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맞나?
'○○○씨가 강릉 오는 건,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 안 하는데, 우리 집 와서 자는 건 싫습니다.' 다시 한번 읽고, 발송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그의 당황하는 얼굴 표정 떠오른다. 그와 이제 다시는 못 만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통화를 마치며 그는 말했다. "에이! 복잡한 서울에서 만나지 말고, 강릉에서 봐요!"라고. 하루 이틀 생각하다, 결심했다. 앞으로 그와 만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수십 년 전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났다. 이후 부서, 근무지가 달라져도 수시로 만났다. 아이들을 캐나다 조기 유학 보내면서도 함께 고민했다. 인터넷 벤처 붐 당시에도 많은 돈을 함께 투자했다.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했지만 믿고 의지하는 관계였다. 당시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만의 성격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서로가 퇴직 후에도 가끔씩 만났다. 그가 까칠한 성격이었지만, 나는 받아들였다. 한 번은 내 사무실 안 회의용 탁자 위로, 두발을 올려 뻗어서 지껄이기도 하였으니, 그의 무례함은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강릉 이사 온 후 첫 통화에서 그는 말했다. "아 강릉 이사 가셨나요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 만나지 말고 강릉 갈게요." 전화 끊고 잠시 고민하였다. '이번에 오면 당연히 우리 집에서 잘 건데, 현관 비밀번호 알고 나면 수시로, 내가 있거나 말거나 무조건 당연히, 내 집에서 잘 텐데, 한, 두 번은 몰라도, 얼마나 자주 올지? 염치없는 친구가.'라는 걱정 끝에, 결국 문자를 보냈다. '강릉 오는 건 상관없지만, 우리 집에서 자는 건 싫다.'라고. 그 후 지금까지 그 친구와는, 통화도 문자도 하지 않는다. 절연한 것이다. 굳이 만날 이유도 없다. 더 이상 참고 싶지도 않다.
그 친구를 지금 생각해도, 다시 연락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면 안 되지'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직장에서 영국으로 같이 간 동료. 당시 그는 미혼이었기에 나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귀국 후에도 수시로 같은 부서 타 부서 근무하고, 수십 년 알던 동년배이다. 어느덧 친구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퇴직 후 와이프 직장 있는 대구로 내려갔다. 내가 대구 갈 때면 한두 번씩 연락하고 지냈다. 한 번은 '만나자'는 나의 제안에 답이 없었다. 나의 문자 읽지도 않는다. '나를 차단했나?'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인지? 왜 그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님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라고 했건만, 맞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