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급함이라는 나의 취향에 대하여
“이번 달 카드값 얼마 나왔어?”
“우리 빚 얼마 남았지?”
마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안내 멘트처럼, 냄비 아내와 돌 남편의 월간 대화는 늘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결국 살림은 숫자로 귀결된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살려면 매번 선택해야 한다. 사고 싶은 것과 미뤄야 할 것, 지금 필요한 것과 그냥 갖고 싶은 것을 가려내는 일. 돈은 늘 나를 시험 보는 문제지처럼 앞에 놓인다.
주식과 코인이 한 번쯤 대박 나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면 좋겠지만, 그런 요행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동생은 가끔 농담처럼 묻는다. 요즘 뭘 팔았냐고, 내가 판 걸 자기가 사겠다며 알려달라고. 몇 년을 파란 창 속에서 버티다가 겨우 본전이 되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팔았고, 어김없이 그다음부터는 오르곤 했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주식 창 앞에 서면 나는 유난히 작아진다.
그만하자, 마음속으로 수없이 말해봤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손을 떼지 못한다. 공부도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고 싶었던 욕심이 쓰리게 남아 있다. 답은 안다. 믿을 만한 회사에 투자하고 긴 호흡으로 버티면 된다는 것. 나도 안다. 너무 잘 안다. 문제는 그 ‘긴 호흡’이다.
기다림은 나에게 기술이 아니라 고역이다. 빠르게 반응하고 빠르게 식는 냄비 같은 기질로는 들끓는 차트를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거의 고문에 가깝다. 조금 오르면 더 오를까 조급해지고, 조금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진다. 뜨겁게 들어갔다가 불안이 스치면 금세 식어버린다.
나는 왜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부자가 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할까? 생각해 보면 나는 투자 앞에서 특히 더 냄비가 된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그에 필요한 지루함과 고독은 견디지 못한다.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선택 앞에서는 늘 흔들리고,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선택 앞에서는 오히려 버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오래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묶여 있을 때 비로소 버티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 이게 나다. 긴 호흡의 투자자는 아니고, 빠르게 끓고 빠르게 식는 사람. 알고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기질이라면, 차라리 인정하는 편이 낫다. 주식 창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자책하는 대신, 나는 어떤 순간에 뜨거워지고 어떤 순간에 식어버리는지 들여다본다. 돈 앞에서 특히 더 잘 끓는 이 냄비도, 결국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