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고 싶은 사람 이야기

by 못 쓰는 소설가


줄곧 글을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고 쓰지 않았다.

핑계는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에너지가 없어서,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쓸 거리가 없어서.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철부지 딸처럼 바깥으로 나다니기 바빴다.

일을 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고 남들만큼 성공도 하고 남들만큼 놀기도 해야 했다.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들 앞에서 글의 자리는 매번 밀려났다.



제 발로 글을 찾아오는 날은 외롭고 힘든 날 뿐이었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날이면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무작정 토해냈고

세상이 날 너무 괴롭힌다며 칭얼대기도 했다.


한참 어리광을 부리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 돌아올 기약 없이 또 밖으로 향했다.



차라리 평생 돌아오지 않을 요량이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글을 쓰지 않는 날 만큼 부채감이 쌓였다.

결국엔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표현과 창작에 대한 숨은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곳,

느리게 살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곳은 오직 글뿐이었다.

소멸되는 인생이란 놈을 편집하고 간직하는 일이 내겐 중요했고

긴긴 시간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유일한 존재에게 평생 의존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나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걸 일찌감치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남들의 인정에 목을 매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나도 글도 너무 낡아버렸다.

어디에 내놓아도 볼품이 없을까 두려울 만큼.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왔다.

글을 잘 쓰는 일에는 자신이 없어서 못하는 일에 나설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커져버린 부채감이 나를 괴롭히기에 이르렀다.

무얼 해도 불안하고 만족스럽지가 않다.


쓰는 일만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진실되게 하고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하리란 생각이다.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심이 일고 주눅이 든다. 가장 잘 하고 싶은 일이라 그렇다.

이제는 피하지 않고 부딪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더 늦어지면 내가 얼마나 엉망이 될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이의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은 갖고 싶지 않다.


다행히 잘 쓰는 방법은 계속 쓰는 것이라고들 한다.

재능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믿고 도박을 걸기로 했다.

글의 집에 들어가 오래오래 머물다 보면 언젠가 글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겠지.


당분간은 방법을 몰라 헤매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겠지만

그걸 버텨낼 수 있는 힘 정도는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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