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ree Ways Nov 27. 2022

국수 이야기

한 끼 식사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아무거나 하면 되는 거지만 그래도 먹을만은 해야 겠기에 무얼 만들까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제가 면을 잘 삶는 편입니다. 우리 집 아이도 엄마의 면요리보다는 아빠의 면요리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봉투에 적혀있는 레시 피대로 삶으면 실패가 없더군요. ‘그래 국수를 만들어 먹이자’고 생각했습니다.


누구한테 먹일려고 하기에 고민을 하느냐구요. 설명하자면 아주 오래전 이야기부터 끄집어와 야 합니다. 오늘은 국수이야기를 해야 하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친구라고 하지만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릅니다. 신기하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친구들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이 친구들과 내년에 아일랜드를 같이 여행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가서 반드시 해야할 일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정했다고 한다면 하루에 한번정도는 펍에 들려서 기네스를 마시자 하는 정도입니다.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친한 친구끼리 여행갔다가 웬수(?) 비슷하게 되어 서 돌아오는 이야기요. 아일랜드까지 가서 그런 일이 생기면 안되잖아요. 서로를 좀 더 알아 볼 겸 제주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싸우기엔 충분한 시간 아닌가요? 저녁은 숙소에서 가볍게 먹고 온갖 주류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가벼운 식사라면 역시 면요리가 아니겠습니까. 마트에서 파는 xx국수를 사다 끓여먹을 수 있지만 좀 더 맛있는 국수를 먹이고 싶었습니다. 국수장인이 전수해 준 레시피로 만들었다는 국수를 직접 제주로 가져가고 비빔국 수가 먹고 싶다는 의견에 따라 고추장도 가져갑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빔국수는 못 먹었 어요.


첫날 동문시장에서 떠온 회를 먹고 나니 국물국수가 먹고 싶은 겁니다. 문제 없습니다. 장인의 레시피에는 멸치육수가 들어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넣고 1분만 끓이면 됩니다. 원래 제 계획으로 이 국물로 묵사발을 만들어 주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지요. 공대생답게 4분 25초 타 이머를 맞추어두고 국수를 끓입니다. 가끔 찬물을 조금 보충하면서 말이죠. 이렇게하면 국수 가 좀 더 탱글해집니다. 타이머 맞추는 걸 보면서 신기해 하던군요. 이게 왜 신기하죠. 당연히 이렇게 삶는거 아닌가요. 고명이 없으니 마트에서 사온 김치를 쫑쫑 썰어 놓습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삶아진 국수를 채반에 넣고 찬물로 조물조물 주물러서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도록 헹구어 냅니다. 토렴을 하면 좋은데 그냥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토렴을 혹시 모르 시나요. 찬물로 식어버린 국수를 뜨거운 물에 넣어 다시 뎁히는 겁니다. 원래는 국밥집에서 많이 하는 거죠. 국수를 알맞게 덜어서 그릇에 넣습니다. 먹은 양이 적은 친구에게는 적은 양을, 많이 먹을 것 같은 친구에게는 좀 더 덜어 넣습니다. 김치고명을 올리고 멸치육수만 부으면 끝입니다.



과연 맛은 어땠을까요? 남김없이 모두 먹은 걸 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나 봅니다. 이상하지요. 혼자였다면 아마 국수대신 라면을 끓여 먹었을 겁니다. 국수는 이래저래 번거로우니까요. 그런데 친구들이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의 번거로움 따위는 문제가 안 되더라구요.


국수라도 삶을 줄 몰랐으면 어쩔뻔 했을까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일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제가 이 친구들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봅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콧노래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니까요. 국수는 사랑입니다.


후기)

이틀 뒤 국수를 한 번 더 삶아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동치미 국수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동치 미 국수 이야기도 쓰고 싶네요. ‘우리지수’가 만들어 준 동치미로 만든 국수거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