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9 종이일지

by 못 쓰는 소설가

어제는 도무지 글을 쓸 기분이 아니라 생각했다. 떠오르는 쓸 거리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쓰기를 피하며 걸었다. 뭐라도 해야 이 회피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 운동을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장인이던 나는 대체 언제 기분에 따라 일을 할지 말지 결정했던가. 글 쓰는 업을 하고 싶다던 녀석이 기분 타령을 하다니. 참 건방진 일이었다.

여태껏 스스로를 백수의 정체성으로 정의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하며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모든 것이 내게 취미 혹은 부업에 불과했지, 어느 것에도 일만큼의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잘하고 싶다면 핑계는 없어야 한다. 일단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내겐 상사도, 감시자도 없으니 내가 나를 관리 감독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난 글 쓰고 싶은 백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속도보다 머리의 속도가 빨라서 쉬지 않고 움직이기를, 곧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를 요구했다. 그 탓에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이 쉽게 지쳤다. 지금은 내 현재 상태에 맞는 걸음을 가야 할 것 같다. 너무 멀리 보지 않고, 너무 과도한 목표를 잡지도 않고.

일단은 에세이부터 써보기로 한다. 가장 부담 없고 도전 가능한 방향이니. 소설은 '한번 써 본다'의 즐거움 정도로만 두자. 주제가 내면 탐구에 치중되어 있다 한들 개의치 말자. 쓰다 보면 내 관심과 상황이 옮겨가는 방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날이 올 테니까.

부디 천천히 가자. 1년 살고 죽을 삶 아니고, 10년, 20년, 50년은 더 이어갈 삶이다. 세상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모양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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