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하고 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을 만나 인생의 대사를 치렀고,
막연한 꿈이나 잡다한 생각, 사소한 감정 따위에 흔들릴 새 없이 무자비한 세상을 깨우치며 종종거렸다.
지나가는 작은 인연들이 무수했고 누군가의 죽음이 스치는 때도 있었다.
현실이라 불리는 것들을 하나씩 겪어내며
남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점차 커지는 것을 목격했다.
제 나름의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다.
눈앞의 모든 일이 연연할 것이던 시절,
상상 속 어른은 누구보다 명료한 사람이었다.
혼란한 날들을 모두 살아낸 뒤 어떤 상황에도 답을 아는 사람.
적어도 자신이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에 있어서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클 대로 커버린 나는 여전히 헤매는 중이었고
반복되는 고민의 도돌이표 안에 갇혀 있었다.
누군가 답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을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많은 이들을 따라 헤엄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혼란은 깊어졌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게 하기 아쉬웠다.
멈췄을 때 내게 오는 낙인이 패배라는 꼬리표일까 두렵기도 했다.
덕분에 남들 못지않은 헤엄 실력 정도는 갖추게 되었는데 바라던 바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쉽게 지쳤다.
바라지 않는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일은 나를 조금씩 망가뜨렸다.
시들고 비쩍 말라버린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되뇌었지만
잊을 만하면 불만은 다시 터져 나왔다.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을 것이 많아질수록 체념하기 쉬워질 게 뻔했다.
지겨운 도돌이표를 끝내고 싶어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처음엔 얼룩덜룩한 마음 안에서 진짜를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무엇이 내 욕망이고 무엇이 남의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한 겹씩 걷어내며 자세히 보아야 했다.
한참의 방황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던 마음은 아주 작디작은 것이었다.
사소한 순간의 포착, 미묘한 감정에 대한 분석.
생각의 덩어리를 뭉뚱그려 놓지 않고 하나씩 뜯어내어 정리하는 일.
내면의 파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삼켜낸 뒤 나의 언어로 내어놓는 일.
그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방식이자 살아있음을 느끼는 길이었다.
그동안 배운 사회에서는 이것이 대체로 무가치하고 불필요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쏟아지는 성공 방식들 사이에서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을 붙잡고 사는 건 비효율이었다.
보통 이하의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이었기에
나 역시 오랫동안 덮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의미 없이 휘발됐고, 소화되지 않아 병들고 곪은 마음만 남겨졌다.
이제야 내 방식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적인 마음을 담아 여기에 둔다.
빠르게 달려나가는 세상을 보며 조급한 마음이 들 때,
느리게 곱씹는 밀도 있는 삶을 지켜내기 어려울 때마다
지금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도록.
미뤄놓은 행복은 결코 자연히 내게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