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이륙(離陸)하지 않는 사람들의 섬
28년 차 제주 도민인 저에게도 잠시 '육지 생활'을 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1년 남짓 서울에 머물 때였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 말고도 육지의 다른 도시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 생활에는 꽤 내성이 생겼다고 자부했기에, '향수병' 같은 건 촌스러운 남의 이야기일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닥쳐온 현실 앞에서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한 '시골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은 고사하고,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었습니다. 도심 한복판 오피스텔, 환기를 시키려 창을 조금만 열어도 매캐한 매연과 귀를 찌르는 자동차 소음이 밀려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그 밀폐된 회색 도시는 제게 지독한 향수병을 안겨주었습니다.
숨 쉴 구멍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지인 한 명이 영종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핑계 김에 바람이나 쐬자 싶어 무작정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던 것이 그곳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저를 계속해서 영종도로 이끈 건 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탁 트인 바다와 낮은 지붕들, 그리고 서울과는 다르게 느리게 흐르는 공기였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남들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그곳을, 저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 위해' 수차례 찾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공항 터미널이 아니라, 그 뒤편에 숨겨진 낡고 조용한 길목들이 제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었으니까요.
자주 오가다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거대한 영종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 아니었습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그리고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진 삼목도와 신불도. 이 네 개의 섬 사이 너른 갯벌을 메워 만든 인공의 땅입니다.
특히 활주로가 놓인 자리는 본래 사람이 살던 삼목도와 신불도였습니다. 1992년 공항 건설을 위해 두 섬은 산봉우리가 깎여나가고 흙이 파헤쳐져, 바다를 메우는 토사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공항 터미널 아래에는 수천 년간 갯벌에 기대어 살았던 원주민들의 터전이 묻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공항 주변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마을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저는 서울의 빌딩 숲을 피해, 사라진 섬들을 기억하고 있는 옛 영종도의 투박한 마을들로 향했습니다.
공항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조금 깊이 들어가니 '장촌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참 기묘한 동네입니다. 지척에 세계적인 허브 공항이 있는데도,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비행기 소리는 사라지고 완벽한 고요가 찾아옵니다.
그 한적한 마을 길가에 식당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름도 정겨운 '또가세 옛날 손칼국수'. 사실 제가 이 낯선 마을의 식당을 알게 된 건, 영종도 초기 이주민인 지인 덕분이었습니다.
개발 초기, 낯선 섬에 들어온 이주민들은 서로 의지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곤 했습니다. 그곳에 언젠가부터 자칭 '알바생'이 올리는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사장님이 시켜서 김장을 했다", "손님이 많아 허리가 휜다"
는 식의 소소하고 유머러스한 푸념들이었죠. 사람 냄새나는 그 글에 이끌려 찾아간 식당. 그런데 주방에서 나온 그 '알바생'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젊은 청년이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멋진 노신사였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는 사장님의 남편분으로,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커뮤니티에 소통의 창구를 열어둔 것이었습니다.
노신사가 날러다 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공장에서 기계로 매끈하게 뽑아낸 면이 아니었습니다. 홍두깨로 밀고 칼로 직접 썰어내 굵기가 제각각인 투박한 손칼국수였습니다.
가게 벽면을 채운 진지한 손글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물 남기면 지명수배', '면빨 남기면 현상수배'. 심지어 김치를 남기면 '설거지 당첨'이고, 팥죽을 남기면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나요. 그 진지한 필체 속에 담긴 유머와 자부심이 느껴져 젓가락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이 '알바생'의 센스는 계산대 앞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벽에 붙은 가격표가 백미입니다.
"먹을만하면 6천 원, 맛있으면 8천 원, 맛없으면 9천 원."
습관이 무섭더군요. 함께 간 여자친구는 그 문구를 보고도 무심코 습관처럼 "잘 먹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노신사는 세상에서 가장 엄중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맛있으면 8천 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습니다.
그 찰나의 정적 끝에 터져 나온 웃음. 삭막한 키오스크 앞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온도'였습니다.
여러 번 영종도를 방문하면서 칼국수집처럼 노포를 찾아봤습니다. 검색으로 찾은 '이륙상회' 앞에서도 저는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공항이 지척에 있으니, 정말 비행기의 그 '이륙(Take-off)'을 뜻하는 이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과 달리 가게의 내부는 기묘한 반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저를 반긴 건, 가게 내부 바닥에 떡하니 놓인 커다란 붉은색 고무대야였습니다. 고작 테이블 3개가 놓인 좁은 공간, 그 한복판에 횟집 수족관도 아닌 투박한 고무대야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안에는 그날 바다에서 바로 건져 올린 듯한 낙지며 조개, 소라가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풍경도 재미있었습니다. 익숙한 단골들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고무대야를 먼저 들여다봅니다.
"오늘은 낙지가 좋네. 이걸로 줘요."
그들은 바다의 시간을 확인하고 주문을 넣습니다. 반면 저 같은 초행길 손님은 쭈뼛거리다 벽에 붙은 메뉴판만 바라봅니다. 가게 외벽에 큼지막하게 쓰인 '두부 전문'이라는 글귀를 믿고 두부전골이나 두부무침을 시키는 것이죠.
이름은 하늘을 향해 '이륙'을 외치고 있는데, 정작 가게 안에는 갯벌에서 갓 나온 해산물과 땅에서 자란 콩으로 만든 두부가 한 상에 어우러집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두부와 낙지를 안주 삼아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곳. 하늘로 날아오르는 화려함 대신, 땅과 바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영종도 사람들의 진짜 아지트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흔히들 '영종도'라고 하면 거대한 공항과 파라다이스 시티 같은 대형 호텔, 반듯하게 닦인 신도시의 풍경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게 이곳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연재의 첫머리, 창간사에서 고백했듯 저는 '시골'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시에서만 나고 자라 방학 때 내려갈 할머니 댁도, 마음 한 켠에 묻어둔 고향도 딱히 없는 무채색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펄펄 끓는 아랫목이나 넉넉한 시골 인심 같은 것들은 제게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늘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자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가장 낯선 땅 영종도, 그 투박하고 낡은 가게들에서 난생처음으로 그 빈자리가 채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엄한 표정으로 농담을 건네는 칼국수집 노신사와 손때 묻은 고무대야가 놓인 두부 가게. 그 '노포'스러운 정겨운 풍경은 제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더 깊고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가지지 못했던 '나의 시골'을, 먼 길을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이곳에서 만난 듯한 기분.
세화리가 힙한 취향으로 저를 설레게 했다면, 영종도의 뒷골목은 제 안에 없던 기억마저 만들어내며 저를 품어주었습니다.
삼목도와 신불도가 사라진 자리 위로 비행기가 날지만, 그 아래 땅에는 여전히 사람이 삽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켜온 낡은 시간들이, 고향 없는 이방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비행기 티켓 없이 떠난 영종도 구석구석에서, 저는 가장 따뜻하고 배부른 여행을 마쳤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안개와 호수의 도시, 춘천으로 향합니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관(官)'의 공간이 아닌, 시민들이 가장 아끼고 머물고 싶어 하는 안식처.
춘천국립박물관을 통해, 잘 만들어진 '공공(Public)'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는지 그 다정한 해답을 찾아 떠납니다.
<히치하이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