 속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폭력적인 관계 안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갈급하고 벗어나기보다는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더욱더 의지하는 무한 악순환을,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고통과 힘듦을 이 노래가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3번 트랙: 피리 (PIRI the dog)

인터뷰에서 비비 본인이  밝혔던 것처럼 3번 트랙 <피리>는 마치 <나비>의 후속곡 같은 느낌이다. <나비>는 고양이답게 너무 가까운 관계를 밀어내고 있다면 <피리>는 미련하다 싶은 정도로 주인만을 바라보는 강아지다. 


"니가 나를 밀어내도 
나는 미련하니 함께 있어줘"


자기를 외면하는 주인을 강아지 피리는 미워하기보다는 혹여나 자기에게 그 이유가 있지 않은가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내가 더 예뻤으면, 내가 더 애교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자기에게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 주인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피리는 "아픈 말은 괜찮아"라고 말하면 단지 안겨있을 수만 있으면 다 상관없다고 말한다. 미련해 보여도 이것이 피리가 주인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4번 트랙: Birthday Cake

4번 트랙은 삶의 가장 밑바닥 그리고 거기서 만난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는 곡이다. 모두가 안된다고 말할 때 덜컥 그 말을 믿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남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깨버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나도 덜컥 그 말을 믿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도 1000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덜컥 100 주고 팔아버렸다는 가사처럼 말이다. 


"Nobody told me I get grands for hour and half
So I sold it for one hunnit


그렇지만 이 노래의 후반부에 가면 비비의 EP의 두 번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So I let myself go lose it 그냥 다 던져버렸어/ I couldn't allow myself to lose it, to lose it- 그렇지만 그냥 던져버릴 수 없었어." 남들이 말하는 대로 그냥 다 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여전히 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꼈다. 


5번 트랙: 인생은 나쁜X 

"(bitch)
인생은 나를 휘두르려 하지만
Sex Money Murder 
인생은 나를 휘두르려 하지만
Jump scare, jump scare 따위엔 안 당하지 난"


타이틀곡이자 마지막 트랙인 <인생은 나쁜 X>. 라이브 버전이 특별히 마음에 들어서 뮤비가 아닌 <잇츠라이브>로 했던 공연을 준비해봤다. 


EP가 폭력적 관계에 대해 다룬다고 봤을 때 <인생은 나쁜 X>는 이런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다짐이자 포부다. 뮤비의 주인공은 이렇게 묻는다 "왜 나만 그런 건가요. 대답 좀 해봐요." 그러자 여신이 대답한다. 


"인생은 원래 나쁜 X 같아" 


미국 래퍼 나스 (Nas)가 그의 1993년 노래 <Life's a Bitch>에서 말했고, 또 블랙핑크의 제니는 <Forever Young>에서 "다 필요 없어 주인공은 우리/Say life's a bish/But mine's a movie"라고 말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나쁘고 나를 힘든 게 하는 것이다 (물론 제니가 말하길 사랑을 찾은 이들에게는 예외인 것 같다.)


자기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비비는 <인생은 나쁜 X>에서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고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택한다. 그냥 일어서는 수준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나쁜 X를 상대로 맞짱 뜰 자세로 어디 한번 다시 덤벼보라고 외친다. 인생은 나를 놀라게 하고 중독시키고 휘두르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라도 꼭 넘어설 것이라고 말이다. 자기 연민보다 자기 믿음을 택한 것이다.  



비비는 순수함, 솔직함, 화끈함, 발랄함, 퇴폐미가 모두 공존하는 아주 매력적인 아티스트임에 분명하다. 


그동안 R&B 아티스트나 힙합 래퍼들이랑 주로 협업을 했다면 이제는 효연의 싱글 <Second>처럼 점점 대중과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지 얼마나 멋진 음악을 만들지 너무나도 기대된다.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가 기대되는 만큼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며 비비의 멋진 미래를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다.


This is only the beginning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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