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VOL.6 <춘천>

춘천, 시민의 거실이 된 붉은 벽돌의 성채

by 히치하이커

제 기억 속 춘천은 1998년, 중학교 1학년 때에 멈춰 있었습니다.


당시 소풍으로 갔던 강촌역. 친구들과 자전거를 빌려 타고 북한강변을 내달리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반듯하게 구획된 신도시 아파트 숲에 갇혀 지내던 '아파트 키즈'에게, 거친 날것의 공기가 흐르는 춘천은 그저 '지방'에 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 뛰는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강렬했던 하루를 끝으로, 춘천은 제 삶에서 오랫동안 잊힌 도시였습니다. 먹고살기 바빠서였을까요, 아니면 제주라는 섬에 정착해서였을까요. 어른이 된 후로도 이상하게 춘천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 머릿속 춘천은 철저히 '야외의 도시'였다는 점입니다. 20여 년간 가보지는 못했어도, 춘천 하면 으레 호수나 강변 같은 탁 트인 풍경만을 떠올렸으니까요. 그러니 '박물관'처럼 꽉 막힌 실내 공간은 애초에 제 상상력 안에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러 지난겨울, 저는 드디어 춘천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습니다. 모처럼 긴 설 연휴를 맞아 어디론가 떠나고는 싶었지만, 이름난 관광지들의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춘천 시내권의 숙소들은 의외로 가격이 꽤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래, 이번 연휴는 춘천이다.' 숙소 문제가 해결되자 마음이 가벼워졌고, 우리는 기왕 가는 김에 남들 다 가는 곳은 제대로 찍고 오자며 스마트폰을 켰습니다.


그렇게 검색을 통해 완성된 우리의 여행 코스는 춘천의 랜드마크인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명물인 '춘천닭갈비', 그리고 SNS에서 요즘 제일 핫하다는 '국립춘천박물관'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박물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압도적인 비주얼의 인증샷들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증명된 '춘천의 기적'


박물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활기는 단순한 연휴 특수가 아니었습니다. 빈백에 누워 쉬는 사람들, 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

궁금해서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제가 목격한 그 풍경은 데이터가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8만 7천여 명에 불과했던 관람객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2024년에는 무려 49만 4천여 명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했습니다. 불과 4년 만에 5배 넘게 폭증한 것입니다.

이 데이터가 말해주는 사실은 명확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박물관에 공부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놀러 오고, 쉬러 오고, 위로받으러 온다는 것.

도대체 붉은 벽돌 안에는 무엇이 있길래,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었을까요.


첫인상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마치 유럽의 오래된 성채 같기도 하고, 숲 속에 숨겨진 요새 같기도 합니다. 200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는 이 건물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주변의 자연을 붉은 벽돌이라는 캔버스에 담담하게 받아내고 있습니다.

보통의 공공기관 건물들이 권위적이고 차가운 회색빛을 띠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긴장을 내려놓게 됩니다. 이곳은 우리를 가르치려 드는 곳이 아니라, 환대하려 기다리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본관 로비(중앙홀)로 들어선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검색으로 미리 봤던 사진은 실제 현장의 압도감을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광활하게 뚫린 로비 정면, 2층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계단 위로 가로 28미터, 세로 3.6미터의 초대형 LED 스크린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비주얼보다 더 충격적인 건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계단 곳곳에는 푹신한 빈백과 방석들이 무심하게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바쁘게 전시실로 이동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 혹은 반쯤 누워 화면 속 파도를 바라보며 물멍(물 보고 멍때리기)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연인,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노부부, 여행의 피로에 깜빡 잠이 든 청년. 적막하고 엄숙해야 할 박물관 로비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수준 높은 거실로 변모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빈백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 늘 지갑을 열어야 했습니다. 쾌적한 의자에 앉으려면 커피를 사야 했고, 멋진 뷰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으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내지 않고 당당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불가능에 가까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춘천국립박물관은 그 상식을 기분 좋게 배반합니다. 입장료는 무료. 주차비도 무료. 그런데 공간의 품격은 웬만한 5성급 호텔 로비나 유료 미디어 아트 전시관 못지않습니다.

이곳은 말합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의 품격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우리가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시민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는 묵직한 감동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로비에서 마주한 거대한 파도의 여운은 전시실 입구에서 끊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벅찬 감동은 문턱을 넘어 유물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 깊숙한 곳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춘천국립박물관의 미디어아트는 단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화려한 쇼윈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20년 전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던 저의 무딘 감각을 깨워주는, 일종의 우아한 전주곡이었습니다.


이미 로비에서 시각적인 샤워를 마친 덕분일까요. 전시실로 들어서는 제 마음은 이미 유물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디어아트는 화려함을 한 꺼풀 벗고, 유물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훌륭한 조연으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창령사 터 오백나한'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투박한 돌에 새겨진 나한들의 얼굴. 자칫하면 그저 '표정이 재미있는 돌덩어리'로 보고 스쳐 지났을 이 유물들을 앞서 미디어아트를 통해서 보고 왔기에 몰입감이 높았습니다.


봄의 꽃비가 내리고, 여름의 소나기가 스치고, 가을의 낙엽이 지고, 겨울의 눈이 쌓입니다. 영상이 변할 때마다 나한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 보였습니다. 눈보라가 칠 때는 수행의 고단함이, 꽃비가 내릴 때는 해탈의 미소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깨알 같은 설명문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나한들이 수백 년 전 어느 산사에서 어떤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조각한 장인이 어떤 마음으로 돌을 쪼았는지.

미디어아트는 유물을 가리는 방해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리관 속에 갇혀 박제되어 있던 유물에 다시 숨을 불어넣고, 따뜻한 피를 돌게 하는 심폐소생술이었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옛날이야기가 좋아 사학과에 진학했고,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역사의 파편들이 제게는 늘 흥미진진한 보물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내내, 그리고 졸업 후에도 저를 따라다닌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사람들은 지루해할까?"

친구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꺼내면 하품부터 하기 일쑤였고, 박물관은 수학여행 때 억지로 끌려가는 곳, 혹은 비 오는 날 시간을 때우는 지루한 장소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저는 그 간극이 늘 아쉬웠고, 때로는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이곳 춘천국립박물관의 붉은 벽돌 안에서, 저는 그 오랜 의문에 대한 답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역사'라는 콘텐츠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담아내는 우리의 그릇이 너무 낡고 투박했던 탓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미 현실감 나는 영화 같은 영상 매체가 있고, 우리는 그동안 대중에게 "이건 중요한 거니까 무조건 외워", "이건 국보니까 엄숙하게 봐"라며 일방적인 짝사랑을 강요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미디어아트가 흐르는 전시장, 그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과 연인들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활자로 박제될 때가 아니라, 빛과 소리를 입고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는다는 것을요.


춘천에서 발견한 '빌바오 효과'


스페인 북부의 쇠락해 가던 공업 도시 빌바오. 그곳을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킨 건, 티타늄으로 지어진 기묘한 건물 '구겐하임 미술관'이었습니다.

건축물 하나가, 잘 만든 문화 공간 하나가 도시의 운명을 바꾼다는 이른바 '빌바오 효과'. 저는 감히 이곳 춘천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132916865.4.jpg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빌바오=AP 뉴시스>

2024년 한 해,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는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춘천국립박물관이 더 이상 케이블카나 춘천닭갈비의 보조 관광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강력한 자석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빌바오에 은빛 티타늄이 있었다면, 춘천에는 숲 속의 붉은 벽돌이 있습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시민의 눈높이로 내려온 공간.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곁을 내어주며 쉬게 하는 공간.

그 다정한 혁신 덕분에, 춘천은 이제 저에게 '소풍 때 줄 서던 통제의 도시'가 아니라 '언제든 달려가 멍때리고 싶은 마음의 거실'이 되었습니다.


혹시 삶이 팍팍하여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을 때, 춘천행 기차, 아니 내비게이션에 춘천국립박물관을 찍어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붉은 성채가 당신을 안아주고, 천 년의 시간이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당신에게 위로를 건넬 테니까요.


[다음화 예고]

다음 이야기는 '부대찌개'와 '군부대'의 도시, 경기도 의정부로 향합니다.

오랫동안 '군사 도시'라는 차갑고 거친 이미지에 갇혀 있던 곳. 하지만 그 회색빛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금 의정부는 아름다운 도서관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정숙하세요"라는 엄숙주의를 깨뜨린 공간. 군복 대신 예술을 입은 도시의 놀라운 변신을 만나러 갑니다.


히치하이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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