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를 냄비라고 불렀다. 연애 2년 결혼생활 18년. 그러니까 20년간 지켜봐 온 결과 그에게 나는 냄비가 되어 있었다.
맞다. 냄비. 그것도 열전도율 최고 중에 최고 양은냄비다.
부르르르 열받으면 끓었다가 베란다에 두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차갑게 식어버리는 냄비처럼. 반응속도가 로켓과학 수준으로 빠르다. 그러다 흥미가 사라지면 로켓이 지구를 떠나는 것 마냥 금방 식어버린다.
이제는 내가 뭔가를 시작한다고 하면 남편이 시큰둥하다.
해볼 테면 해 바라. 함께한 세월이 20년이면 나에 대해 파악하고도 남을 시간이니까. 나도 인정한다.
난 냄비인간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냄비가 뭐가 어때서? 안에 뭔가를 담기도 편하고 열받으면 요리도 잘되고 말이야."
"그러니까 냄비라고 너."
“냄비라고 부르지 마. 최소한 스테인리스로 승급시켜.”
오빠오빠 이거 재밌겠다. 나 벨리댄스 배울 거야.
아냐. 오빠 나 스윙댄스 배울 거야.
아니다. 나 요가가 체질인 거 같아.
나 그림이 좋아. 수채화 배울 거야.
나 비누 만들어서 노후에 비누공방 차릴까 봐.
장구 배워야겠다. 스트레스 풀린데.
....
장구가 우리집에 들어온날의 남편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내가 뭘하던 아무말 없는 사람이 그날은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설마 밤에 잘때 장구 칠 꺼는 아니지?"
"에이 당연하지. 걱정마."
다 조금씩 배우다 말았다.
거실 한켠엔 장구, 미술도구, 댄스화, 요가매트가 전리품처럼 쌓여 있다. 나의 전리품들은 세상의 모든 경험들을 맛보고 싶은 나의 미식 취향과 같다. 다만 주인의 취향이 자주 바뀌는 게 문제이다.
이게 뭐냐?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질 못한다. 이러며 질책할 법 한데 남편은 그냥 날 내버려 둔다. 그냥 내가 뭘 하던 전지적 작가시점처럼 바라본다. 마치 서바이벌 게임 중에 관찰자가 개입하면 안 되는 법칙에 따르는 것처럼. 아내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냄비 들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데 남편은 울타리밖에서 무생물에 가까운 관전모드인 것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저것도 금방 끝날 거야.
무생물 돌 같은 남편은 매번 서바이벌 게임장을 갈아치우며 전력 질주하는 내가 신기하다고 말한다. 나는 반대로 저렇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한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그의 정적인 삶이 경이롭다. 난 절대 저렇게 못살아.
우리는 서로를 신기해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가끔 냄비에 돌이 들어와서 달그락 거리며 시끄럽게.
이번에는 내가 어떤 걸 냄비에 담을지 신기해하며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를 지긋히 바라본다.
너도 참 대단하다. 이러며.
어쩌면 나는 끓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에야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사람.
그래서 또 불을 켠다. 식어도 괜찮다고, 다시 끓이면 된다고 믿으면서.
그래서 냄비라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행복까지는 모르겠지만
냄비라서 다행이라고 답하고 싶다.
돌 하나쯤 품고도 다시 끓어오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