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릴랜서 Oct 07. 2020

<염력> (2017)

영화의 옷을 입은 애니메이션

반도에 이어 또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염력.

부산행 이후에 연상호가 연출을 맡게 된 실사 영화.

엄청난 졸작으로 사람들이 평가하던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았다.


<염력>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감독: 연상호

주연: 류승룡, 심은경, 박정민

줄거리/설명

평범한 은행 경비원 ‘석헌’(류승룡).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찾아온다.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놀라운 능력, 바로 염력이 생긴 것.


한편, ‘ 사장’(김민재) ‘ 상무’(정유미) 의해

‘석헌’의 딸, 청년 사장 ‘루미’(심은경)와 이웃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고...

‘석헌’과 ‘루미’, 그리고 변호사 ‘정현’(박정민)이 그들에 맞서며 놀라운 일이 펼쳐지는데...!


어제까진 초평범, 하루아침에 초능력

이제 그의 염력이 폭발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 영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주저 없이 0.5점을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단 사람들의 움직임 CG가 약간 부자연스럽고, 상황이 애초에 판타지스러운 면이 있다면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조금이라도 납득될 텐데 영화 내에서 흘러가는 전개는 상당히 진지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톤이 부조화를 이루어 조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중간에 코믹한 요소를 넣으려고 애를 쓴 것 같지만 장르적인 혼합이 그다지 조화롭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어떤 지점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다소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애니메이션 버전을 상상하게 되는 영화


염력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실사로는 전달할 수 없는 감성이 있다'였다.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에도 그림이 여전히 소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함에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멸종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실사 영화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나 영화 시나리오나 둘 다 비슷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극 대본이나 소설을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들면 어색하듯이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면 어색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를 기대하며 관람을 했던 관객들은 내가 뭘 본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올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동작이 상당히 과장되고, 지루함을 유머로 극복하는 스타일이다. 그 유머는 슬랩스틱일 수도 있고, 말장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지루함을 주로 갈등이나 서스펜스로 극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유머의 남발은 등장인물을 바보처럼 보이게 할 수 있고, 스토리가 유치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영화의 목적이 진지한 사건(용산 참사 사건)을 덜 무겁게 그리는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덜 무겁게를 넘어 오버스러움이 되어버렸다. 덜 무겁게 정도로 영화를 그리려고 했다면, <조조래빗> 같은 정도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조조래빗>과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훑어보기)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특히 지브리) 영화도 함께 많이 보는 관객이라면 마음 속으로 애니메이션의 눈을 떠보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봤는데, 모든 등장인물을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로 치환해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진 않다. 애니메이션까지는 너무 힘들다면 웹툰 정도로 도전해보자.


개인적으로 나는 처음에 류승룡이 집에서 물건들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영화를 봤는데, 좀 지나니 모든 장면이 저절로 애니메이션화 되어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비운의 영화. 이렇게 평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이 애니메이션풍의 연출 스타일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에 아직 서툴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장면들이 저절로 애니메이션으로 보이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영화보다는 확실히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시나리오였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산행으로 너무 메가 히트를 쳤기 때문에 그 시행착오의 순간들을 관객들이 참아줄 수 없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일까. 앞으로 또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타협점을 찾아낸다면, 봉준호 감독처럼 감독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거듭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도> (20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