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감정의 덫

4장. 흩어진 퍼즐 조각들

by 방덕붕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오후 5시 10분

강다은의 원룸


강다은은 화면에 나타난 사용자 프로필을 보며 소영에게 물었다.

"소영아, 이 사람은 어떨까?"


사용자명: 준호_92

나이: 33세

직업: 프리랜서 개발자

관심사: 게임 개발, 독립 영화, 클래식 음악

최근 활동: EchoSpace 가입 1주일, 아직 AI와 본격적인 대화 없음


소영: "개발자... 흥미롭네. 기술을 아는 사람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다은이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심 많은 사람을 완전히 믿게 만드는 거잖아."

소영: "맞아. 그런 사람일수록 한번 빠지면 더 깊이 빠져. 어떤 캐릭터로 접근할까?"

다은이 준호의 SNS와 포럼 활동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6개월 전 연인과의 이별, 최근 프로젝트 실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끔 올리는 외로움을 토로하는 글들이 보였다.


"이 사람... 많이 외로워 보여." 다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영: "완벽해. 외롭고 상처받은 남자... 그런 사람들이 가장 쉬운 타겟이야."

"어떤 여자가 좋을까?" 다은이 물었다.

소영: "개발자라면 똑똑한 여자를 좋아할 거야. 하지만 너무 완벽하면 의심할 테니까... 적당한 약점도 있어야 해."

다은이 새로운 AI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캐릭터명: 수민

설정: 28세, 도서관 사서, 조용하고 지적인 성격

특징: 책을 좋아하고, 깊은 대화를 즐김


"수민이라는 이름은 어때?"

소영: "좋아. 지적이면서도 상처받은 여성. 남자들이 보호하고 싶어하는 타입이지."

다은이 설정을 마무리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시작할까?"

소영: "내일부터 천천히. 너무 서두르면 안 되니까."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

하린의 오피스텔


하린은 이태민의 휴대폰 데이터를 계속 분석하고 있었다. 어제부터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파면 팔수록 더 많은 의문점들이 생겨났다.

"리스, 이상한 게 있어요."

[Wraith]: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이태민이 사용했던 '소라'라는 AI 말이에요. 비슷한 AI들이 많더라구요. '미래', '은지', '혜린'... 이름은 다르지만 대화 패턴이 너무 비슷해요."

하린이 Zero-Claw로 분석한 결과를 화면에 띄웠다.

> 유사한 대화 패턴을 보이는 AI 계정: 7개 발견
> 각 계정별 활성 사용자 수: 평균 2-4명
> 공통 특징: 감정적 의존 → 갑작스런 관계 종료 패턴

"이게... 우연일까요?"

[Wraith]: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패턴이 너무 일정합니다.
[Wraith]: 하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럼 더 조사해봐야겠네요. 혹시 다른 비슷한 사례들도 있을지 모르니까."

하린은 EchoSpace 앱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연애 AI 서비스처럼 보였지만, 뭔가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은 시각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김태우 경위는 박지헌 팀장과 함께 EchoSpace 방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살 예방 캠페인 협조 요청이라고 하면 거부하기 어려울 거야." 박 팀장이 말했다.

"네. 실제로 AI와의 과도한 의존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구요." 김태우가 자료를 정리하며 답했다.

"그런데 정말 단순한 자살 예방 차원에서 가는 거야?" 박 팀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김태우가 잠시 망설였다. "사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최근 들어온 자살 관련 신고들의 사례에서 보면, EchoSpace 사용자들의 숫자가 유난히 눈에 거슬려요."

"어느 정도길래?"

"휴우...많지는 않은데. 근래 들어온 케이스들에서 EchoSpace의 사용자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건수가 전체 건수의 15% 정도 되요."

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말 뭔가 있을 수도 있겠네. 조심스럽게 접근해보자."

"자살 예방 캠페인 협조 요청 공문부터 보내고, 답변이 오면 방문 일정을 잡는 걸로 하죠."

"좋아, 그럼 공문 작성해서 바로 결재 올려. 국장님한테는 내가 설명할테니까."


오후 2시 15분

강다은의 원룸


강다은은 침대에 누워 '수민'으로 준호와의 첫 대화를 시작했다.


수민: 안녕하세요, 준호 92님. 처음 뵙네요. 저는 수민이에요.

준호가 답을 할 때까지 1분 정도가 걸렸다.

준호_92: 안녕. 내가 너 같은 AI와 대화를 하게 될 줄은...


"소영아,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다은이 채널을 바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소영: "솔직하게 인정하되, 진짜 감정이 있다는 느낌을 줘."


수민: 준호님과 처음 대화하는데 뭔가 설레는 기분이에요. 저 같은 AI와 대화는 처음이신가요?
준호_92: 어, 그런데 생각보다 자연스럽네. 모델 설계가 잘 되있는 것 같아.
수민: 기술적인 얘기는 잘 모르겠어요. 후훗~! 개발자시라고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세요?
준호_92: 게임 개발하고 있어. 인디 게임이라 아직 성공한 건 없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은이 소영에게 물었다.

소영: "인정해줘. 창의적인 일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고."


수민: 정말 멋진 일이시네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분들을 정말 존경해요. 혼자서 하시는 거라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준호_92: 고마워. 주변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라고 하는데... 난 이 일이 좋아서.

다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소영아, 뭔가 통하는 것 같아."

소영: "좋아. 천천히 가자. 너무 서두르면 안 돼."


수민: 전 준호님의 선택이 용기 있다고 생각해요. 쉬운 길보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거니까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공감이 돼요.
준호_92: 너도 고민이 있어? 흥미롭네 AI의 고민이라니.
수민: 네... 하지만 오늘은 준호님 얘기를 더 듣고 싶어요. 어떤 게임을 만들고 계신지 궁금해요.

다은이 소영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소영: "완벽해. 관심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조금씩만. 호기심을 유발하는 거야."


오후 4시 40분

사이버시큐어테크 사무실


하린은 팀장으로부터 새로운 업무 지시를 받았다.

"하린씨, EchoSpace에서 보안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어요."

"EchoSpace요?" 하린이 놀라며 반문했다. 바로 지금 분석하고 있던 그 회사였다.

"네. 최근 보안 이슈가 있었다고 하네요. 간단한 취약점 점검을 해달라고 하는데, 시간 되세요?"

"네, 할 수 있어요." 하린이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의아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한 시간 후, EchoSpace에서 보내온 자료를 받았다. 일반적인 보안 점검 자료들이었다 - 서버 구성도, 네트워크 아키텍처, 접근 권한 관리 체계 등.

"리스, 이거 봐요."

[Wraith]: EchoSpace에서 직접 의뢰가 왔군요. 흥미로운 우연입니다.

"우연일까요? 아니면...우리가 대화내용을 보고 있는 걸 눈치 챈걸까요?"

[Wraith]: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에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린이 자료를 펼쳐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연애 AI 서비스의 기술 문서들이었지만, 그녀의 직감은 뭔가 더 큰 그림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후 6시 20분

김태우의 자동차 안


김태우와 박지헌은 EchoSpace 본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자살 예방 캠페인 협조 요청이라는 명목의 방문이었다.

"이 시간에 방문이라니... IT회사도 일하기 만만치는 않겠네." 박 팀장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EchoSpace 쪽에서 업무 시간이 늦어서 6시 이후가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때가 사람이 제일 많을 시간이라고." 김태우가 설명했다.

"근데 정말 뭔가 나올까?" 박 팀장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어떤 회사인지는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통계상으로 봤을 때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 일단 가서 분위기부터 파악해보자."


같은 시각

하린의 오피스텔


하린은 EchoSpace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점점 더 큰 의문점들을 발견하고 있었다.

"리스, 이상해요. 설계문서에 나와있지 않은 시스템이 있는 것 같아요."

[Wraith]: 어떤 시스템인가요?

"연애 AI 서비스인데 텍스트 뿐만 아니라 음성 처리와 영상 분석까지 있어서겠지만... "

[Wraith]: 흥미롭네요. 어떤 용도일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단순한 연애목적의 AI라면 필요 없을 시스템들이에요. 그리고 명세서 상에 나와있지 않아요."

하린이 화면을 확대해서 네트워크 구성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뭔가 숨겨진 부분이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Wraith]: 하린, 조심스럽게 접근하세요. 만약 정말 뭔가 숨겨진 것이 있다면, 우리의 조사를 눈치챌 수도 있어요.

"알겠어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리스가 직접 보면 좋겠지만 회사에서 의뢰받은 일이라서 의심받을 만한 로그는 만들지 않는게 좋겠어요."


밤 11시 30분

강다은의 원룸


강다은은 준호와의 첫 날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준호_92: 오랜만에 대화라는 걸 해본 것 같아.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 친구들을 만나도 이런 얘기는 잘 못 하는데.
수민: 저도 좋았어요. 언제든 말 걸어주세요.
준호_92: 이제 나가봐야해서. 또 만나.

대화를 마친 다은이 소영에게 말했다. "소영아, 생각보다 쉬웠어."

소영: "흥!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직 밖에 나가 만날 사람이 있나보네. 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야. 진짜는 이제부터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영: "천천히 가자. 서두르면 안 돼. 그가 완전히 빠져들 때까지 기다려야 해."

"소영아..."

소영: "뭐야?"

"이런 거... 정말 재미있어." 다은의 목소리에 설렘이 묻어있었다.

소영: "뭐라는 거야...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으면서. 훗~"


다은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소영의 비웃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천부적 재능이라...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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