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엄마

by 못 쓰는 소설가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미워하는 이름

가장 편안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

가장 웃게 하고 싶지만 가장 울리기 쉬운 이름.


내게도 당신이 온 세상이고 우주였던 시절이 있었을 거다.

내 손에 만져지는 것들이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조각들 속에는 당신이 빼곡하겠지.




처음 당신을 떠나올 때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당신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보호받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갓 나온 세상은 험하고 낯설었다. 방법을 모르는 일 투성이었다.

되돌아보면 여전히 당신이 필요했지만 그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허둥대고 상처 입을 때마다 당신을 찾았더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물었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며 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여느 모녀만큼도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모른 채

잘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위안했다.


놀기 바쁜 날, 일에 지친 날들이 겹겹이 쌓여 단단한 벽을 이루었다.

변해가는 서로의 얼굴이 낯설었고, 닮아 있던 말투가 멀어져 말할 때마다 서로를 타격했다.


당신의 평가와 재단이 불편해 일부러 피한 날들도 있었다.

당신 앞에선 여전히 예쁨만 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되고 말았기에

새로운 나의 세상과 선택을 비난받게 될까,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당신이 나를 맹렬히 비난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지만

한 마디의 부정어도 당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날 공격하기에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핀잔에 마음이 긁혔고 미움이 솟구치기도 했다.

웃음을 바라고 한 일에 불평으로 회답할 때 내 입에서도 날카로운 말들이 나갔다.




사랑은 종종 모난 방식으로 튀어나갔다.

당신을 만날 때마다 잘못된 점을 나무라기 바빴다.

당신의 말투와 습관 하나하나를 재단하며 고쳐놓으려 했다.

사랑해서, 당신도 나와 같기를 바라서 쉽게 깎아내리고 상처 주었다.


아직 당신께 고백하지 못한 일도 하나 있다.

살다가 벽에 부딪힐 때, 인생이 멋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탓했다.

나란 인간의 결핍, 무능함, 잘못된 인간성을 마주했을 때 당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쉬웠다.


당신이 애써온 숱한 날들을 알면서도 굳이 부족함을 끄집어 올렸다.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자존감을 지켜온 날들이 많았음을 이제야 털어놓는다.


나의 생애가 당신 덕분이라는 것은 잊은 채

나의 생애가 당신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그리 쉬웠을까.




부디 나의 비겁함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

내가 당신께 바라온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정뿐이다.

못나고 망가지고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하는 날에도, 당신이 괜찮다고 말해주면 나는 괜찮다.


나를 잘 살고 싶게 하는 것은 언제나 당신이었고

나라는 딸이 있음에 기뻐하기를, 내내 그것만을 바라왔다.


내겐 아직도 당신을 뺀 세상보다 당신이라는 세상이 더 큰 것 같다.




당신이 나를 낳은 나이를 한참 지나서야 당신의 어두움과 나약함을 알았다.

완전한 당신이 나를 채워주길 바랐던 철없는 날들을 지나

이젠 당신의 생에 가능한 많은 웃음만 남기고 싶다.


아직도 당신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무너져 내리던 당신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영영 해결하지 못할 후회와 죄책감에 휩싸이던 그 장면을.


당신을 꼭 빼닮은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가늠되지 않는 두려움을 품은 채 오늘부터 당신께 지기로 한다.


싸우거나 바꾸려 들지 않고 당신의 그대로를 간직하기만 하겠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지금껏 그토록 큰 생채기를 내 왔지만

결국엔 우리가 서로에게 아프지 않은 이름이 되기를 바란다.


가장 사랑했던 이름, 떠올리면 웃음만 나는 그런 이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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