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남편이 "월요일에 시간 되면..."이라고 운을 뗐다.
나는 대뜸, "어디에 가야 해?"라고 대꾸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같이 영화나 볼까?" 그러면서 꺼내 놓은 흑당 팝콘.
오늘은 나란히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를 상영 스크린 삼아 철지난 영화 인셉션을 봤다. 함께 영화를 보는 일도 한참 철지난 행동이어서, 숙제를 하지 않고 놀러 나온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기를 돌리고(청소기에서 소독차 소리가 났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모으고 돌아다니며 먼지를 닦고 있다. 그가 특별히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고스란하다"고 느낀다.
거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잔잔하게 파열하는 생활 소음을 들으며 오늘은 날씨가 좋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밤에는 한기를 느끼며 이불을 끌어 올릴 수도, 아침에는 문을 열다 재채기를 할 수도 있다. 우리의 관계도 날씨 같은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