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처럼

글쓰기 첫날

by 미산트로프

여행을 마치고, 나는 글쓰기로 하루의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루틴처럼 말이다.


그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정 분량의 소설을 쓴다고 한다.

그의 에세이집에서 그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땐,

그건 내가 차마 엄두도 못 낼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잠시나마 아침형 인간의 일상을 경험해 본 뒤로,

약간의 자신감이 붙어 새벽 네 시 기상도 내게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좀 달라졌고, 이전의 지긋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으니까...


귀국 첫날,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네시의 따스한 햇살에 몸이 나른해져 잠이 쏟아졌다.

잠시 몸을 뉘었다 일어나니, 밖은 이미 컴컴해져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짐을 풀어 정리했다.

TV에서는 때마침 대선 개표 방송이 밤새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자정을 넘긴 신데렐라의 현실처럼,

서울 공기를 들이켜던 순간 나는 얄짤없이 이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새벽 네 시는 다시 나의 평균 취침 시간이 되어버렸으므로,

내 글쓰기 루틴은 오후 네 시 이전에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 컴퓨터부터 부팅시켰다.

이어 나의 뇌도 부팅시키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렸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어려울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커피잔을 들고 호기롭게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창을 띄었는데,

새하얀 워드 창이 뜨는 순간, 내 머릿속도 같이 하얘지는 것이 아닌가?

손가락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잘 움직여지질 않았다.

애써 키보드를 두드려 봐도, 알 수 없는 낱말들만 화면 위에 쌓였다.

"이거 뭐, 그림 그릴 때 겪던 '흰 도화지 공포증'과 다를 게 없잖아?"


어느 순간부터 그림이 자유롭게 그려지질 않았다.

평소에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떠올랐고,

그것들을 멋지게 표현할 자신도 열정도 있었지만,

막상 캔버스 앞에 앉으면 마치 꿈에서 깨어난 직후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허공에 휘젓는 공허한 손짓뿐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스케치 노트는 변하기 시작했다.

획과 선이 점차 사라지더니, 단어와 문장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글쓰기를 선택하게 된 것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어쩔 수 없이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택해야 했던 마지막 보루였기에...


그림 작가들의 슬럼프 증상에 '흰 도화지 공포증'이 있다면

글 작가들에겐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이 있다.

글 꽤나 썼다는 기성 작가들이 어느 순간 바닥이 드러난 우물이 된 듯,

아무것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허나 나는 아직 글로 물 한번 길어 올려 본 적 없었기에,

내가 들먹일 현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처음부터 메마른 샘이었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샘조차도 아니었던 걸까?


워드창을 닫고, 다른 창을 띄워봐도 소용없었다.

텅 빈 창 앞에서 아무것도 건져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손가락을 꼬물꼬물 거리는 것만으로 글쓰기를 끝낼 순 없었다.

이래 봬도 나에게는 SNS에서 글자 수의 제한을 넘겨서도 멈추지 않고 나불대던 짬이 좀 있었다.

ㅡ내가 쓴 글을 보고 "쓰면 다 글인 줄 아나?" 라며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이대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렇다고 전처럼 SNS로 돌아가 키보드 워리어로 복귀할 수도 없으니...


ARIARIA (아리아리아) | Sometimes, On edge (때때로, 날이 선) | Mixed media on paper | 2012–13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새로운 경험은 키보드 워리어도 요정을 꿈꾸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