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관점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부모들이 불안과 조바심으로 인해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이나 부정적인 면에 좀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과거의 나 역시 그런 미성숙한 부모였다.
만약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을 보거나 일부만 보게 되면 본인이 보는 몇 장면을 작위적으로 해석해서 주인공이나 상황에 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에 대한 주변 사람이나 어르신의 오해도 종종 이와 유사하다.
세상에 완벽한 어른은 없다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이처럼 구는 어르신은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각자의 속도대로 자기 성찰 혹은 자기 수행을 하며 마음을 닦아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우리도 평생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도 두 아이를 키울 때 주변의 도움을 요청할 상황도 아니었고 홀로 외로운 독박 육아의 연속이었기에 늘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많이 불안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끔 신랑이나 아이의 담당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며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의 의문스러운 행동이나 말을 자주 전달해 주고 어떤 연유일지 물어보곤 했었다. 하지만 이 대화는 문제는 돌아오는 답변의 대부분이 긍정적인 피드백이라기보다는 그들도 같은 맥락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아이의 문제로 인식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인 나는 되레 더 큰 불안감을 떠안게 되고, 내 아이를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 비슷한 것이 왔다. 아이에게는 신과 다름없는 엄마가 본인의 아이를 1도만 부정적으로 보아도 우리가 수학시간에 사용하던 각도기처럼 그 끝은 큰 차이로 벌어져 아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슬픈 시선만 남게 된다. 나의 육아 스타일은 경상도 여자 특유의 성향이랄까,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궁리하기보다 일단 몸으로 부딪히는 다소 다혈질적이고 빠르게 실행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난 아이들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어른보다 경험이 많지 않고 미숙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고 지체될 수밖에 없음에도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미숙한 엄마는 늘 아이를 다그치며 조바심에 말끝마다 "너 때문에~~"라는 관용구를 달고 살았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둘째가 조용히 다가와서 "엄마, 부탁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실 때 제발 너 때문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그럴 때마다 제가 자꾸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왕이면 너 덕분에~라는 말로 바꿔 얘기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두 아이들의 유치원 시절, 살림과 육아에 찌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부정적인 단어를 내뱉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말투는 많이 바뀌었고, 남편이나 시부모님이 가끔 아이를 혼낼 때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속상했을 아이 마음을 다독거려 줄 수 있는
조금은 다정한 엄마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웃집 아이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내 아이에 관한 일에서는
또 집착하고 늘 걱정을 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에는 건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이다. 또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면 엄마 자신부터 상당한 내공과 공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육아의 진실? 법칙? 같은 것을 깨달으면서 대한민국 입시제도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의 학교 성적이나 상장 등에 더 이상 상처를 받거나 열받지 않게 되었고, 대신 고단한 제도 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작은 입시라고 일컫어지는 중3 부모들도 큰 고통을 겪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 부부의 소신으로 선행학습을 전혀 시키지 않았던 딸이 이번 학기 내내 수학을 붙들고 살았는데 결국 기말고사에서 무너졌다. 성실하고 지적인 호기심도 강해 중간고사까지는 꽤 높은 점수를 유지했는데, 선행을 한 친구들은 고등학교에서나 나올 법한 난해한 수학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풀어내는 것을 보고 딸아이는 뒤늦게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로서 마음 아팠지만 각자의 마음을 추스르고 난 다음날 아이 등교 후에 조용히 문자를 보냈다.
"사랑하는 내 딸 00아. 학생으로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는 이번 기말고사 점수보다
너 자체를 더 믿고 사랑한단다." 문자를 보내며 살짝 눈물이 나왔다. 엄마로서 내 자신도 참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세상엔 정말 공짜가 없다. 성숙한 엄마가 되기 위해 육아서도 읽고 강연도 찾아 듣고, 내 안의 부정성과 불안, 걱정, 근심 등을 걷어낸 후 아이들을 바라보니 밤하늘의 별처럼 항상 제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