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서막
워크숍에 참여하기 몇 개월 전, 나는 짧은 여행을 다녀왔었다.
혹자는 “여행?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요?”할지도 모르겠으나,
내게 있어 이 여행은 십여 년 동안 머릿속에서만 굴리던 생각을 비로소 실행에 옮긴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열의와 포부를 품고 떠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 이유 없이 출발했던 것도 아니었다.
망설이는 십여 년 동안 이 여행을 진행시켜야 할 이유가 어찌나 많이 쌓여 있었던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늘 그랬듯 '형편'을 이유로 미루고 또 미루었다.
애초에 내게 여행이란 완벽한 여행을 위해 완벽하게 미루다가 결국 완벽하게 망할 위기에 처해서야 다급히 실행되는 일이었으니까.
그 무렵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창작과 ‘예술’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 앞에 '지긋지긋'이란 형용사를 붙이고 있었다.
-사실 그게 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지긋지긋한 상태를 타파해 보겠다고, 나는 만들어 놓았던 곡의 가사와 타이틀도 ‘지긋지긋’이라 바꿔서 새로 발표하였으나,
어쩐지 지긋지긋함은 더 지긋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1년 전에 발급받아 둔 유스호스텔 회원증과 국제학생증의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제 진짜 미룰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구나..."
출국 이틀 전. 나는 부랴부랴 항공권을 끊고, 버스와 숙소를 예약했다.
이처럼 나의 여행의 장르는 시작부터가 아슬아슬한 스릴러였고,
주인공은 뭘 하든 생존과 직결된 리스크를 안고 사는 여유 없는 처지의 설정이었다.
늘 놀란 토끼눈 하고 미어캣 자세로 두리번거리며,
"실수하면 넌 국물도 없어.", "자칫하다가 모든 게 작살날 수 있으니 조심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실 말이 좋아 '해외여행'이지,
궁핍한 만년 *망생이의 삶에서 '여행'과 '쉼은 쉽사리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망생이 : 창작 분야로 데뷔를 준비하는 '지망생'의 은어)
어딜 가서 무얼 하든 '창작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간절한 몸짓'이 되어,
결국엔 '스스로에게 내리치는 채찍질'로 돌아오곤 하기에...
하지만 그리 표현하기엔 조금 비참한 느낌이 들기에.. 다시 말하자면, '배움을 위해 떠나는 자체 워크숍'이라 할까나...
이렇듯 허허실실 대고 뭉그적거리는 일상시간조차 목적을 부여하는 나란 인간이,
이 대단한 사건을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이번 '자체 워크숍'에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건져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계속 나와 함께 동행했다.
그로나 이미 떠나기 전부터 이번만큼은 순수하게 즐겨보자고 기를 쓰고 다녔다.
-그래서 일부러 악기나 녹음 장비, 붓과 도화지 같은 그림도구도 일절 챙겨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굳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영감이 될만한 꽤나 새로운 이슈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애초에 서스펜스 한 에피소드로 전개되기에 충분한 설정으로 시작된 이 여정이
평안하고 고요하게만 진행되기만을 바란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었다.
극은 흐를수록 더욱 극적으로 전개되는 법이니까.
여행이 끝날 즈음엔 내 안에 무언가가 다시 새롭게 차오른 느낌이 들었다.
출발할 땐 너덜너덜 누더기 신세였는데,
여행이 끝날 즈음엔 "비비디 바비디 부!" 하고 마법의 주문이라도 걸린 듯 반짝반짝해진 기분이 들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라도 끌고 떠났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재정은 더욱더 난감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서 이번 '자체워크숍'에서의 겪은 새로운 경험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루틴 없던 나의 창작루틴에도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글쓰기였다.
'평소 들숨과 날숨처럼 직관적으로 풀어내던 짓'이,
'SNS에 전투적으로 글을 쏟아내는 키보드 워리어 짓'이었으니까.
그저 키보드에 손가락만 장전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탕. 탕. 탕' 쏘는 키보드 워리어(전사) 아닌,
'뾰로롱~' 하고 마법의 지팡이를 처럼 휘두르는 키보드 페리(요정)로 새롭게 거듭나고 싶었다.
그렇게 휘두른 지팡이가
어쩌면 마법의 주문으로 기록되어
내가 일상을 살아가다 또다시 텅 빈 어둠을 마주하게 될 때,
여행에서 흡수한 밝은 빛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