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이 아침부터 울고있다는데
지하철역에서 내려 출근하는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반 남학생의 학부모였다
내용은 그랬다.
당시 Class 123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학급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으쓱의 갯수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적어서 부끄럽다는 내용이었다.
남학생이 아침부터 울고있다는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검토를 해보니 그 학생은 우리반 학생들 중 으쓱이 가장 적었다.
-실제로는 도움반 학생이 1명을 제외하고-
그리고 과묵한 탓에 발표를 전혀 안하는 그 학생의 특성상 으쓱을 획득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사실관계 확인은 이쯤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교환가치를 전혀 설정하지 않은 가상의 칭찬점수인데 왜 점수에 연연하는거지?
점수가 부족하다 생각하면 발표를 하면 되지 않나?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쨌건 컴플레인이 있을 때 즉각조치한다는 원칙을 따라 학생들에게 이 일을 논의했다.
사실 으쓱(칭찬)과 머쓱(훈계)으로 불리는 점수제도는 이미 시작 전부터 리셋을 예고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참고하기 위해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 여러분이 받는 불이익은 없을거라고...
때문에 학생들이 당연히 받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학급회의에 안건을 제안했다
우선, 남학생의 동의를 받고 그 학생이 점수가 낮아 불만이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설명을 했다.
"칭찬점수의 목적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거지 누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그래서 조만간에 으쓱점수를 리셋하고자 합니다""의견있나요?“
웅성웅성 소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동요하는 분위기였다.
똘똘한 반장이 손을 들고 나섰다.
내심 내 결정을 지지하려나 싶었다.
"선생님, 저는 그 결정에 반대합니다. 점수는 저희가 열심히 발표하고 활동해서 모은겁니다.
비록 아무 가치는 없지만 소중하게 모은 것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저두요"
"저도 동의합니다.“
예상외로 반대가 많이 나왔다.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건만
딱히 남학생이 친구들과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자기가 모은 칭찬점수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던 것이었다.
예상 밖의 결과에 작은 충격을 받고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선생님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초임 때 칭찬 스티커를 썼는데 몇개월 간은 잘 굴러갔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조금 학습태도가 부족한 친구에게 과자를 준다던가 자기들끼리 스티커 제도를 만들면서
서로를 길들이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 후로는 절대 외적 보상체계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은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보상은 이용하지 않는다는게 신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이 칭찬점수 리셋에 반대하는 것에 공감한다고 했다.
이미 학생들이 거기에 부여한 각자의 의미가 있을텐데 점수가 꼴등인 학생이 불만이라고 해서
초기화하는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자신도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전혀 교환가치가 없는데도 말이죠?“
교환가치가 없는 칭찬점수에도 의미가 있다는 건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한 2016년,
기간제를 하면서 학급이 앱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생소한 때
4학년 학생들을 1달 정도 시간강사로 맡게 되었다.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담임선생님은 Class 123 사용법을 알려주었는데
칭찬점수를 갖고 뭘 하는 건 없지만 학생들이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사용하냐면 칭찬은 발표했을 때, 밥을 잘 먹었을때나 숙제를 잘했을 때처럼
칭찬해줄만한 순간에 즉시 수시로 준다고 했다.
반면에 머쓱(훈계) 점수는 거의 주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은 쉬는시간이면 자기가 몇등인지 확인을 하곤 했다. 절대적인 개수도 중요하지만
학급에서의 상대적 위치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다.
그것에 관해서 점수가 높고 낮음에 따라 노골적으로 친구들을 비판하는 일은 없었지만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롤 모델에 해당하는 학생들, 소위 말하는 우등생이므로
점수가 낮은 학생들이 롤 모델의 안티테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여하간에 그 시스템이 맘에 들었고 언젠가 담임을 하게 되면
Class 123의 칭찬 시스템을 잘 활용해보고 싶었는데
마주하게 된 것은 등교하기 전부터 울고있는 학생이었다
(프롤로그, 끝)
ⓒ 게임이론, Shaw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