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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Oct 28. 2019

단거리 달리기 선수의 쓸모없는 일기

단거리 전문 선수였는데, 어느 순간 장거리 선수가 되었다. 

사실, 나는 회사라는 곳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근에 든 결론이다. 하지만 그러한 결론이 생겼다고 해서 딱히 바뀔 것은 없다. 

삶은 계속되고 있고, 그만두기에는 다음 스텝이 없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파트 대출금이 너무 많다. 더 열심히 다녀야 할 것 같다. 


나의 삶을 복기해보자면, 나는 지극히 일관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타인에게 지적을 받는 것 역시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남이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남의 지적을 덜 받으려 했다. 나 역시도 남에게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주 미지근한 어쩌면 차가운 온도를 계속 유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삶은 혼자 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불가피한 조직생활은 계속 존재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 또 나만의 작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넌지시 내 울타리를 보여주며 선을 그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조직생활을 해냈다.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돌이켜보니 '그간의 불가피한 조직생활은 분명 끝이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단거리 일지 1. 

나의 원치 않는 조직생활은 대학시절 ROTC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그저 군입대를 미루고자 하는 마음에 덜컥 ROTC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조직생활. 그것도 군대식의 강압적인 생활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교내를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교내에서는 군인처럼 직각의 걸음걸이를 유지해야 했고, 선배들을 만나면 목이 터져라 거수경례를 해야 했다. 싫었다. 부끄러웠다. 청량한 캠퍼스에 민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틀은 깰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깰 생각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이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모아 온 용돈으로 선배들 몰래 차를 샀다. 단돈 90만 원짜리, 차가 움직이는 게 신기한 구식 레토나. 선팅이 너무 진해 운전에 방해가 될 정도였지만 나는 그 차를 이용해 선배들의 눈을 요리조리 잘 피하며 1년을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누군가의 선배가 되었다. 그 간의 악습은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동기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조금은 있었지만 결국 그러지는 않았다. 사실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대신 선배로서 나는 1년 동안 후배들에게 단 한 번의 지적도 하지 않았다. 


지적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냥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첫 조직생활 2년은 무사히 지나갔다. 



단거리 일지 2.

두 번째는 당연하게도 장교로서 군에 입대하면서부터 이다. 

이곳은 불합리한 조직생활의 총집합소였다. 나는 그곳에서도 내 울타리를 만들고 선을 그었다. 그저 3년만 버티면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모든 불합리함에도 순응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내 수고로움을 최소화할지만 고민했다. 당시 미혼인 장교들은 간부숙소라는 곳에서 함께 묵었다. 방세 칸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각자 하나씩 방을 사용했다. 거실과 화장실만 공유하는 일종의 하숙집 같은 곳이다. 내 몸하나 기댈 곳은 그곳뿐이었지만 나는 그곳이 싫었다. 함께 사는 선배장교가 자꾸 내 사생활에 참견했기 때문이다. 불쑥불쑥 방에 들어오기도 하고 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은 물론이었고, 허구한 날 방 사람들을 불러 모았기에 원치 않는 야식을 먹어야 하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명분은 있었다. 그저 군생활을 제대로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병사들과 똑같이 지내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오랜 기간 부대 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사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어차피 간부숙소도 그리 좋은 시설은 아니었으니. 그 덕분에 나는 생각지도 않게 부대 내에서 매우 열정적인 장교로 소문이 났다. 집에도 안 가고 부대에서 숙식하는 장교라니. 나는 그저 집에 가기 싫어서 그랬을 뿐인데. 


그렇게 반년 정도가 지났을까? 같이 살던 선배장교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 운 좋게도 3명이 사는 우리 집에는 내가 가장 선임이 되어 있었다. 이제야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동거인들을 모두 모아 두고 한마디 했다. “집에서는 서로들 말 걸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야” 


되 돌이켜 보면, 대화를 거부한 나의 선언은, '집안 내 선임으로서 내가 할 역할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더 많았다. 그 이후 우리가 살던 집 거실에서는 그 흔한 통닭 냄새 한번 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3년을 그저 잘 버티고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 



단거리 일지 3. 

세 번째는 박사과정을 다니면서이다. 

원대한 뜻이 있어서도 아닌, 그저 셀러던트로서 해야 할 필수과정이라 생각하며 박사에 도전했다. 그저 군대처럼,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한국의 박사들은 모두 ‘정치학 박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교는 인간관계로 얽히고설켜있는 곳이었다. 교수님들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다른 박사과정 동료들과 아주 깊숙한 관계를 잘 맺는 것이 중요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동료들이 하는 정도의 수준, 어쩌면 그 이하의 관계 정도는 꾸준하게 유지했다. 하지만 이도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또 나만의 울타리를 세웠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파트타임’ 박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으로 실무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별거 아닌 자료들도 직장생활 경험이 없는 ‘풀타임’ 박사 학생들에게는 신기한 자료로 여겨졌다. 


의도했던 대로 나는 그들에게 자신의 편도 아닌 그렇다고 적도 아닌 그런저런 존재가 될 수 있었고, 결국 나는 다른 동료들의 견제나 관심 없이 무탈하게 4년여간의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10여 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학교도, 군대도, 그 어떤 조직도 가시적인 끝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저 어떻게든 그 시간을 버티기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이놈의 직장이란 곳은... 그렇지가 않다. 분명히 언제라도, 내 의지에 따라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생을 항상 나를 밀어붙인다. 꼼수를 부릴 수도 없다. 

회사에서의 나의 말과 행동은 사라지지 않고 꼬리표가 되어 계속 나를 쫓아다닌다. 한 번의 실수는 시간이 지나도 중요한 순간에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 사이 나와 함께 달리던 동기, 후배들은 나를 앞지르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단거리 선수였다.


어떠한 근육을 어떻게 사용하면 짧은 순간 더 힘들이지 않고 달릴 수 있는지만 연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종목이 바뀌었다. 단거리만 달려보았는데 갑자기 장거리 종목에 투입되었다. 

달리기야 그동안 해 봤으니 일단 달리고는 있는데 자꾸 어딘가 삐걱거린다. 뭔가 밸런스가 안 맞는다. 어떤 근육은 너무 많이 써서 힘이 들고, 어떤 근육은 분명 힘이 남아있음에도 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연습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내가 달리는 트랙은 연습이 없는 실전이다. 


오늘 아침도 아주 잠깐밖에 쉬지 못해 덜 풀린 몸을 이끌고 달리기를 출발했다. 

10년째 이어오는 장거리 달리기를 이어서 시작한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기에 더 힘든 장거리 달리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달리라고 해서 달리고는 있는데, 지금 어느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거지? 이 달리기의 목적지는 어디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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