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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브 Sep 02. 2020

한국어 선생님 일기 07

07 하루에 6시간씩 수업하면 생기는 일들

오후 수업을 담당하고 딱 2주 만에 오후 수업의 꽃말은 ‘오전 수업 대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분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전 수업에 들어갈 수 없을 경우에 상비군처럼 바로 투입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학교에서의 두 번째 학기는 그야말로 내 인생에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던 일복이 터진 학기였다. 매일 여러 명의 학생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므로 개인적인 사유로 학교에 나올 수 없다면 반드시 대신 수업을 해 줄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에서 학생은 곧 고객, 그러므로 수업 결손이 절대로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대강은 A 선생님의 개인 사정 때문에 짧게 3일 정도 오전 수업 대강을 맡았다. 중국 학생들만 있는 오후반과 다르게 대강으로 들어간 반의 학생들의 국적은 꽤나 다양했다. 참여도와 호응도가 꽤 좋은 반이라 나름대로 즐겁게 수업을 진행했다. 오전 수업을 하고 바로 오후 수업을 시작했다. 6시간을 연달아서 강의를 하느라 계속 서 있었더니 골반이 당기고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6시간 수업을 3일 정도 하는 것은 사실 큰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할만하다 여기며 첫 대강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다음 대강을 맡게 되는 것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첫 대강이 끝나기도 전인 주말에 학교로부터 급하게 오전 수업 대강을 맡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B선생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수업을 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첫 대강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또 대강을 맡았다. 내가 오후 수업에서 담당하고 있는 수업과 다른 레벨의 수업이라 준비해야 하는 내용이 전혀 달랐다. 심지어 처음 맡아보는 1급 수업이기도 했다. 1급 학생들은 이제 막 한글 자모를 끝낸 상태라 사실상 수업시간에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이럴 거면 대학원에서 팬터마임 수업도 추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오전에는 1급 학생들과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투를 벌였고, 오후에는 공부의 의지가 갈수록 사그라드는 중국인 학생들을 다독여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기 위해 외로운 난리법석을 떨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50분 정도라 김밥이나 컵라면 같은 간단하고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끼니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연달아 수업이 있으니 여유로운 식사는 샤넬 보다 더한 사치였고, 이마저 학생들의 숙제 검사를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며 정신없이 입에 욱여넣는 수준이었다. 쉬는 시간을 쉬는 시간 1분도 없이 보내고 바로 오후 수업에 들어가 저녁까지 수업을 했다. 목도 문제지만 계속 서 있으니 다리가 퉁퉁 부었다. 첫 일주일 정도는 집에 돌아가서 자려고 누우면 다리가 저려서 한참을 주무르다 겨우 잠들곤 했다. 


그래도 일주일 대강을 부탁 받은 거라 이제 다시 여유롭게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출근해도 되겠구나 했는데, B선생님의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결국 나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총 세 반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만 있었다. 한국어 교원이라는 직업의 최대 장점인 ‘워라밸’이 전혀 보장되지 못한 나날을 보냈다. 그럴수록 나는 더 필사적으로 하루를 꽉 채워서 보내려 노력했다.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퇴근하고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다시 출근하는 것을 반복하니 결국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겼다. 그런데 병원에 갈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아 소염진통제를 먹으며 계속 서서 강의를 했다. 하도 절뚝거리며 다니니 학생들이 먼저 나에게 앉아서 수업하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소염진통제를 일주일간 먹었더니 아킬레스건염은 가라앉았는데, 이제는 목이 문제였다. 목이 자꾸 잠기기 시작하더니 후두염과 인후염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또 고생하고 약으로 겨우 살아났다. 나름 건강한 생활 방식에 과할 정도로 집착하는 스타일인데 주 5일에 하루 6시간 씩 서서 떠들어야 했던 학기는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워라밸 신이시여. 다시 저에게 돌아오소서.’ 

학생들을 향한 애정은 여전했지만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도 일이 많으니 좋은 점이 있었는데, 잡다하고 쓸데없는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하루는 머리-가슴-배로 나뉘는 개미 마냥 ‘수업 하는 시간’,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자는 시간’으로 나뉘었다. 하루에 하는 건 많은데 너무나도 일만 하는 진정한 개미의 삶이었다. 매일 밤 씻고 난 후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10초 내로 잠들기 일쑤였다. 


저질체력으로는 상위 10% 안에는 들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신께서는 나에게 적응력을 허락하신 것 같다. 다리, 아킬레스건, 목, 두통 온갖 잔병치레를 하며 아침마다 달력에 X 표시를 하면서 3주를 버텼다. 그러자 놀랍게도 더 이상 다리가 무겁지 않았다. 목도 그럭저럭 힘들지 않았고 적당히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수업을 많이 하는 만큼 넉넉하게 입금되는 월급을 보고 더 빠르고 산뜻하게 적응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역시 다 가지기는 참 힘든 게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워라밸에서 라이프를 살짝 포기하니 돈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을 떠나 하루 종일 일만 한다는 기분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다음 학기에는 제발 오후 수업을 맡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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