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여행 2편을 쓰려다가 약간 저자인생을 풀어보았다.
잠을 자려고 2층으로 향했다. 뒤늦게 스태프가 와서 체크인을 했다. 10000원대 방이라 이런 서비스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헝그리정신이 부족해진 것 같아 일부러 이 방을 잡았다. 제일 싼 방이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졌다는 생각..
언젠가부터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호텔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것. 여행을 가면 언젠가부터 3성급 호텔에서 자는 날이 많다. 물론 편하고 좋다. 그렇지만, 나는 예상치 못한 일을 좋아했다. 그게 새로웠고 경험이 됐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는 내게 자원이 됐다. 예를 들면 게하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자게 되면 여러 이야기를 하거나 어디를 같이 놀러갈 수도 있다. 거기서 일어나는 일은 계획에 없던 일이라 도파민이 배로 폭발하게 된다. 그분들이랑 인연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고 그게 나의 성장으로 이끌어지게 만든다. 거기에 무계획 여행이라면 더 좋다. 무슨 일을 해도 전부 사고로 이어진다. 그 사고들이 내게 자원이 된다. 신기하게도 내가 당혹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풀면 사람들은 재밌어한다. 내가 좋았던 일을 풀면 사람들은 재미없어한다. 그렇기에 나를 팔기 위해서는 난 사고를 겪어야한다. 사고를 겪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무계획여행으로 다시 떠올리게 됐다.
역시 나는 이런 성향인가보다. 내가 계획형으로 억지로 바뀌게 된 이유는 20세가 되며 부터인 것 같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는 온실 속 화초의 느낌이 약간 있다. 아주 계획형이며, 겉멋이 많다. 그친구는 고교때 유학반 소속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일본의 명문사립대에 진학했다.
그에 반해 나는 지잡대, 학생때, 공부를 안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수많은 수상 경력, 나쁘지 않은 인성, 강인한 체력, 아쉽게도 진학에는 그런 것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규격 외의 본인은 결국 집 근처의 대학에 진학했다. 멀리 가서 자취비등 추가적인 비용이라도 줄이자는 마음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지금까지 내가 잘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망상이지 않았을까. 내가 받았던, 이뤄냈던 모든 것들은 전부 그저 운이 좋아, 성격이 좋아, 이뤄낸 것이지 않았을까. 내 실력이 아니지 않았을까.
'망상이었던 걸까? 망상이었던 거지? 망상인 거야. 그래. 망상이었던 거야..'
그렇게 대학 학기 시작됐다. 1학기는 코로나, 2학기는 부분대면이었다.
대학에서는 끼리끼리 모인다. 지잡대이니 지잡대에 갈만한 애들이 모인다.
나는 최대한 겉돌았다. 물들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나 쏘니야! 여기에 있을 존재가 아니라고!'
이러한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망상이라는 두번째 생각이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학교의 사람들의 생각방식에 더 이상 못 버텼다. 그리고 코로나도 못버텼다.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학교를 가는 시간에 1시간 거리의 광역시에 시외버스를 타고 서점에 박혀있었다.
계속 나가지 않으니, 학교에서 부모님께 연락이 갔다. 대학인데 부모님께 연락이 간다는 건 의외였다. 게다가 학사경고까지 받게됐다. 부모님은 크게 노하셨다. 나는 그렇게 설명했다. 당시는 편입 준비를 위해 서점에서 경제,경영 자격증을 공부해서 자격증을 땄다. 학점은행제로 편입을 하야겠다고 생각을 하여,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경제 자격증을 준비한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이딴 곳은 있을 수 없다. 수준차이가 너무 난다. 공부를 안 한 건 내 잘못이지만, 그것말고 내가 남들 위에 있으면 있었지. 내 능력을 여기서 깎을 순 없다. 차라리 편입을 준비하겠다.라고 말을 했다.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냥 이곳에서 열심히 하라는 태도였다. 넌 부모를 배신했다. 너를 믿어줄 이유는 없다. 라고.
지금와서 돌아보면 참 죄송하다. 배신한 게 맞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어렸다. 그래서 목도를 든 아버지랑 싸웠다. 감정조절이 안됐다. 갓 스무살이 된 난.
그리고 난 가출을 했다.
약 1주일간의 가출이었다. 잘 곳이 없었다.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피시방을 갔다. 피시방에서 내가 들고 온 10만원을 조금씩 아껴서 썼다. 저녁은 간장계란밥을 먹었다.
그렇게 많이 하던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 건 무슨 이유일까. 정말 좋아하던 게임이었다.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앉아서 잠을 잤다. 새벽 5시쯤에 일어나서 나갔다. 피시방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했다. 밖으로 나갔다. 새벽은 아주 추웠다. 쪽잠을 잔 나는 아직 피곤했다. 햇빛이 많이 드는 공원에 갔다. 그곳에서 쉬었다.
둘째 날도 피시방. 셋째 날은 힘들었다.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전부 재워주진 않았다. 그치만 한 명이 나와 같이 있어줬다. 독서실에서 잤다. 24시간 독서실이다. 거기서 영상이나 편집했다. 엎드려 자니 금새 해가 밝았다. 그 친구는 돌아갔다. 고마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휴대폰에는 계속 전화가 오고 있었고, 무시했다. 어머니가 카톡으로 돌아와도 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집에 돌아갔다. 아버지는 왜 돌아왔냐고 말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곧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푹 잠에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은 같았지만,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느낀 나는 어쩔 수 없이 난 아직 몸만 어른이구나 라고 꺠달았다.
집을 구하는 방법도, 돈을 버는 방법도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군대에 가라고 했던 말을 순응하고 입대하게 됐다.
제대후 나는 체력이 엉망이 됐고 생각도 없어졌다. 항상 피곤에 찌든 상태였다.
체력과 생각이 엉망이 된 이유, 야간의 불규칙한 근무로 낮에는 잠, 저녁에는 근무, 나머지 1, 2시간은 일본어 공부였다. 그리고 울고싶을 때, 담배를 배우게 됐다. 담배를 엄청 빨다보니, 숨은 거칠어졌고, 머리는 멍해졌다. 아무생각이 안드는 게 오히려 좋았다. 생각을 하게 되면 괴로워질 뿐이었으니.
그 떄문인지 제대후에도 보수적인 군대 마인드에 못 벗어났다. 누군가를 만나면 벌벌 떨었다. 대인기피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냥 사람들을 보면 전부 선임들 같았고 너무 무서웠다. 그런 고민 아는 친구는 병원에 가봐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만약 가서 진짜 무슨 정신질환이라고 말하게 된다면, 나는 진짜 그 환자가 되는 거니까 말이다. 확정선고를 받게되면, 나는 진짜 병에 걸린 거니 말이다.
나약하다고 인정하기도 싫었고 이렇게 변해버린 내가 한심했다.
밖에 나와 복학을 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학교지만 순응하자. 그래도 그학교는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똑같은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예전과 다르게 반응을 했다.
'역시 그렇구나..'
이게 끝이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다. 부모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만나이 22세의 내가 혼자서 결정해도 될거라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비자를 받은 후, 말을 했다. 부모님도 다녀와라고 말을 했다.
이후 군대의 돈을 차마 쓸 수 없었다. 제로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야겠다. 한 대기업에 계약기간을 가지고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서 원자력에 관한 것을 배우게 됐다.
업무는 반복작업 사무였다. 그곳에서 관련된 서류를 보면서 간단한 품질서비스, 부품, 용어를 알게됐다.
7개월간 돈을 번 후, 1개월 마지막 휴식.
이후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도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본업은 팀랩의 일원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