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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Dec 01. 2022

유난한 도전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토스는 실패하지만 결국 성공한다

맑고 고요한 호숫가. “우아아아앙” 모터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이 빠르게 지나간다. 10초쯤 지났을까? 잔잔하던 표면에 물결이 생기더니 이내 파도가 친다. 아마 그 수상스키를 보지 못했다면 호숫가에 왜 파도가 치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유난한 도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지난여름 청평호에서 마주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장면과 다른 점이 있다면 파도가 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고, 잔잔하던 호수가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바다였음을 ‘토스’란 앱이 증명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 바다에서 많은 걸 누린다. 매일 토스뱅크 카드를 쓰고, 음식 배달이나 온라인 쇼핑은 토스페이로 결제한다. 투자는 토스증권으로 한다. (tmi지만 육아휴직 중에는 토스뱅크의 마이너스 통장도 쓰고 있…) 앱 하나로 이렇게 편리하고 쾌적해도 되나 싶을 정도.


이 책은 사용자 관점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그걸 구현하기까지 ‘유난한 도전’을 지속하며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하얀 배경에 큰 글씨의 검정 제목만 있는 무향무취의 표지인데 본문을 넘길수록 땀냄새가 난다.

유난한 도전 본문 중

큰 줄거리는 창업자이자 현재까지 리더로 일하는 이승건의 궤적을 따른다. 보트의 시동을 처음 건 사람이자 여전히 보트에서 생존한 사람이다. 물론 이승건뿐 아니라 주요 순간에 함께 한 사람들도 제법 등장한다. 멋지게 수상스키를 타고 보트를 떠나는 사람, 나중에 올 사람들을 위해 더 큰 보트를 구해와 튼튼하게 다듬는 사람도 있다. 특히 토스가 증권사, 인터넷은행, PG결제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을 담은 5장은 세 개로 나뉜 화면이 동시에 펼쳐지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안 될 거야’라는 말은 언제나 토스에는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였다.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터져나올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정경화, <유난한 도전> 5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 (p.238)


기업의 10년사를 다룬 책만큼 흥망성쇠를 성실히 기록하고 있는데, 결사항전, 블리츠(기습공격), 전장, 엔드게임 등 전쟁에 빗댄 표현이 유독 많다. 창업자와 토스팀이 여러 번 망해봤기 때문일까. 심지어 보트가 잠시 줄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던 때도 있었다. 이승건은 김소영 대표와의 북토크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버텨보니) 끈기란 어떤 결심의 결과가 아니라 상황의 결과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상황이 간절함을 만들더라고요.” 토스팀에게 이런 표현은 단순한 비유나 은유가 아닐 확률이 높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끝끝내 승리할 수 있는데, 그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걸 이룰수록 작은 일들이 더 생각나는 것 같아요.” (남영철)  정경화, <유난한 도전> 5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 (p.252)


“(중략) 이승건은 내내 진심이었다.”  정경화, <유난한 도전> 5장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 (p.251)


이 책의 목적은 뭘까? 사사(社史)를 만드는 일은 흩어진 사료를 모아 잘 정리하고 내러티브로 완성하는 첫째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프롤로그에 나와있듯, 대표나 경영진이 톱다운으로 지시하여 만든 책이 아니다. 저자이자 토스 팀원이 자발적으로 해보겠다고 하여 기획하고, 내부의 공감대를 얻어 진행한 프로젝트다. 감히 추측해보자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토스팀에서 캐낼 수 있는 원석 같은 이야깃거리가 워낙 많아 이걸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 동력이 됐을 것 같다.


첫째 목적은 달성한 걸로 보이니, 둘째, 셋째 목적의 달성 여부는 독자에게 달렸다. 개인적으로는 토스팀을 거쳐간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존중, 격려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그동안 미디어에 파편적으로 보도된 것으로는 알 수 없는 내막까지 솔직하게 적혀 있어, 회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이별은 늘 느닷없어서, 매번 처음 겪는 듯한 상처를 남겼다. 이승건은 수년간 등을 맞대고 일했던 동료들이 떠나며 남긴 메일에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정경화, <유난한 도전> 4장 ‘로드바이크가 불편한 이유’ (p.206)


논픽션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에서 배울 점도 많다. 도표나 사진 하나 없고, 좁은 여백에 글자만으로 빼곡한 336페이지가 술술 넘어간 건, 저자가 워낙 글을 잘 쓴 덕분이다. 쉽고 간명한 문장 쓰기는 기본이요, 간혹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면, 상황 묘사가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했다(여담이지만 본문에 닭볶음탕집, 갈비탕집이 배경으로 나올 때면, 샐러드를 주문해도 그 위에 있는 고기만 골라먹을 정도로 육류를 선호하는 저자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정성스럽게 그러나 포악스럽게’, ‘그렇게 우리는 실패하지만 결국 성공한다’, ‘목표는 대담하게, 실행은 다다다다’, ‘기다려온 미래’, ‘경계 없이 꿈꾸는 것’ 등 장이나 본문을 나누는 제목들도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몸에 훈기가 돌았다. 혁신, 핀테크, 스타트업 이런 단어들을 모두 덜어내도 좋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저마다의 목표를 향하여 유난한 도전을 치러내고 있는 이들과 만나 공명하기를 소망한다”라는 정경화 저자의 프롤로그처럼, 살면서 한 번은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잡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평소 마주하던 호숫가가 실은 아직 물결치지 않은 바다일 수 있다.


글 | 손현 (2022.11.30)


Note.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저는 현재 토스에서 육아휴직(2022.4-2023.4) 중입니다. 휴직 중 출간 소식을 접하여 이번에는 내부인이 아닌 순수한 독자의 시선으로 즐겁게 독서를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멋진 프로젝트를 마친 팀원이자 동료, 저자에게 먼저 축하를 보내고 싶어요. 책을 읽는 동안, 그가 저자로서 가장 적절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부러움과 질투도 느꼈고요. (혹시라도 저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더불어 놀라움과 존경, 그리고 책으로 정리하는 동안 앓았을 시간에 대해 격려를 표합니다 :)

지난 11월 29일 역삼동 마루180에서 열린 북토크

<유난한 도전> 출간과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테이크 원>도 함께 떠올랐어요.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각자 선택한 단 한 곡의 노래를 최고의 라이브로 남기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거든요. 단, 그 무대가 원 테이크에 담기는 컨셉입니다. 책을 흥미롭게 읽으신 분이라면, <테이크 원> 중 AKMU(악뮤) 편을 추천합니다. 200여 명과 함께할 공연의 원 테이크 촬영을 앞두고 이 모든 걸 상상하고 기획한 이찬혁이 한 말과 <유난한 도전>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연결되더군요.


"항상 저만 진심이었거든요. 근데 (테이크 원 때는) 이거 진짜다. 진심이다. 모두가." — 이찬혁(싱어송라이터, 작가)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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