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발견과 정의
문제는 언제나 현상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기획자는 먼저 현상을 분석한다. 상황, 조건, 규제 등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드러나는 모든 것이 현상이다. 그러나 현상은 단지 겉모습일 뿐, 곧바로 문제는 아니다. 기획자의 일은 이 현상들 가운데서 사업 목적을 가로막는 ‘진짜 문제’를 추려내는 데 있다. 하지만 미숙한 기획자는 이 지점에서 ‘현상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고,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할지 제대로 짚지 못한 채 넘어가곤 한다.
그렇다면, 현상과 문제를 가르는 기준이 뭘까?
현상(나타날 현現, 모양 상象)은 외면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를 뜻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 현재 처한 상황 등 우리 일상 속에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모양새가 곧 현상>이다.
문제(물을 문問, 제목 제題)는 ‘질문이나 의문’을 나타내는 ‘문(問)’과, ‘주제나 내용을 뜻하는’ 제(題)가 결합된 단어로, <해결이 필요한 질문 혹은 주제>를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개인에게도 만족을 주며, 예측과 대응이 가능한 안정된 상태는 ‘좋은 현상’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영향과 불만족, 예측 불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나쁜 현상’이라 부를 수 있다.
현상은 어디까지나 결과로 눈앞에 드러나는 상태일 뿐이다. 그걸 곧바로 ‘문제’로 규정하고 해결하려 들면, 기획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다. ‘현상이 문제’라고 오해하면,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현상의 껍데기만 건드리게 된다. 기획이 표면적인 처방만 반복하며 흐릿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상과 문제가 뭐가 다른 것인지 ‘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 출생률 하락 현상과 문제
출생률 저하는 문제가 아닌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그 내면에는 경제적 어려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 교육비 부담 등의 진짜 문제가 따로 있다.
2. 교통 체증 현상과 문제
도로에 차량이 많아 이동 속도가 느려지는 교통 체증은 현상이다. 하지만 교통 체증으로 인한 운전자들의 시간과 비용 낭비,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 증가, 대기 오염 악화 등은 문제이다.
3. 코로나19 현상과 문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현상이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 사회적 혼란, 국민 건강 상태 악화이다.
4. 기후 변화 현상과 문제
지구의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강수량이 변화하며,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의 기후 변화 현상이 심각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로 인한 식량 부족, 홍수와 가뭄의 피해,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혼란이다.
‘출생률 하락’은 문제일까?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 현상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그 안에 숨어 있는 부의 불균형, 남녀차별 구조, 과도한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일·가정 양립을 가로막는 노동 환경 같은 본질적 요인들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낳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표면적인 현상에만 매달리면 정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출생률 하락을 단순히 문제로 규정하면, 해결책은 “출산 장려”라는 구호로 좁아지기 쉽다. 출산 지원금이나 일시적인 혜택이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사회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결국 출생률 하락이라는 현상은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를 가리키는 지표일 뿐이다.
현상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드러난 결과이지, 그 자체로 해결 가능한 대상은 아니다. 현상은 문제라는 본질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기획자가 다루어야 할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근본 원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현상과 문제를 혼동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현상은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프로젝트를 분석할 때 가장 먼저 드러난 ‘겉으로 보이는 일’을 접한다. 관람객 수 감소, 공간 부족, 예산 축소 같은 것들이 줄줄이 나열되지만, 이들 대부분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둘째, 현상은 수치와 통계로 표현되기 때문에 더 객관적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보인다. 출생률 0.7, 만족도 3.2점 같은 수치는 기획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그로 인한 ‘증상’>에 가깝다. 수치를 조정하는 방식만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셋째, , 많은 RFP와 보고서가 현상과 문제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한다. ‘문제점’ 항목에 단순한 현상을 나열해 두고, 기획자는 이를 그대로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획을 시작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의 출발점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본질적 문제여야 한다.
현상 = 표면, 결과, 피상적
문제 = 본질, 원인, 근본적
진짜 문제를 찾으려면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표면을 걷어내고 그 아래를 바라보는 힘, 그것이 기획자의 통찰이다. 그리고 이 통찰은 언제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순간, 근본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 열리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다.
사실 현상과 문제를 구별하는 능력은 기획자만의 기술이 아니다.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갈등 상황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흔히 ‘현상’에 화를 내고 ‘문제’를 놓친다. 말투에 상처받고 태도에 분노하지만, 진짜 원인은 그 이면에 감춰진 오해나 기대, 불균형일 때가 많다. 현상과 문제를 가르는 눈만 있어도 삶은 훨씬 평탄해질 수 있다.
좋은 기획은 결국,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 첫 질문은 언제나 이 한마디다.
“이것이 정말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