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이 깎는 노인 패러디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을 원작으로, Claude (Anthropic)가 AI 시대의 이야기로 패러디한 글입니다.
을지로 골목 어딘가, 낡은 건물 4층에 작은 개발 사무실이 있다. 간판도 없다. 알 만한 사람만 안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젊은 친구의 소개로 그곳을 찾아갔다. 레거시 시스템 유지보수가 필요한데, 요즘 개발자들은 손도 안 대려 한다고 했다. "그 어르신밖에 없어요. 코드를 읽는 게 아니라 '보시는' 분이에요."
문을 열자 담배 냄새 대신 오래된 커피 냄새가 났다. 창가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머리가 허옇고,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시커먼 터미널 창이 떠 있었다. IDE도 아니고, VS Code도 아니었다. 그냥 vim이었다.
"저기, 코드 좀 봐주실 수 있으신지요."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USB를 건네자 아무 말 없이 받아 꽂았다. 파일을 열더니 한참을 훑어보았다. 스크롤이 느렸다. 한 줄 한 줄 읽는 것 같았다.
"이거... 2005년쯤 짠 거요?"
소름이 돋았다. 맞았다.
"여기 짠 사람, 꼼꼼한 양반이었구먼. 주석은 없는데 코드가 말을 하네."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자판 소리가 느리고 정확했다. 마치 방망이를 깎는 것 같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요즘은 AI가 코드 다 짜준다면서요."
내가 물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래, 짜주지."
"그럼 그거 쓰시면 편하지 않으세요?"
노인이 타이핑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 눈이 깊었다.
"AI가 짜면 맛이 없어."
"네?"
"자네도 개발자요?"
"예."
"그럼 알 거 아니오. 코드에는 결이 있어. 짠 사람 손때가 묻는 거지. AI가 짜면 빠르고 깔끔해. 근데 그게 다야. 손때가 없어."
노인은 다시 모니터를 향했다.
"여기 이 함수 보이오? 이상하게 생겼지? 근데 이유가 있어. 그때 그 서버 환경에서는 이렇게 안 하면 메모리가 터졌거든. AI는 이런 거 몰라. 왜 이렇게 짰는지. 그 사람이 그 새벽에 무슨 생각으로 이 줄을 썼는지."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나도 AI 써봤어. 편하더군. 근데 그거 쓰고 나면 코드가 남의 것 같아. 내가 짠 게 아닌 것 같아서."
노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방망이 깎는 노인 알아요?"
내가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노인이 기계 쓰면 맛이 없다고 했잖소. 나도 그래요. 손으로 쳐야 맛이 있어."
며칠 후 수정된 코드를 받았다. 깔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따뜻했다. 주석이 몇 개 붙어 있었다.
// 여기 건드리지 마시오. 이유 있음.
// 2005년 그 양반 생각이 맞았소.
을지로 그 건물은 재개발된다고 한다. 노인은 어디로 갈까. 아니, 어디로 가든 상관없을 것이다. 노인에게는 낡은 노트북 하나면 충분할 테니까.
vim만 돌아가면 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