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한겨울에 우리에게는 축제가 필요하다
며칠 전, 아내가 밤나들이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친구가 신차 뽑았다고 시내 드라이브시켜준대.” “어디로 가는데?” “일단 신세계 본점 지나면서 크리스마스 장식 보러 가재. 다음은 나도 몰라.” 이번에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 장식이 화제가 된 모양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SNS를 통해 열댓 번은 간접적으로 경험했으니 이쯤 되면 근처라도 다녀온 기분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기독교와 가톨릭, 그리고 유통업계의 마음이 들뜬다. 심지어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일본 같은 나라도, 종교가 없는 친구도 이즈음이 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긴다. 한편 성경에는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근거가 없다. 크리스마스가 이날로 정해진 데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고 한다. 교회 내에서 시작된 전통으로 보는 시각과 로마의 절기를 흡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후자는 서기 350년에 당시 주교 율리오 1세가 동지 전후에 있는 기존의 로마 다신교 축일과 통합하기 위해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신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고, 이게 오늘날까지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요즘 크리스마스 때 더 자주 볼 수 있는 존재는 산타다. 미국의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중 ‘크리스마스의 정신’ 에피소드에는 예수와 산타가 등장한다. 아이들을 따라 쇼핑몰로 간 예수는 내일이 본인 생일인데 산타가 오점을 남긴다고 비난하고, 산타는 자기가 행복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며 반박한다. 결국 둘은 몸싸움을 벌인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지만 정작 교회보다 쇼핑몰을 훨씬 자주 가는 나조차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애니메이션에서 갑자기 등장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 브라이언 보이타노는 이렇게 말한다. “애들아, 그딴 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홀로 되기 위한 한 시기일 뿐이야. 우리가 무얼 믿던 중요하지 않아. 단지 서로에게 좋아지기 위한 시기일 뿐이다. 그럼 안녕.”
크리스마스의 유래나 진정한 주인공을 따지기 전에, 학생 때 배운 지구과학을 떠올려보자. 사실 이 시기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빚어낸 계절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66.5도 기울어진 채로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북반구를 기준으로 1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지가 연말에 있고, 우리는 겨우내 새해를 맞는다. 당연히 사람들에게는 뭔가 기념할 만한 의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사샤 세이건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적은 구절은 같은 맥락에 있다. “연중 어느 때보다도 깊은 한겨울에 우리에게는 축제가 필요하다. 어둠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사샤는 정통 유대교 집안 출신이지만 아버지인 과학자 칼 세이건의 영향으로 신앙을 갖는 대신 천문학과 생물학을 토대로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지구가 해의 주위를 도는 일보다 더 ‘언제나’인 것은 없다. 50억 년 동안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수십억 년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한다.
어김없이 새해를 맞았다. 동지가 지난 지는 열흘이 되어간다. 새해에도 특별한 다짐은 없다, 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다만 계절의 순리대로 살면서 따뜻한 계절을 기대한다. 긴 어둠이 지나고 다시 빛이 돌아온다는 사실. 추위가 가시고 푸릇푸릇한 봄이 온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위안이 되고 감격스러운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지구를 본받아 묵묵히 내 하루를 시작해 본다. 지구에겐 50억 년 중 찰나에 불과한 순간일 테니.
Note. 어쩌다 보니 새해 칼럼을 쓰는 순번이 됐는데, 급하게 쓰다 보니 '크리스마스'라는 옆길로 새 버렸습니다. 결론은... 오늘자 신문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어제저녁, 담당 기자가 정중히 성탄 관련 분량을 줄여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고, 저도 이미 시기가 지났다는 데 동의해 다른 주제로 새로 쓰겠다고 했습니다. 이 원고는 대신 브런치에 발행합니다. 앞으로는 미리 글감들을 비축해놓아야겠습니다.
+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 | 손현 (20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