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돈과 성(性)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터부시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도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난감해하는 부모들도 많고, 부모의 스타일에 따라 엄격하게 돈을 규제하고 소유권을 뺏거나 아니면 반대로 방치 또는 방임하는 경우가 많다.
감사하게도 나와 남편은 성장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상처가 많다는 걸 17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통해, 수많은 대화와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급격하게 변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주위 지인들 또한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돈에 대한 상처가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강남이라는 동네에 살다 보니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읽기 시작하는 단어가 '임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돈이 늘 핫한 주제로 회자된다.
평범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근무하며 많지 않은 남편의 월급으로 이곳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눈높이에 맞는 유치원이나 영어 유치원을 보내기에는 월급이 턱없이 부족했고 나름 알뜰하고 지혜롭게 살림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생활비가 바닥이 날 때면 늘 불안하고 우울했었다. 한 건물에 살고 있는 시부모님이 내가 직업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다소 여유 있는 양가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기에는 우리 부부의 자존감이 너무 상처를 많이 받는 듯해서 그 당시에는 감히 입 밖으로 낼 용기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나의 돈에 대한 무의식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 즉 업은 컴퓨터 본체에서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다운로드되듯이 전달)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돈과 부의 무의식을 살펴보니 평생을 하반신 장애인으로 생활하면서 일반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전문직으로 자수성가한 친정아버지의 처절한 돈의 무의식을 닮아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육아서를 읽듯 조금씩 돈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반 신문과 경제 신문 2부를 꾸준히 구독하면서 스크랩을 시작했고, 가끔 경제 관련 매거진이나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돈의 흐름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기회가 될 때마다 무료 재테크 강의도 찾아다녔고,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금융기관에서 주최하는 소규모 투자자 모임에도 용기를 내어서 가보기도 했다. 그런 곳에 가면 경제 전문가들과 부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나도 모르게 인맥도 넓어지고, 또 그분들의 고견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되니 1석2조인 것 같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돈을 주거나 적게 주어서도 안 될 듯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용돈을 타이트하게 주면 아이 본인도 모르게 욕구불만이 생겨서, 후에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일정 수입이 생기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내면의 어린아이가 분노해서 흥청망청 써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한 처음부터 돈에 관한 감각이 미숙한 상태일 때 부모가 아끼지 않고 과하게 용돈을 주다 보면 아이가 돈에 대한 균형감각이 사라지고 본인 능력에 비해 눈만 높아지는 불행한 상황이 야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초, 중학년까지는 용돈을 달보다는 주급으로 주는 것이 그런 욕망을 통제할 수 있어 아이 스스로도 편해하는 듯하다.
강남에 산지도 어느새 15여 년, 나에게 쓸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불편한 면이 많았다. 주변의 이웃들과 비교되어 자존심도 상하고 기가 죽을 때도 빈번했으며 특히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척척 해주지 못할 때는
늘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흔한 강남 아이들답지 않게 두 아이가 검소하고 내면이 더 단단해지는 이점도 있는 듯하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도 모르게 주부로서지혜로워진 면도 크다. 요즘은, 끊임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휘둘려 소비를 하다가 사들인 물건에 지쳐서 오히려 물건을 조금씩 버리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다 조금 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이미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이 만연해 있다. 우리 집은 옷과 책, 장난감을 물려받은 경우가 허다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전통 가치관에서 바라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외국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이러한 소비 습관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더 나아가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더 멋진 일로 인정받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중고 거래나 공유 경제, 아름다운 가게 같은 곳이 활발해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흔히 사람은 돈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 그릇의 크기만큼 돈이 따라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행여 이 그릇이 미처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 좋게 일확천금이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성공은 오히려 화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도 반업 주부로 성실히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내 그릇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남편의 월급에 불만을 가지는 어리석음을 택하지 않았고, 아내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함께
가정 경제의 의무도 기꺼이 나눌 만큼 성장했다. 어떤 돈이 들어오더라도 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사용할 것이며 돈을 두려워하고 그 기세에 눌린 부자가 아닌 돈을 적극 활용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영향력 있는 부자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