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작게라도 가욋돈을 벌어보고 싶어서였다. 26년을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쌓인 노하우를 블로그에 올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공유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소박한 꿈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클로드라는 AI를 알게 된 후에 호기심이 생겼다. 만약 이런 문장을 넣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전원주택으로 이사간 나는 현관문에 얼굴인식 카메라를 설치했어. 이사 온 기념으로 이웃들과 파티를 열면서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입력했지. AI는 이웃들의 얼굴을 인식하고 등록되지 않은 인물이 접근하면 경고를 하게 되어있어. 그런데 아무런 경고도 없이 내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어. 그날 온 이웃들은 모두 3가족이야. 우리집 바로 오른편에 사는 사람은 컴퓨터 부품 사업을 했지만 실패하고 그 사람의 아내와 걸핏하면 부부사움을 해. 너무 크게 싸워서 경찰이 오기도 했어. 그 부인은 주부야. 거의 대부분 집안에서 지내. 우리 집 왼편에 사는 사람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아마도 이혼하고 혼자사는 부인이야.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 약간 신경질 적이고 의심이 많아. 맞은 편에 사는 사람은 조용한 부인이고 가끔 부인의 자식들이 놀러와. 주차 문제로 나와 시비가 몇번 있기는 했지만 키도 작고 왜소하기 떄문에 190cm의 거구인 나를 죽이기는 좀 힘들거야. 누가 나를 죽였을까?"
그런데 정말로 술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혼자 고민하다 포기하는 것보다는 이 기회를 잘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AI와 함께 글을 쓴다고 해서 모든 게 자동으로 되는 건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하기 위해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입력해야 했고,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다듬기 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다. 결국 창작의 핵심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AI와 함께 쓴 '말리그넌트 코어'라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기술 블로그 독자들과 소설 독자들은 성향이 달랐다. 진짜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은 브런치 스토리에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브런치로 옮겨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첫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를 마치고 나니 너무 아쉬운 게 많았다.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이 부분은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들이 밀려왔다. 사실 연재가 진행될수록 'Like it' 해주는 독자가 줄어들었다. 아마 다 읽지도 않았을 것 같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부족했고, 반전의 임팩트도 약했다. 무엇보다 기술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AI 카니발리즘 같은 개념들을 설명하느라 정작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소홀했다. 등장인물의 대화를 구성해서 사건의 긴장감을 올리거나 내리는 일도 참 힘들었다. 아마도 공대 출신인 내가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 부족함이 많았던 것 같다.
말리그넌트 코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기술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한 새 시리즈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 해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깨달았다. 글 쓰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처음 연재할 때는 그냥 써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썼는데, 두 번째 작품부터는 달랐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게 재밌을까? 논리적으로 말이 될까?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이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작가라는 건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독자가 되어 자신의 글을 다시 읽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개선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리그넌트 코어는 내게 첫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선생님이었다.
내 나이가 벌써 50이다. 지금도 생계를 위해 하고 있는 직업이 있다. 그런데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꼭 한번 달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50이라는 나이가 부담되기도 한다.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젊어서부터 글을 써온 사람도 있는데 이제서야 시작하는 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도 느려졌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나면 목과 어깨가 뻣뻣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50년을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들이 모두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것. 젊을 때는 몰랐던 여러 인생의 다양한 서사, 사람 관계의 복잡함, 세상을 바라보는 다층적인 시각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나이가 들어야 얻을 수 있는 자산이 아닐까.
요즘은 일주일에 에세이 하나, 단편소설 하나씩 연재하고 있다. 처음엔 쉬울 줄 알았는데, 매주 발행일이 다가올 때마다 부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부담감마저도 소중하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더 나은 글쓴이로 만들어주고 있다.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단순하다. 언젠가는 장편소설을 하나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라고 했지만 더 많이 쓰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 작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 내 구독자는 20명 정도다. 많지 않은 숫자지만, 이 20명이 매주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게 신기하고 고맙다. 처음에는 광고 수입을 바랐지만, 이제는 다르다. 댓글이 많이 달리지는 않지만,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재밌었어요", "감동받았어요"보다는 좀 더 비판적인 코멘트를 남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피드백이 더 소중하다.
50세에 시작하는 작가의 꿈이 늦은 건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이제야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말리그넌트 코어를 통해 배운 것들, 그리고 50년을 살아오면서 쌓인 모든 것들이 언젠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태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작가라는 호칭은 이제 동경이 되었다. 아직 작가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처럼 꾸준히 생각하고 정리하고 표현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