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상담일기] 18회기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아픔

by 정인

상담을 복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상담에서 꺼내는 기억 자체가 좋은 기억도 아닐뿐더러 상담내용들을 복기하면서도 내가 어떤 걸 잊은 건지 골똘히 생각해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이 기록 역시 1주일이 지나서 작성하는 것이라 상세한 기록은 아니지만 간단하게라도 남겨본다.


저번 상담의 주제는 팀장님과 관련됐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팀장님과 어떤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던 중 가정 내에서 있었던 사건을 꺼냈다.


결혼한 동생이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여느 신혼부부가 그렇듯, 동생은 남편과 집안일 분배에 관해 조정하는 과정 중이어서 가족들과 '본인이 남편에게 느끼는 아쉬움과 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해 공유했다. 이를 듣던 아버지는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다. 동생이 입을 뗄 때마다 이야기를 끊었다. 계속 이야기에 끼어들어서 "네가 더 하면 되잖아."로 일관하시면서 동생을 비난하셨다.


이와 관련해 설명을 덧붙여보자면, 본인이 집안일을 평생 해본 적 없는 분이라 그럴 것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돈을 한 푼도 못 벌어오시고 어머니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장으로 일하실 때도 집안일에 손대지 않으셨다. 그래서 동생이 '식사가 끝난 후 빈 그릇을 테이블에 그대로 놔둔 채 핸드폰만 보며 화장실 가는 남편의 모습'에 내가 식모가 된 것 같다,며 힘듬을 토로할 때 본인 욕을 듣는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참고로 아버지의 세계 속에는 갈등-전개-문제해결이란 없다.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 갈등의 원인(높은 확률로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찾아서 비난하거나 침묵시키고 원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 절대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세상에서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아버지는 집안 내에서 justice, 본인이 정의 자체이자 대법관 정도의 위치에 계시다고 스스로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문제를 종식시키곤 하신다.


그날도 동생한테 "집안일을 혼자 안 하고 싶으면 너도 돈을 더 벌어오던지" "네가 하는 게 뭐 있어." (동생은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라고 쏘아붙이시고, 갑자기 나한테는 "약에 기댈 생각하지 말고 의지로 체중감량하라"는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공격하셨다. 아무도 아버지가 이야기에 끼길 원하지 않았지만, 계속 이야기 진행이 안되게 막으시면서 온 가족 조리돌림을 하셔서, 나는 화가 난 나머지 "그만해!! 지랄하고 자빠졌다는 소리 그만하고! 자꾸 짜증 나게 굴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동생과 함께 밤산책을 나갔다.


이야기는 그 다음 주로 이어진다.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치신 아버지는 "오렌지 주스 좀 따라와."라고 소파에서 주문하셨다. 내가 오렌지 주스를 채운 잔을 소파로 가져갔더니 컵을 흘끗 보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고는 텔레비전을 보는데 집중하셨다.


그 사소한 제스처에 속이 들끓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식당 종업원에게도 그러지 않으실 분인 걸 안다. 집안에서는 가족들을 '너희들은 교육이 안 되는 짐승'이라고 비난하시는 아버지는 밖에만 나가면 예의 바르고 온화한 사람으로 돌변하신다.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하면 모가지가 꺾이기라도 하는 듯 거만하게 구는 아버지는 외부에서 종업원이 반찬 리필을 해주면 고맙다고 말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다. 나는 아버지에게는 처음 들어가 본 식당 종업원만도 못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식사 후 어머니와 산책을 나가서 "테이블을 가리키는 아버지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하며 화를 냈다.(그날 최고의 실수다) 어머니는 항상 그렇듯 그걸 아버지에게 "정인이가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줬는데 당신이 손가락만 까딱해서 화가 났대."라고 산책 다녀온 직후에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쳤다. 그러고 아버지에게 "누군가 가져다주면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행동 교육을 시작하셨다.


이에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쟤도 나한테 고마워 안 하는데 내가 쟤한테 고마워해야 해? 나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해. 지 앞가림이나 해야지."라고 하시는걸 부엌에서 그대로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분노에 차서 눈물이 줄줄 났다. (어머니께는 이후에 내가 공유하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재차 말씀드렸다.)


이 순간에 대해 설명할 때 상담선생님 앞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난 내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당신에게 뭘 바란 적이 없어! 고맙다는 말조차! 내가 바란 적도 없는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해!



아버지의 나르시시즘은 오랜 기간 익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 가족은 참된 인간인 아버지와, 못나고 능력 없고 게으름만 많은 어머니와 자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생 남편이 가족구성원에 편입되면서 동생 남편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동등한 인간의 위치가 되었다. 30년동안 아무도 올라가지 못한 그 위치를 동생 남편은 (본인이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한 순간에 거머쥐었다. 그 대단한 "아버지가 인정한 인간"과 결혼한 여동생은 여전히 저 아래 하찮은 곳에 나와 같이 있는 채로.



-예전에야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고 사세요 평생" 상태예요. 그렇다고 동생 남편이 부럽거나 미운건 아니에요. 사실은 불쌍할 지경이에요. 허우대만 멀쩡한 집에 사위로 들어와서, 당직 끝나고 아버지가 식사하자고 하면 피곤해도 나와서 아버지가 따라주는 술을 계속 먹어야 했거든요. 저는 그것도 일종의 갑질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아버지의 인정을, 아버지와 동등한 자리를 너무도 쉽게 한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가 내주는 과정을 보는 게 화가 났군요. 지금은 그 자리가 허상인 걸 알고, 욕심나지 않더라도요.


-그게 진짜 이상해요. 왜 그렇게 그게 화가 날까요? 저는 아버지를 포기한 지 너무 오래돼서 보통은 어떤 개소리를 해도 화가 안 나거든요.


-지금의 정인 씨가 아버지를 포기했더라도, 어렸을 때의 정인 씨는 아버지의 가족에 포함되는 것을 포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지금 화를 내는 정인 씨에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는데 거부당한 기억이 있는지 물어보겠어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정말 이상하게도, 뜬금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피구를 자주 했죠. 선생님이 아이들 보고 편을 나누라고 했어요. 아이들은 대개 반장과 부반장, 또는 반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애들이 한 명씩 친구를 데려가는 식이었죠. 저는... 빠른 년생으로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아이들과 체구 차이도 났고, 아마 정신적인 성숙도도 차이가 났을 거예요. 늘 반에서 가장 작은 애, 운동을 지지리도 못하는 애였어요. 반에서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고요. 항상 마지막에 동그마니 남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 혹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죠.


-다른 친구들이 다 편을 이루고 혼자 남은 정인 씨의 기분은 어땠나요?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나를 원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런 기분이요.


-그 아이는 팀에 선택되고, 들어갈 수 있길 바랐겠군요.


-네. 마지막까지 남고 싶지 않았어요. 특히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요.


-그래요. 그 아이 옆에 잠시 있어줄래요? 그리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봐요.



생각보다 아이는 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알아서 팀을 정하라 하지 말고, 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즐거울 수 있으니까요.


-맞죠. 선생님이 거기까지 신경을 못 쓰신 거예요.


-물론 그게 선생님 탓인 건 아니지만요... 아마 모르셨겠지만, 알고 신경을 써주셨더라면 더 좋았겠죠.


-그 아이는 지금 혼자가 아니죠. 어른이 된 정인 씨가 옆에 있으니까요. 이제는 그 아이가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팀을 정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오... 네. 제가 대신 말해줄게요.



담임선생님한테 말씀을 드리다가 순간 인상을 썼다.



-사실은요, 그때 선생님께 어린 제가 말했어도 선생님은 들어주셨을 것 같아요. 왜 그때는 말할 생각을 못했을까요?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린 정인 씨가 평소에 무언가 요구하는 걸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깊게 자리매김했을 수도 있죠. 그러면 아이는 원하는 게 있어도 말하기가 무척 힘들어요.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거 거든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물어보셨다.



-빠른 년생이면 다른 아이들과 거의 1년 차이가 나는데 어렸을 때는 그게 더 두드러져 보이죠. 정인 씨가 학교를 제 나이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요?


-음. 그러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좀 더 나았을 것 같아요. 발달 상태도 비슷하니까요.


-그럼 그 아이에게 1년 더 학교를 늦게 들어가는 제 나이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냐고 물어볼까요? 자기보다 큰 아이들 사이에 껴서 위축되어있지 말고, 자기와 체구도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요. 한 학년 내려가는 게 그 아이가 뭔가 못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 자리였기 때문이니까요.


-좋대요.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니까, 당시 한 학년 아래로 내려가면 애들 사이에서 중간은 갔을 것이다. 적당히 잘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내가 "난 친구들에 비해 키도 작고 몸도 약하고, 뭐든 늦되는구나"라고 제멋대로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을에 피는 꽃을 봄꽃들로 가득 찬 화단에 가져다 두고 넌 왜 빨리 피질 못하냐고 야단쳤던 꼴이다.


난 아이가 친구들을 사귀러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스탠드에서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 학년 내려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내가 겪었던 것보다야 수월하겠지. 내 학창 시절의 힘듦을 저 아이는 겪지 않아도 되겠지. 그걸로 가슴 한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상담을 마치며 선생님은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슬픈 감정이 아버지로 인해 자극받은 상태에서 팀장님과의 갈등이 도화선이 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때만 해도 이다음 주 상담에 또 팀장님과의 갈등을 주제로 들고 올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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