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소환 하는 신묘, 간교, 사특 (邪慝& 私慝) 한 미학적 방법
나무 한 그루와 숲
김기덕 감독의 18 번째 영화...
아, 한글이 주는 미학적 깊이... 18.
오직 한글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그 숫자의 의미... 18.
왜 하 필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69번 때를 맞춰 <피에타>라는 영화를 만들었을까...
69번째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자신의 18번째 영화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신 김기덕 감독님께 이제나마 드리고 싶은 말, "감독님, 나이스 샷~~~~!"
그들은 김기덕 감독이 펼치면 평면이나 착용 시 3D로 변하는 한복의 치마를 입었던 인류의 족보를 계승한 나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1D에서 3D로 자유자재로운 변화를 한복의 치마를 통해 실생활에서 사용해 봤던 족보를 계승한 사람이 그려내는 인류의 미학적 깊이를 이해했을까?
김기덕 감독은 후배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씹어먹는 거야." 그리고, 2012년 KBS 두드림이란 쇼에 나와서 그는 이야기했다, 나만 따라와도 " 적어도 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제가 한국에서 어느 위치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 속 그의 대사가 떠올랐다.
" 악역을 통해서 자기의 본능을 드러내는 개새끼들! 18, 존나게 악한 역할하고 싶지? 세상을 씹어먹고 싶지? 십 새끼 들아! 내가 니들 모를 줄 알아? 개새끼들아! 영화를 통해 자위하는 거? 악역이 제일 쉬워 십 새끼 들아! 악역이 제일 쉽다고 십 새끼 들아."
이 또한 자신과 자신의 대화 그리고 우리들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대화였을 지리라.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의 엔딩 장면에서 박장대소를 아니할 수 없었다. 그의 <봄...>에서 수채화 인척 글레이징을 한 유화를 숨겨 놓았다면, <피에타>는 무겁고 경건한 자본주의의 속죄 그리고 구원이라는 주제가 영화 속의 나무 한 그루처럼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숲을 보기 전까지만...
필자가 본 <피에타>는 내적 그리고 외적 주제는 켜켜이 중첩되어있고 내면적 주제는 다시 두 개의 소 주제 그리고 외면적 주제는 두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있었다. 제일 바깥의 외적 주제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 인류의 속죄와 구원이고 내면적 외적 주제는 신의 소환이오, 바깥의 내적 주제(의도?)는 '한국 씹어먹기'와 내면의 내적 주제는 '세상 씹어먹기'로 보인다.
<피에타> 속 공간과 이미지 바꿔치기
일반적으로 영화 <피에타> 속에서 보여주는 공간은 대조법을 사용했다: 회색빛의 강도의 집과 그의 집 앞의 신학교; 판잣집과 도심의 고층빌딩의 대조; 강도가 주로 이용하는 골목길과 도로의 대조 등등...
영화 <피에타>를 관람하기 이전에 산업단지를 지나칠 일이 있었다면, 몸이나 옷에 기름때가 묻지 않을까 걱정하며 몸을 사리며 지나갔었으리라. 하지만, 영화 <피에타> 속 산업단지(전 청계천) 장면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 속 미장센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매혹적이게 보인다. 영화 <봄...>과 <피에타>의 다른 점은 <봄>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보일만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미장센으로 사용했다면, 영화 <피에타>는 산업화의 손때가 묻을 만큼 묻은 기계들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의 극적인 미학성에 온몸이 전율한다.
<피에타> 속 쓰레기 더미도 매혹적으로 보이고, 무질서하게 쌓아 놓거나 그렇게 놓인 철자 재품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움, 짓다 만 텅 빈 회색 건물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에 나올 것 같은 사막을 연상시키는 마력이 있다.
차갑고 냉혈적인 청계천의 기계와 철 자재나 부품들은 <피에타> 속 화면에서는 온기를 품고 있는 꽃과 꽃 봉오리 같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온기를 품고 있어야 할 인간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차갑고 냉혈적으로 변모하였고, 삶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차갑고 냉혈적인 기계들은 오히려 인간의 온기가 묻은 피를 고스란히 기계 자신의 몸에 묻혀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역할의 교차가 또 하나의 <피에타>가 보여주는 마력이다.
또한,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보험'도 더 이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험금이 될 수 없다는 설정 자체도 영화 <피에타> 속 자리 바꾸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이는 강도
괴테가 말했다. "여신을 마녀로, 처녀를 창녀로 만드는 것에는 어떠한 기술도 필요치 않지만, 그 반대 작업, 경멸되는 것에 존엄성을 주고, 모욕당하는 이를 호감으로 만드는, 그것들이야 말로 기술이나 기개에 필요한 것들이다. (There is no art in turning a goddess into a witch, a virgin into a whore, but the opposite operation, to give dignity to what has been scorned, to make the degraded desirable, that calls for art or for character. Johann Wolfgang von Goethe)." 반추해 보면 김기덕 감독의 첫 작품 <악어>에서부터 그의 모든 작품이 이러한 미학성을 담아내고 있지 않나.
아이러니하게도 <피에타> 속 인물 중에, 고리대금 업자에게 빌린 돈을 계약에 따라 원금의 10배로 돌려받는 일을 성실히 하루하루 수행하는 강도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매일 아침, 그는 핸드폰으로 받은 사진 속의 대출자를 찾아, 그들이 계약 한 그대로, 원금의 10배를 받지 못 할 경우,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자신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강도 자신은 대출자들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 때 조차도, 그는 기계처럼 정확하다. 정확히, 어느 높이의 고층 건물에서 어떤 무게로 떨어져야 대부업체에서 받은 300만 원의 10배인 3000만 원을 보험금으로 받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만일 대출자의 손상 상태와 보험금 수령금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예측이 되면, 그는 정확하게, 떨어져 다친 다리가 어떠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오류 0%의 치밀한 기계와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기계적으로 만들고, 기계적으로 되어야만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적이고, 왜 한 인간이 대부업체에서 원금보다 10배로 불어나는 돈을 빌려야 했는지 생각하는 감성을 보이면 자신이 맡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도,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강도처럼.
왜 <피에타>의 주인공 이름이 강도인가
<피에타>의 주인공 이름은 '강도'이다. 왜 강도인가? 강도의 사전적 의미는 '폭행이나 협박 따위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도둑. 또는 그런 행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은 '강도'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강도 시스템 안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은 강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 강도 같은 '강도'라는 인물이 자신의 집에서 비상구를 통해 걸어나와 세상과의 소통(?)을 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한 몫을 하니 그는 강도이다.
잔인하고 반 인륜적인 주인공 '강도'가 영화 종반기에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난 가짜 엄마의 마음에서 연민과 자비를 일으키게 하고, 그가 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강도'의 길을 가야만 했는지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자비를 일으키게 하니, 우리의 마음을 빼앗은 '강도'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본으로 연결된 모든 행위들의 죄를 자신의 몸을 던져 사함으로 인해, 우리의 죄를 사하였다. 우리의 구원받을 행위를 그에게 빼앗겼으니, 그는 강도이다.
'할렐루야는 영원하리'의 원 주체여야 하는 신의 자리를 영화 속 인물 '강도'는 강탈하여 자신이 예수 역할을 하여 인간의 죄를 속죄하고 구원하였으니, 그는 강도이다.
'강도'라는 영화 속 인물을 통해 김기덕 감독은 황금사자상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한국에서 감독의 위치의 최고 자리를 강탈했으니, 학연/지연/자본으로 얽힌 한국 영화판에서 그의 역할도 '강도'이다.
중의적인 의미(69와 18)를 은닉한 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게 일조를 한 캐릭터는 '강도'이다.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들 조차도 아름답게 포장하여 자본주의 사회에 일조하는 '강도'임을 알게 하여 우리의 본질을 덮고 숨긴 포장지를 찢어발기고 훔쳐갔으니, 그는 강도이다.
돈, 신의 자리를 꿰차다
성모 마리아를 기대한 강도의 어머니는 복수의 화신이며, 그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돈 때문에 아들을 잃은 또 하나의 상처받은 인물이다. 그녀가 말하는 돈은, 예수가 아닌 하나님께만 적용된다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Alpha and Omega)'이다. 사랑과 죽음까지도 포함하는... 18
그리하여, 예수의 전매특허인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일은 강도에게로 맡겨지며, 악마 새끼라 불리는 강도는 그의 집 창문을 통해 '할렐루야는 영원하리라'라는 찬양을 듣는다.
마리아는 복수의 화신으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역할이 바뀌며 쓰레기 더미 안에서 강도에게 '너를 버린 나를 용서해줘'라며 용서를 구한다.
모든 것을 속죄하고 악마 새끼에서 예수가 되기로 작정한 강도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부터의 인류 구원은 이루어질까? 미안하지만 비관적인 수밖에 없다.. 미소 자금이 떡 하니 강도의 발 밑에서 버티고 있지 않은가...
<피에타> 속 강도가 만난 인물의 숫자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18의 전제가 맞았을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김기덕 감독은 혹시 강도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나는 영화 속 인물의 수가 18명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직접 세어 보았다. 스크린에 담긴 강도가 만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수는 18. 자본주의 시스템을 상징할 수 있는 강도의 첫 장면은 생명의 살만 발라먹고 뼈만 남은 물고기 보여주는 장면과 그의 자위 장면... 18
아래의 영화 속 장면은 자본주의의 시스템으로 상징하는 강도라는 인물이 살아있는 사람을 만난 순서를 차례대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훈철과 훈철 부인(2 명)
강도가 다리를 부러트린 계송과 계송의 어머니 (2 명)
편지를 쓴 후 약 먹은 후 자살한 허준석(1명)
허준석의 어머니 (1 명)
기타치는 숙년공 남성(1 명)
'돈이 뭔가'라고 강도에게 물은 후 스스로 추락한 추락남 (1 명)
강도의 가짜 엄마 미선, 명동남과 여자(3 명)
강도의 사장인 장사장(1 명)
휠체어 탄 후 강도를 보자 무서움에 바지에 실례를 한 남자 (1 명)
말 전달 하는 남자 (1 명)
자살한 남자의 엄마 (강도의 귀에 들리게 개새끼라고 한 분 - 김기덕식 유머) (1 명)
컨테이너에 사는 남자와 아들 (2 명)
어리석어 잘 보지 못 한다는 스님 (1명)
강도가 만난 살아있는 생물의 인원을 모두 합하면 18.
악마 새끼라 불리는 강도가 자본주의의 십자가를 메고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신 건가? 아니면, 그것은 뻥인 것인가? 할렐루야는 영원하리라는 강도인가 강도를 향한 할렐루야는 영원하리라인가. 피에타.. 누구를 향한 자비를 베풀어야 하나.. 예수? 마리아?
그것이 자신의 피땀인 줄 모르며, 어리석게도 타인의 피땀을 먹으며 하루하루 달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들의 마음은 뻥튀기처럼 공허한 것임에도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뻥튀기 차를 몰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18인가? 아니면, 그 모습을 오히려 경건하게 보아야 하는 건지 그것 자체가 뻥이고 18인 건지...
이런 영화를 만든 김기덕 감독에게 오히려 관객이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 이런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공범자들인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것 안에 공존해 있는 감독을 포함한 모든 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에게 오히려 자비를 베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18. 그런 후, 이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자.. 18.
할렐루야는 영원하리니....... 18
24시간 오랜 기간 동안 (백 년) 곰탕처럼 우려먹었는데... 할렐루야는 영원하리니... 18
신이 지구에 쳐들어 올지 모르겠다.
자신의 역할을 찾으러..
강도에게 빼앗긴 자신의 역할... 오, 피에타
덕분에 인간이 신에게 따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오, 피에타
<김기덕 감독 영화 리뷰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