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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Sep 28. 2023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37) ‘술’

서른일곱 번째, ’ 술‘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


시어머니 명희의 ‘술’에 관한 이야기


 나는 거실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은 내가 사랑했던 고마웠던 이의 기일이다.

술잔 속에 나의 인생이, 사랑했던 이의 희로애락이 넘쳐흐르고 있다. (계영배 ^^)


‘술’하면 많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내 삶 속에서 취해있다.

아름다운 어린 시절 고향집에 나의 어머니.

명절 때면 늘 술을 담으신다. 밭에서 재배한 보리로 누룩을 만드셔서 술을 빚으셨던 나의 어머니!

집 뒤뜰 마당에다 묻어 놓으시고 명절 때면 제주로 사용하셨던 나의 어머니.

“조상님께 올리는 것이라서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시며…

아! 그때가 언제였던가…


나, 아니 우리 집은 술이 몸에서 거부 반응을 하지 않는 집안이다.

오라버니, 나, 남동생 또한 술을 잘 마신다.

작고하신 오라버니 말씀이 떠오른다.

“알코올은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만들어서 알맞게 마셔야 한다”라고.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술을 마시면 양처럼 순해지는 사람이 있고, 사자처럼 사나워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신 말씀…


나는 술이 나의 몸에 들어가면 모든 사물들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Sad movie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남편은 술을 전혀 못함) 가로등이 모두 눈물 흘리고 있다(?). 나도 울고 있고…

어린 시절 결혼해서 늙어버린 내가 안쓰러워서일까. 말없이 운전만 하고 있는 늙은 반려자다.


나의 손자.

중학생 신분이다. 박학다식하면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고 있는 손자다. 블로그를 개설해서 글도 쓰고 있다.

얼마 전 손자는 막걸리를 제조해서 가져왔다.

전통시장에서 ‘누룩’을 구매해서 스스로 만들었다고 한다.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웃었는지 “할머니 술 잘 드시니까 만들어 왔다”라고. 어린 손자가 제조한 막걸리를 선물 받고 예쁜 잔에 담아서 예쁘고 우아하게 음미했다.

<손자주조> 막걸리.


술을 마시면 모두 눈물 흘리는 것처럼 다가왔던 사물들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특별하고 특이한 손자 덕분에…

‘술’ 때문에, 술에 내 마음이 잠길 때는 눈물 흘렸고,

‘술’ 덕분에, 내 마음이 떠오를 때면 미소를 짓는 세월의 희로애락을 빚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술을 빚는 정성과 그 마음으로…!


9월 11

김명희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술’에 관한 이야기


나는 술을 좋아한다.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 블랜디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함께 마시는 술도, 혼자 마시는 술도 좋아한다.

기쁨을 나누는 술도 좋아하고, 고된 노동주도 좋아한다.


처음 술은 엄마와 마셨다. 참이슬이었는지, 청하였는지 한잔을 받아 들고 ”으-;“했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 어느 대학생들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술을 그냥 ‘열심히‘ 마셨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한참 ‘세계맥주’ 집이 유행했다. 다양한 맥주를 마셔 볼 기회가 많았고, 취향이 생겼다.

왜 그리 에탄올 희석주만 찾고 있었던 건지… 술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다양한 맥주의 종류를 알게 되었고, 흔히 마시던 한국의 라거 보다는 묵직하게 바디감 있는 맥주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구남친 현남편의 추천으로 처음 마셔봤던 IPA <스컬핀>은 크- 머리가 띵! 하게 새롭고 맛있었다.


그러다 내가 직접 술을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로 생각이 흘렀다.

가장 관심 있던 건 맥주였지만, 수제 맥주를 만들려면 기계가 필요했고 해외에서 구입해야 하는 부피가 꽤 큰 기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눈을 돌리게 된 것이 전통주, 막걸리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나는 <막걸리 학교>를 찾아갔다.


한국 주류의 역사, 막걸리의 흐름 등을 배우며 막걸리를 빚었다.

지금은 정말 다양한 전통주들과 한국 맥주, 심지어 위스키와 진까지 만드는 양조장이 생겼지만 정말 불과 6-7년 전만 해도 ‘우리 전통주 시장에  젊은 친구들이 필요해요 ‘라며 관심을 요하던 때였다. (아! 그때 내가 주류 시장으로 뛰어들었어야 하는데 ㅎㅎ)

그래서 내 또래는 많지 않았고, 여자는 더더욱 적었지만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빛을 반짝이며 애정을 쏟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막걸리는 포천 막걸리 밖에 모르던 내가 양조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술들을 주문하고, 양조장 투어를 다녔었다.


글을 쓰며 예전에 함께 막걸리 공부한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또래 언니는 몇 년 전 양조장을 열어 사랑받는 막걸리를 만들고 있었고, 또래 동생은 전통주 전문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몽글몽글 무언가가 피어났다. TV 에서나 유명 유튜브에서 전통주가 소개될 때마다 설레는데- 나와 같이 배우던 사람들이 실전에 있다고 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생각해 온 것을 꾸준히 이뤄나가고 도전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언젠가 나도 머릿속에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실전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언제쯤 술을 다시 제대로 마실 수 있을까. 건강하게 오래 술을 마시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의식의 흐름을 잠재우며 새로 나온 막걸리들을 검색해 본다.


아 막걸리 마시고 싶다!

지금은 비록 무알콜 칭다오를 옆에 두고 글을 쓰고 있지만 모유수유에서 해방(?)이 되는 날, 거나한 축배를 들어야겠다.


혼자 처음 집에서 담근 막거리들




P.S

 메인 사진은 시어머니와 처음으로 제대로 맥주 한잔 했던 여행.

 둘째 모유수유 해방(?) 후 한잔해요, 어머니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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