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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May 07. 2024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주 양육자인

부모가 어쩌면 우리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활하려고 늘 노력을 한다.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탓인지 양육에 대한 과한 책임감인지 그토록 기다리던 첫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단순히 기쁘기보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찔해지는 경험을 맛보았다. 자이가 강한 편이라 결혼 전까지 나는 오로지 내 인생에만 관심 있을 뿐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던 발랄한 20대에 준비된 엄마가 아니라 어쩌다 엄마가 된 나로서는 어떻게든지 이 아이에게 원망을 듣지 않는 후회 없는 육아를 해야겠다는 지나친 의무감만이 그 시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긴 육아의 터널과 세월을 지나 어느 정도 양육의 중반기에 이르니 아이와 나는 누가 나을 것도 우위일 것도 없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걸 자주 깨닫게 된다.  만약에 영(靈)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아이의 영은 어른보다 순수하고 오염이 덜 되어 직관도 훨씬 뛰어나고 우리의 본능에 가깝고 사랑의 원형에 가까울 때가 많다는 걸

생활하면서 종종 느낀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과 왈가왈부하고 다투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잔잔한 갈등 속에서 아이를 우리와 동등한, 다만 키가 작은 어른으로서 대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나의 육아도 훨씬 편해졌다. 이런 현상을 두고 김미경 원장님은 우주적 시각으로 보면 부모와 아이는 동갑과

진배없다고 했다.


벌써 4-5년 전인 큰 아이 초 5학년 무렵쯤(2014년), 지방에 사는 친척이 서울로 여행을 와서 가이드도 할 겸

서울 N타워로 나들이를 같이 갔다. 투어 후에 친척들이 선물을 사주겠다고 해서 기념품 샵을 둘러보던 중 딸아이는 거침없이 만원에 가까운 검은색 패션 마스크를 골랐다.  여자아이는 특히 반듯하고 튀지 않는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틀 속에서 자랐던 내 기준에서는 그 마스크가 강해 보이는 블랙 컬러라 날라리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반항끼 가득한 불량스러운 청소년들이 쓸 법한 제품이라 내심 못마땅해서 계속 다른 제품을 권했는데 딸아이는 끝끝내 그 제품을 고집해서 한 동안 그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강남의 유명한 가로수길을 산책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가 자랄 때 환절기에 사용하던 하얀색 면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의식하게 되었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아... 나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개방적이고, 권위적이지 않고,  아이들을 방목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라 '마스크는 흰색이어야 해', '마스크 가격은 1~2천 원이면 되지'라는 고정관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이제 막 10대에 들어선 아이들은 20대 아이들을 바라보며 패션과 문화, 사고방식을 같이 공유하고 있는데 나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얼마 전에 이루어진 모 실험 결과에 따르면 40-50대 전문적인 기업 투자 분석가들보다

10대 아이들이 선호하고 열광하는 브랜드에 투자할 경우 수익률과 적중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한다.

그 정도로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어느 부분에선 어른들보다 더 정확하고 미래지향적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아이들과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엄마로서의 내 의견을 겸허히 내려놓고 아이들이 요청하거나 필요에 의해 조르는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늘 귀를 열어놓고 그 제품과 서비스의 장단점에 관해 배우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작은 컴퓨터라 할 수 있는 최신 스마트폰도 1-2년마다 폐기 처분되는 요즘, 나를 포함한 우리 부모 세대들은 여전히 7-80년대 안테나를 장착하고 그것에 의지해서만 세상을 탐색하고 고집하고 살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여전히 독신을 고집하고 자식을 낳지 않고 살았더라면 나의 편협한 세계관에만 머물러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게 된다.  10대의 두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는 희생적인 역할로만 느껴졌던 엄마로서의 내 삶도 아이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보다 젊은 사고방식과 감각으로 또다시 젊은 시절의 신나던 세상을 한 번 더 살아가는구나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함도 느껴졌다.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10대들의 메이크업 (어른들이 보기엔 진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지역에 상관없이 초등 고학년만 되면 화장을 시작하고, 부모가 허용적일 경우는 그나마 문제가 커지지 않지만, 부모가 억압적이고 '학생은 ~~ 해야 한다'는 권위적인 생각이 강할수록 아이와 심한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를 주위에서 자주 보았다. 우리 집 또한 딸아이가 화장을 시작하면서 나 몰래 가격이 저렴한 중고 화장품이나 싸구려 화장품을 쓰기보다는 피부건강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사용하기를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권했고, 다행히 아이도 잘 따라주고 기꺼이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딸의 화장품과 메이크업에 관한 지식은 웬만한 대학교 뷰티학과 수준으로 방대해지고 깊어졌다.  이모나 친척들이 화장품을 선물할 때 딸아이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다. 요즘은 둘이서 각 매장별 포인트도 공유하고 쌓으며 예뻐지고자 하는 여자로서의 욕망과 삶 또한 충분히 즐기고 있으며 모녀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 사춘기 발달 과정을 공부해 보면 이 시기에는 특히 시각의 뇌가 발달해서, 10대 중후반에 외모에 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20대에 이르면서 조금씩 신경을 덜 쓰게 된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 성장의 메커니즘을 하나 둘 공부하고 알고 나니 더 이상 단순한 메이크업 가지고 쓸데없이 실랑이하거나 싸울 이유가 저절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아이와 갈등을 겪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만의 문제점이 아닐 수 있다. 불교에 내려오는 설화 중에는 <탑 앞의 소나무> 이야기가 있다. 탑 앞에 심어진 키가 작은 어린 소나무가 늘 거대한 탑이 자신을 가려 시야도 답답하고 햇빛도 맘껏 못 받는다며 탑을 원망했는데, 어느 순간 소나무가 자라 탑을 가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아이의 문제가 아직 문제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부모로서 내 시야가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얽매였을 경우가 크다. 나 또한 일방적으로 탑을 원망하는 소나무가 되기보다는

탑과 함께 어울려 멋진 풍경을 자아내는 소나무 같은 멋진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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