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의 얼굴들

모두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제도가 있을 수 있을까?

by 방덕붕

어제 카페에서 친구와 민생회복지원금 이야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커졌다. "세금 많이 낸 사람이 왜 못 받아?"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더 필요한 사람이 받는 게 맞지"라고 맞받았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볼 정도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열띤 토론을 했는지 알 만하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같은 정책을 두고 우리는 정반대의 '공정'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기여한 만큼 받는 게 공정'이라고 했고, 나는 '필요한 만큼 받는 게 공정'이라고 했다. 둘 다 공정을 말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공정의 얼굴들

공정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첫 번째는 '응분의 공정'이다. 노력한 만큼, 기여한 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1등은 금메달을, 2등은 은메달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필요의 공정'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보험이 소득에 비례해서 차등 적용되는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공정이 충돌할 때다. 민생지원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고소득자는 "나는 세금을 더 많이 냈다"며 응분의 공정을 외치고, 저소득자는 "나는 더 어렵다"며 필요의 공정을 내세운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

그렇다면 모두가 공정하다고 인정하는 제도가 있을까? 잠깐 떠오른 게 있었다. 가위바위보다. 누구나 똑같은 확률로 이기고 질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나 재산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것도 완벽하지 않다. 손목 움직임이 빠른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고, 심리전에 능한 사람이 더 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추첨을 생각해봤다. 군대 입대 번호, 로또 번호, 아파트 분양 순서. 이런 건 정말 공정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왜 운으로 정하느냐? 능력으로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무원 시험은 점수순으로 뽑는데, 왜 의대 입학은 추첨으로 하느냐는 식으로.


김씨 대학생의 하소연

며칠 뒤 대학 후배 김씨를 만났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형, 민생지원금 못 받았어요. 아버지 소득 때문에." 김씨는 알바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분명 고소득자지만, 김씨 본인은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빠듯하게 살고 있다.


"아버지가 용돈을 많이 주시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해봐라'는 주의세요. 10만원이 작은 돈이지만, 저한테는 일주일 식비거든요."


이게 공정할까? 김씨가 부유한 집에 태어난 건 그의 선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도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김씨는 실질적으로는 저소득층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단지 아버지의 소득 때문에 지원에서 배제되었다.


버스에서 만난 공정

얼마 전 버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임신부가 탔는데 임신부석이 모두 차 있었다. 앉아 있던 한 젊은 남성이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다른 승객이 중얼거렸다. "저 남자도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할 텐데..."

이 상황에서 무엇이 공정일까? 임신부가 앉는 게 공정할까, 먼저 앉은 사람이 계속 앉는 게 공정할까?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는 게 공정할까, 선착순이 공정할까?


생각해보니 공정이라는 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버스에서는 '배려의 공정'이 우선되지만, 시험장에서는 '실력의 공정'이 우선된다. 응급실에서는 '긴급도의 공정'이, 법정에서는 '절차의 공정'이 중요하다.


공정의 진짜 모습

결국 모두가 동의하는 완벽한 공정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공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공정이 유일한 공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상황에 맞는 공정을 찾아야 한다. 평상시와 위기상황의 공정은 다를 수 있고, 개인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에서의 공정도 다를 수 있다.


셋째, 과정의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최소한 결정 과정은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끝나지 않는 대화

며칠 후 그 친구와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서로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는 "네 말도 일리가 있어"라고 했고, 나도 "너의 관점도 이해한다"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왜 다른지는 알게 되었다.


공정에 대한 토론은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다. 완벽한 답이 없기 때문에 계속 질문하고, 계속 대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제도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공정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사회는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야말로 진정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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