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에 대한 배려
나의 첫 글을 어떤 주제로 적어야 할지, 이왕이면 그럴싸해 보이고 좀 그럴듯하고, 긍정적이고 뭔가 읽을수록 멋진, 그런 글을 쓰고 싶어 내내 글쓰기를 미뤄왔는데 평소 매일 쓰려고 하는 ‘모닝페이지’를 쓴다는 느낌으로 최근 있었던 일을 덤덤히 써보려고 한다.
문체며, 어휘며, 띄어쓰기, 맞춤법 등등 서툰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너 틀렸어”라는 말을 혹여나 들을까 겁이 나지만 읽어주시는 분들께 넓은 아량을 구하는 심정으로, 글 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나에게도 글쓰기가 주는 평화가 있기에 쓰다 보면 그 경험으로 인해 상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달래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도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적어가 보련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오래전부터 ’ 예술가는 가난해야 예술가다 ‘라는 말이 나오듯, 돈 안 되는 예술을 하는. 그것도 클래식 성악가.
하지만 노래를 전공으로 선택하기로 결정하고 2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성악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 장래 희망을 “성악가”로 적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꿈을 이룬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복한 건 몰라도 감사하긴 했다. “장래희망”의 직업을 갖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노래 공연으로 돈을 벌고 노래를 가르치며 돈을 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합창단과 미국 교회 투잡을 뛰며 고군분투했을 때, 한국에 들어와 대학강사로 출강하며 개인 래슨도 하고 공연도 가끔 하면서 바쁘게 지냈을 때 나는 종종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현타가 왔었다.
책과 악보로 무거웠던 책가방을 메고 도시락가방까지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올라서던 그 어느 저녁을 잊지 못한다.
“ 아, 힘들다”
그렇게까지 바쁘게 살았어야 했나, 싶은데 다들
그렇게 사니. 나보다 더한 동료들도 있었기에 나 또한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다. 돈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음악하는 사람, 대다수가 프리렌서라서, 우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물 들어오지 않을 때에는 상당히 힘든 보릿고개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암튼 난 참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작년에 나는 다시 미국으로 나왔다.
한국에서는 오브리, 미국에서는 긱(gig)이라고 해서 이를테면 행사나 일회성 공연을 가리키는 게 있는데 며칠 전 있었던 긱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 긱은 애국가 제창을 하는 긱이었다. 긱에 따라 곡 수가 다양한데 애국가 제창 하나만 하는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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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 공연을 관람하게 되어 알게 된 코리안-아메리칸인 P 시의원이 주최한 행사로 그는 나에게 한국 관련 행사가 있으니 애국가 제창을 부탁했다.
P 시의원을 처음 만나게 된 건 내 공연 리셉션 자리에서였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공부를 끝내고 자리 잡고 연주자로 먹고 살아기기 위해 애쓰는 나이 어린 젊은 후배 음악인들을 보면 내 유학시절이 생각나 나도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인데 혹시나 그들을 위해 공연 기회를 그가 마련해 줄 수 있을까 하여 (정치인이니 아는 사람들이나 루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을까 하여) 내가 적극적으로 그에게 접근(?)하게 되었다. 다행히 내 고민에 그도 흔쾌히 도와줄 의향을 표시하게 되면서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내가 P의원이 마음에 든 부분은 무엇보다 ‘본인은 연주자들이 연주에 대한 페이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는 데에 있었다.
이를테면 간혹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열정 페이‘를 요구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비단 한국사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미국인 동료를 통해 최근 알게 됐다. 그리고 돈 안 받고 노래했다가 계속 열정페이를 요구할 수 있으니 절대 무료로 노래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그는 적어도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튼, 그래서 덕분에 이번 애국가 제창에 대한 페이 여부 또한 편하게 물어보았고 P의원 또한 당연하다며, 다시금 자기는 페이를 안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거듭 확인시키며 다만 이번 행사에서 내 페이는 본인이 주는 게 아니라 (또는 시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한인회 회장을 맡고 계시는 K 회장님께 부탁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까지 행사가 몇 월 며칠에 있는 것만 알고 있었지 정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해지는 대로 업데이트해 주겠다고 하고 우리의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밤 9시가 좀 늦은 시간에 P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서 밤 9시 넘어서 잘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오는 게 매우 (개인적으로는) 드문 경우라 조금 의아하며 수화기를 들었는데 행사 시간과 장소가 정해졌고 거듭 나의 참여를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리고 나와의 통화 후 K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내 페이가 200불이라고 말씀드릴 것이며 컨펌 후 다시 업데이트를 해주겠다고 했다. (200불이라는 액수도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했는데 그래도 애국가 한 곡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어 아무 말하지 않았었다.)
땡큐.
그러나 그 뒤 행사 하루 전까지도 그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사실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밤 9시에 전화 온 그날) 며칠이 지나고도 업데이트가 없어 회장님과 협상이 안된 건지, 나는 내 페이에 대한 업데이트를 부탁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행사 하루 전까지도 대답이 없었다.
불쾌해지기 시작한 나는 행사 하루 전날, 아침 10시쯤. ‘ 혹시 내 이메일 확인했는지 알려줄래? ’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오후 5시가 되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지 이건.
내가 간혹 한국 정서와 미국 문화 사이에서 간혹 혼란스러운 적이 있어 종종 미국 동료에게 묻는데 이 상황을 얘기했더니 더 이상 물어보지 말고 다음과 같이 쐐기를 박으란다.
“내가 200불 받는 걸로 컨펌하고 내일 가는 걸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후 5시에 문자를 보냈는데 역시나 그날 하루종일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코리안 아메리칸인 남편은 나보고 긱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내가 부르기로 했는데 no show 노쇼를 하는 것은 책임감이 강한 나로서는 굉장히 무례하다고 판단하기에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인내해 보기로 했다.
행사 당일 아침.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받았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빼고. 연락이 없어서 오늘 행사가 있긴 한 건지, 또 내가 가는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Yes, please. 미안하다는 얘기도 없고, 어쨌든 오란다.
행사 후 K 회장님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점심을 대접한다고 광고를 했는데 나는 뒤이어 리허설이 있었기 때문에 덧붙여 내 페이를 오늘 행사장을 떠나기 전에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늘? 좀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올 셋.
“원래대로 약속한 시간에 맞춰 행사장에 도착하겠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그는 K회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P시의원을 만난 공연장에서 K회장님과도 만났었기에 안면이 있었다. 그 둘이 함께 있는 자리에 얼른 가서 인사드렸다.
인사가 오가고 짧은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P의원이 나에게 말을 건다.
"미안한데 오늘 당신의 페이를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 따로 얘기합시다."
뭐라고?!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옆에서 K회장님은 재정을 담당하는 S 임원이 못 왔다며 체크로 보내주면 되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연락이 안 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는 느낌을 받았을 때, 정말 그 촉을 믿고, 남편 말대로 오지 말았어야 할 행사였나 싶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신뢰는 바닥을 쳤고 페이에 대한 얘기도 P의원이 K회장님께 내가 오기 바로 직전, 행사 당일에 얘기한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
아티스트가 존중받기 원한다는 P 의원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인 것으로. 인식이 확실히 바뀐 순간이었다.
애국가를 부르고. 행사가 일찍 마쳤다.
리허설 전까지 시간이 남아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겠고, 못 받은 페이에 대한 얘기를 할 겸 나는 점심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식사 자리에서도 P의원은 딴소리만 했다.
어디까지 직설화법을 써야 하나. 매우 고민이 되었지만 최대한 공손히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면 될까요? K회장님께 연락을 드릴까요? “
“네, 저한테 직접 연락 주세요. 그게 나을 거에요”
이 썩 내키지 않는 대답은 뭐지.
뭔가 의심스러운. 대답을 받고도 불편한 마음.
P 의원은 본인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그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그에게만 이메일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제삼자 증인(?)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K회장님 밑에서 재정을 담당하시는 S 임원의 이메일을 CC 하여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K 회장님을 통해 재정담당 임원을 알고 있어서 망정이지, 나는 지금도 어쩌면 돈을 못 받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님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던가.
난 S 임원이 혹시나 자초지종을 모르시고 계셔 이메일부터 받고 놀라시지 않으실까 하여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팔로우 업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이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S님은 다행히도 연주자들의 입장을 공감해 주시는 분이었다.
"에구, 연주자들은 당일날 딱 페이를 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셨구먼. 제가 죄송합니다."
직접 자리에 계시지도 않은 분이 먼저 사과를 하시는 게 아닌가!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P 의원인데...)
S의원은 내가 전화드리기 전까지 P의원에게도, K회장님으로부터도 들은 말씀이 하나도 없으셨다고 했다. 또 한 번, 실망의 한숨이 터져 나오던 순간이었다.
S 임원은 그날 저녁 바로 체크를 보냈다는 이메일 답장을 주셨다.
그러고 나서 4일이 지난 오늘, 체크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그러나 행사 이후 지금까지도 P의원은 아무 말이 없다. 뭐 참석해 줘서 고맙다는 말, 페이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되었다는 등 그런 인사치레를 못하나?
이런 걸 여측이심(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이라고 하는 건가. 참으로 씁쓸했던 사건이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사람은 나 스스로라는 것, 그리고 설사 내 마음대로 보상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다음부터는 그 사람과 얽히지 않으면 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배움이라고 생각하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화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다.
그래, 내 인생 개똥(?) 철학으로 다시 기운을 차려본다.
이번에도 좋은 경험 했다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