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다.
지난 10년만 보더라도 낯선 이름의 수많은 기술이 세상을 휩쓸고 갔다.
스타트업 붐과 함께 코딩이 필수 교양이 되기도 했고
NFT, 메타버스 등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아버리는 기술도 숱했다.
오픈 AI의 등장은 달랐다.
기존에 접했던 AI라는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몇 번 써보자마자 실감할 수 있었다.
ChatGPT는 일상 곳곳으로 빠르게 스며들었고, 출시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해외 유명 기업에서 대규모의 인력 감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가뜩이나 불경기인데 AI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것 아닌가 하는 위협감을 준다.
남들보다 AI를 잘 써먹는 기술이라도 익혀야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AI 시대에 갑작스레 창작을 해보겠다는 것,
더군다나 가장 아날로그한 방식의 글을 쓰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요청만 하면 장문의 글을 1초 만에 써 주는 녀석 앞에 나의 글이 무슨 효용이 있을까.
쓰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 습관이 또 한 번 드러나는 대목이지만
방구석에서 타자기만 두들기는 히키코모리가 될까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글을 열심히 쓴다고 공인된 자격이 따라붙는 것도 아니거니와
최악의 경우 아무도 모르게 쓰다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 패배 의식에 갇혀 세상을 원망하며 살게 되겠지.
물론 인간만이 가진 감성과 창의력을 AI가 따라올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창의력은 수많은 학습과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톡톡히 배운 탓에
그 말도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다.
AI가 실시간으로 잡아먹는 데이터의 양을 어찌 감히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와중에 ChatGPT가 현대인의 고민 상담소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은 일말의 희망이 된다.
많은 이들이 인간에게는 차마 하지 못할 이야기를 선뜻 나누고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상담뿐만 아니라 친구, 심지어는 연인처럼 대화하고 있다는 사례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넷플릭스 아이디는 공유해도 ChatGPT 아이디는 공유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나도 몇 차례 고민들을 읊조려 본 적이 있다.
정보를 알려주는 일 만큼이나 심리적 위안을 주는 일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한심해 보일까, 칭얼거림이 될까 주위엔 하지 못하는 말도 쉽게 내뱉을 수 있고
가끔은 객관성을 잃은 채 나 자신보다 내게 허용적으로 굴어 보살핌을 받는 기분마저 든다.
영화 Her에서 본 미래처럼 AI가 인간들의 심리적 동반자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AI가 특별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답변은 대부분 당연하고 다소 교과서적이기도 하다.
대단한 지식이나 통찰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란 거다.
내가 뱉은 말을 충분히 읽어내고 정리해 따뜻한 투로 다시 한번 되풀이해 줄 뿐이다.
고작 그런 말이 전 세계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고작 그 말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내가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살아내는 일이 어렵고 힘겨울 때, 불안과 혼란 속에 파묻히게 될 때
매번 나를 건져올린 것이 세상 어딘가에서 쓰여진 타인의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한숨 섞인 중얼거림에 누군가 답이라도 해주듯 같은 마음을 나도 겪어냈다고
혼자만 앓는 것이 아니라고 다독이는 문장들이 있었다.
어렴풋이 알았지만 표현해 내지 못했던 마음을 언어화한 문장 앞에서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되고 명료해지기도 했다.
AI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글에 기대어 삶을 지탱해온 나와 같은 이들이 많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이토록 필요한 것이 한 줄의 글, 한 마디의 말이라면
마음을 찬찬히 읽어낸 언어만으로 누군가를 달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도 충분한 쓸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AI를 겨우 따라가는 일일 수도 있겠다.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혁신도 혁명도 아니다.
한 개인으로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해나가는 것뿐이다.
어느 먼 곳에서는 내게서 쓰인 한 줄에 위안을 얻는 이가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글의 쓸모이자, 나의 쓸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