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인장을 샀다.

이름은 아직 없다.

by 이끼낀곰

아무런 계획도 없이 샀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나는 선인장을 사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렸을 적에 귀에다가 손을 대고 외계인과 통신을 하는 망상을 하거나, 아니면 중학교 때 어머니의 차 안에서 창가에 반사되는 달빛과 창밖에 빛나고 있는 달빛을 한 쌍의 눈이라고 생각하면서 저 먼 밤하늘과 머릿속으로 이야기하고 있던 그 버릇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상 속에서 선인장을 하나 사서 창가 쪽에 두어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긴 이름을 지어내곤 했다. 아마 제임스 에브라티온 그레임 덤 데 라이게리아 자르감 2세 같은 이름이었던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더 바보 같은 이름을 지어낼걸 그랬다.


막상 사보니 그렇게 이름 짓기는 힘들 것 같다. 가만히 화분 속에 앉아 있는 저 애가 자꾸만 그렇게 이름을 지으려는 나를 욕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런 이름을 지었다가 나중에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짧은 이름을 머릿속에서 찾고 있다. 사실 마음속에 한 가지 떠오른 이름이 있다. 수능이라는 이름이다. 특별한 뜻은 없고 그냥 내가 수능 원서접수할 때 쓰려고 했던 돈으로 샀던 선인장이기 때문에 생각했던 이름이다.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랑은 달라야 한다는 내 악착스러운 고집 때문에 나는 내가 수능을 포기한 이유에 특별한 이유를 적고 싶지 않다. 그냥 안될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혐오가 스스로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내가 후회할 행동을 하고도 나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혐오했고, 그것이 버릇이 되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난 두리뭉실한 망상으로 수능에서 조금 더 나은 성적으로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꿈을 꿨고, 나는 습관적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다.


물론 사람은 조금씩 항상 변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과거에 아주 어렸을 적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 나는 나 스스로를 혐오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아직 나는 나 스스로를 더 이상 혐오하지 않을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습관으로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습관이 있다. 만약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저 사람의 행동으로 본다면 저 사람은 아마 이런 행동을 할 거야. 그래. 난 이 행동을 그만둬야겠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는 말아야지. 나 자신에게 수치스럽게도 나는 이런 습관으로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하나의 방식으로부터 도망친다. 어머니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어머니도 하나의 사람이니, 난 어머니가 슬퍼하거나 화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이게 한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또다시 혐오할 거 같다. 어머니에게 내가 수능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면 어떨까? 나는 우연히 머릿속에 뒤적거리지도 못하고 그만 입 밖으로 실수로 그런 말을 꺼냈고, 어머니는 화를 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냐고. 나는 한편으로 내가 부끄러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후련했다. 마음속에 응어리지는 것들은 좋지 않은 것인 것 같다.


나는 그날 밤에 마음을 정리하고 예전에 꿈꿨던 선인장을 사는 꿈을 다시 상상했다. 이름을 짓는 상상도 했다. 가까이서 보니 이름 짓기가 쉽지 않다. 수능이라는 이름은 짓기 싫다. 정리한 것은 사라져야만 한다. 나는 저 선인장에게 이름을 지어야 하고, 그 이름은 오래 기억할 수 있고, 부르기 쉬우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소설을 쓰며 인물들의 이름을 짓던 때가 떠오른다. 선이가 좋을 것 같다. 선인장이기 때문에 '선'이라는 이름도 어울리고, 선이라는 인물이 내 소설 속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고, 그 선이라는 인물이 깊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인장에 '선이'라는 이름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