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옷 구매 철학

– 30대 후반 애엄마의 옷은 전략이다

by 영우


20대에는 대학생이었고, 30대 초반까지는 데이트하던 직장인이었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거치며 어느덧 30대 후반의 애엄마가 되었다.

그러면서 내 옷장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동안 옷을 많이 사보았고, 많이 정리하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얻은 기준을, 지금 적어보려 한다.



1. 상의·하의 — 실험은 여기서 한다


셔츠, 니트, 자켓, 슬랙스, 데님 같은 기본 상하의는 처음부터 비싼 것으로 사지 않는 편이 좋다. 질 좋은 보세 제품을 여러 번 사보는 걸 추천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나에게 맞는 핏과 색감, 소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총알은 한정되어 있다. 몇십만 원짜리 옷 두세 벌로는 내 스타일을 파악하기 어렵다. 몇만 원짜리를 여러 벌 입어보고, 매칭해보며 경험치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하얀색이라도 크림 아이보리는 퓨어 화이트는 아예 다르다. 화이트 셔츠가 다 같은 화이트가 아니다.

자켓은 오버핏과 정핏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옷이 될수 있다.

어울리는 허리선 높이도 사람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이트 체형은 과한 하이웨이스트가 안어울린다. 웨이브 체형은 하이웨이스트로 비율을 보완해 주는 경우도 많다.

상의 디테일이 보완이 되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과해지는 사람도 있다. 아이유를 보고 프릴, 리본같은 디테일이 들어간 옷을 샀다가 바로 장농행이 된 경험이 있다.




2. 나이와 역할은 스타일을 바꾼다


image.png 그냥 매일 출근하는 사람

나는 몸에 딱 붙는 옷이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래서 30대 초반까지는 그런 옷을 많이 샀다. ‘남심저격 여친룩’ 같은 것들, 각선미를 강조하는 미니스커트들. 지금도 입으면 예쁘긴 하다.


하지만 전문직 애엄마가 된 지금, 그 옷들은 더 이상 TPO에 맞지 않는다. 아이 눈높이에 맞추려면 수시로 몸을 숙여야 하고,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야 한다. 그 상황에서 브이넥이나 미니스커트는 실용적이지 않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예전에 산 옷들은 대부분 정리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체형도 변한다. 나는 출산 후 임신 전보다도 몸무게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흉곽과 허리둘레가 미묘하게 넓어졌다. 옷이 들어가긴 해도 핏이 달라진다.


지금(겨울)기준으로 잘 입는건 모크넥/하이넥 니트, 셔츠, 롱스커트, 세미 와이드 슬랙스다. 아이가 잡아당겨도 괜찮고, 어디 갈때도 편하게 앉을수 있어서 좋다.




3. 실용성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셔츠, 블라우스, 슬랙스, 스커트는 가능하면 링클프리 소재가 좋다. 출근룩으로 여러 장을 돌려 입고 있는데 만족도가 매우 높다. 바쁜 직장인에게 스팀다림질은 사치다.


니트는 소재를 보고 사야 한다. 몇 번 안 입어도 보풀이 생기고 무너지는 니트는 결국 스트레스가 된다. 요즘은 캐시미어 100% 니트도 10만 원 내외면 가능하다. 그런 걸 사는 게 낫다. 헤비게이지나 가오리 니트는 추천하지 않는다. 외투 안에 넣어 입기도 어렵고, 체형이 부해 보인다. 얇은 니트를 입고, 추우면 가디건을 걸치는 편이 낫다. 체온 조절도 훨씬 섬세하게 할 수 있다.




4. “좋은 거 사서 오래 입어”에 대하여


어머님들의 “좋은 거 사서 오래 입어”라는 말은 절반만 맞다. 그분들도 20–30대에는 이것저것 입어보고, 지금 생각하면 불필요한 것도 많이 사보셨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경험 없이 바로 ‘좋은 것’만 고르기는 어렵다.


굳이 처음부터 돈을 쓰고 싶다면 의류보다 명품 쥬얼리 국민템을 추천한다. 까르띠에 다무르라던지, 반클리프 스위트 같은 기본 디자인은 유행이 바뀌어도 남고 가격방어도 잘 되는 편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어머님들의 ‘화사한것 좀 입어’도 귀 기울여 들을 필요없다. 특히 가을뮤트들은 귀를 막읍시다. 남이 보기 좋은 색과, 내 얼굴을 살리는 색은 다를 수 있다.




5. 원피스 — 욕심을 줄이는 카테고리


하객룩이나 격식룩은 브랜드 있는 것으로 계절별로 한두개면 충분하다. 이 카테고리가 네다섯 개를 넘기 시작하면 입을 일은 없는데 옷장만 차지한다. 예뻐서 사두고 못 입는 옷은 스트레스가 된다.


일반적인 봄·여름 원피스는 비교적 쉽다. 취향껏 입어도 된다. 하지만 겨울 원피스는 어렵다. 소재가 두꺼워 둔해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라인을 살려야 하는 체형이라면 모직이나 트위드 원피스는 신중해야 한다.

겨울에 추천할 만한 건 하이넥에 몸에 맞게 떨어지는 니트 원피스. 기장이 너무 짧지만 않으면 단정하면서도 은근히 관능적이다. 외투 안에 이너로도 좋다.




6. 코트·패딩 — 외투는 급을 올려도 된다


외투는 가능하면 백화점 브랜드 이상으로 산다. 좋은 외투는 언젠가 다시 입는다. 코트만큼은 고급스러운 것으로 사도 된다. 특히 어깨선이 정확히 맞는 테일러드 코트. 봤을때 왠지 단정하고 재미없어 보이면 금상첨화이다. 그건 유행이 아닌 구조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입을 코트이다.


오버핏은 신중해야 한다. 겨울옷은 기본적으로 부한데, 거기에 어깨까지 오버핏이면 산적처럼 보일 수 있다. 굳이 사야겠다면 많이 입어보고, 나에게 어울리는 실루엣을 찾은 뒤 사는 게 좋다.


소재는 캐시미어 혼방을 추천한다. 울 함량이 높다고 다 좋은 코트는 아니다. 코트는 가벼워야 손이 간다. 캐시미어가 소량만 섞여도 무게감과 질감이 달라진다.


패딩은 국내 브랜드 백화점·아울렛 정도면 충분하다. 편하게 입는 이불 같은 패딩 하나, 정장 위에도 어울리는 슬림한 패딩 하나면 된다. 한겨울에도 격식을 갖춰야 할 날은 온다.




7. 신발 — 예쁨보다 편함


신발은 나이가 들수록 착화감이 우선이다. 보세든 브랜드든 상관없다. 아이 엄마라면 플랫슈즈나 로퍼처럼 급하면 바로 벗을 수 있는 신발이 좋다. 다만 플랫이라고 무조건 편한 건 아니다. 굽이 전혀 없으면 오히려 발이 더 아프다. 바닥이 얇은 신발은 오래 걷기 힘들다. 오란같은 예쁜 슬리퍼류는 생각보다 발을 혹사시킨다.


겨울 신발은 어렵다. 롱 어그는 따뜻하지만 길어서 번거롭고, 털 플랫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털 크록스는 기능은 좋지만 역시 못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어그 타즈만 신는다. 슬리퍼처럼 생겼지만 발등을 잡아줘 벗겨지지 않고, 따뜻하면서도 신고 벗기 편하다.


예쁜 신발이 아니라, 생활을 편하게 만드는 신발이 결국 남는다.




8. 핏과 기장에 대하여


나는 어깨 오버핏에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한국인 체형에는 어깨가 정확히 맞는 편이 더 깔끔하다. 정 오버핏을 입고 싶다면 어깨는 어느 정도 맞고, 어깨 아래부터 여유 있는 디자인이 낫다. 차정원이나 김고은처럼 오버핏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체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스커트는 확실한 길이가 좋다. 아예 미니이거나, 아예 롱.

미니는 엉덩이부터 허벅지 라인이, 롱은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의 세로 라인이 살아난다. 무릎 길이는 애매하다. 다리를 가장 두꺼운 지점에서 가로로 끊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미디 스커트는 보기에만 안정적이고 입을때는 그렇지 못하다.




20대의 옷이 ‘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옷은 ‘나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일이다.


유행보다 구조를 보고,

욕심보다 역할을 생각한다.


30대 후반 애엄마의 옷은, 결국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