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가 내가 아닌 상황에 빠졌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하나 쌓여가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형상에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눈동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 역시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울퉁불퉁한 돌바닥마저 낭만적인 프라하의 카페에서 한 남자를 기다릴 때였다. 우리는 전날 팁투어에서 만난 사이였다. 투어의 시작점인 오베니츠 둠 앞 계단으로 가보니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원래 일행인지 여기서 만난 사이인지, 분위기를 탐색하며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 한국인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남자는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 전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또 한 명의 한국인 여자가 다가와서 자신을 영국 교환학생으로 소개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동네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 계기로 친해져 팁투어 내내 같이 다녔다. 팁투어가 끝나고 자정이 지나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함께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프라하 성을 돌아보는데, 찬바람이 불고 후드득 비가 쏟아져 다급하게 편 우산이 훌러덩 뒤집어졌다. 우리는 투어 무리에서 빠져나와 몸을 녹이려 스타벅스에 들어갔다가 너무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고 놀라 여기가 체코냐 한국이냐 하며 시간을 보냈고, 저녁으로는 체코의 족발이라고 하는 꼴레뇨와 함께 코젤 맥주를 먹었다. 그러고는 재즈바 2층에 앉아 베이스와 드럼을 치는 연주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재즈바에서 나왔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웠다. 우리는 각자 숙소로 흩어지지 않고 동이 트는 까를교를 보겠다며 24시간 문을 여는 KFC에서 진을 쳤다.
여자가 그랬다. “언니, 외국에 나오면 좋은 게 있어요. 바로 한국말을 해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속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한국이었다면 못 했을 이야기를 하며 새벽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의 체크무늬 바지가 너무 과하다는 말을 바로 그 남자 옆에서 하는 식이었다. “언니, 그런데 체크는 영어잖아요. 그건 알아들을 수 있어요. 격자무늬. 이렇게 말해요.” 한밤중, 서로 다른 이유로 KFC에 모여 햄버거나 닭 다리나 감자튀김을 뜯고 있는 체코인들 사이로 바벨탑 너머의 한국어가 의미도 없이 유령처럼 떠다녔다.
여자는 다음 날 오스트리아의 어느 작은 도시로 이동했고,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나와 남자는 다음 날에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약속 장소는 카페 루브르. 아인슈타인과 카프카가 사랑한 그 오래된 카페였다. “이따 1시, 카페 루브르에서 만나자.” 내가 빠졌던 건 그 한 문장이지, 남자가 아니었다. 나도, 남자도 우리는 서로에게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아인슈타인과 카프카가 오갔을 카페 앞에 서서 손목에 찬 시계를 이따금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낭만적이었다. 120년이나 한자리를 지킨 카페에서 어제 처음 본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현실 같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두세 달은 가끔 안부를 묻고 밥도 먹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상황에 빠지는 건, 상황이 사라지면 지속되기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