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나이에 아들과 사는 엄마의 영화리뷰
엄마가 되어 다시 만난 단종의 죽음은 다르게 다가왔다. 어른들의 권력놀음에 어린 왕이 지켜줄 사람 하나 없이 죽음에 이른 비극은 시대를 초월해 부모의 마음을 깊게 찌른다. 그전에 만난 영화 '관상'에서 흡사 산적의 우두머리 같은 역적관상의 수양대군의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면 이번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어린 단종이 측은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장항준 감독과 일면식도 없지만 공교롭게 단종의 나이와 나의 아들의 나이가 비슷하다. 영화 보는 동안 단종의 엄마의 눈으로 아이가 애처로워 가슴 아파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보는 내내 옆에 앉은 두터운 아들손을 한 번씩 잡아가며 살아있음을 확인해 가며...
단종의 할아버지(세종)은 아들 문종이 낳은 손자가 너무 귀해서 목마를 태울만큼 사랑했다고 한다. 최초의 적장자로 왕위계승을 이어가며 왕족의 명분은 하늘을 찔렀고 그 누구도 껴들지 못했으리라. 그러니까 문종이 더 오래 살았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사료를 찾아보니 문종은 불과 37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단종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으며 죽었고 태어나면서부터 단종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마저 죽어버렸고 본인은 준비도 되지 못한 채 왕이 돼버렸다.
37살 죽기에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 병으로 죽어가며 단 한순간도 단종 생각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단종이 조금 더 단단해질 때까지만 버텨줬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왜냐하면 12살이라는 나이는 왕이 되기에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12살 아이들의 담임교사를 했었다. 햇빛에 아이들이 나가 놀 때 얼굴을 바라보면 아직 볼에 솜털이 보송보송 보이는 나이다. 봉사활동 잘했다고 자그마한 사탕을 손에 쥐어주면 세상 다 얻은 듯 행복해하는 어린 나이이다. 부모가 있어도 불안하고 두려운 인생의 모험의 시기에 접어든 나이다. 단종은 아무런 방어막 없이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은 부모는 정말 오래 살아야 한다. 적어도 아이가 최소한의 독립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버텨줘야 한다. 만약 안된다면 살아있으며 부모를 대신할 든든한 어른을 반드시 만들어줘야 아이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 어린아이를 노린 범죄를 막아줄 최소한의 울타리가 필요한 것이다. 더군다나 왕의 자리이다.
문종이 쇄약 해진 이유는 연이은 삼년상을 치르며 급속도로 몸이 약해졌다고 전해진다. 삼년상을 치르면 돌아가신 부모가 돌아올까? 돌아가신 세종이 자신의 아들이 죽기를 바랐을까? 적당히! 뭐든 적당히 해야 한다. 젠장할 아들하나 못 지키고 죽게 할 만큼 대단한 것이 세상에 뭐가 있단 말인가.
고작 문종은 제위한지 2년 2개월 만에 병으로 죽게 되고 어린 왕이 된 단종은 결국 삼촌에게 왕위를 뺏긴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어른으로부터의 배신과 자신의 정신적 지지줄이었던 집현전 학자들의 죽음을 곁에서 보며 두려웠을 것이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자책했을 것이다. 누군가 너 때문이 아니라고 다독여주며 안아줬으면 덜 무서웠을 텐데 말이다. 그들의 목적도 단종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며 스스로 자멸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 유배지에 갔던 기억이 난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같은 곳에 정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집이 이상하리 만큼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어서 잔상에 오래 남았었다. 세상에 버려진 느낌을 주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주변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자신도 강등되어 벌을 받으러 유배당한 비참함을 극복하기에는 당시 단종의 나이는 많지 않았다.
단종이 유배를 당한 나이에 우리 집에 있는 사춘기 아이는 학원 가기 싫어서 울고 게임시간을 더 달라며 거짓 웃음을 짓기도 하며 나에게 응석을 부린다. 단종도 마땅히 응석을 부려야 하는 나이였던 것이다. 깊은 슬픔을 머금은 힘없는 눈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부모로서의 안타까움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측은함이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회조차 빼앗은 잔혹한 사람들이 미웠다.
유배지에서의 단종에게는 소나무 한그루가 안식처였다고 한다. 말없이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우뚝 솟아 믿음직한 나무밖에는 의지할 곳 없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혼자 감당하기에 세상의 권력싸움은 너무 잔혹하다.
영화 속의 한명회 역할을 맡은 유지태의 호통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혼내듯이 꾸짖은 장면이 기가 막혔다. 자기가 뭐라고. 감히 왕에게. 평소 유지태를 좋아해서 얼굴이나 눈매를 잘 알고 있는데 테이프로 양쪽 눈을 위로 올린 디테일에서 놀랐다. 유지태 씨의 원래 눈매는 한명회의 표독스러움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선하기에 테이프는 최고의 선택이다.
영화 '관상'과 는 다르게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수양대군의 모습이 없다. 극의 중심이 분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종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더욱 단종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를 타기팅해서 맞춤형으로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정도로 공감되었다.
엄흥도 역할을 맡은 원래 사료에는 문관출신의 엄흥도 역할을 맡은 유해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발휘해서 영화를 찍은 것 같다. 마을 촌장, 아들의 아버지의 입장과 어린 왕을 섬기는 마음 사이에 갈등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전해졌고 유해진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인간다움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단종. 내 아들 같아서 보는 내내 아팠던 인물. 초반의 무기력했던 눈빛에 점차 생기가 돌고 점점 기개가 느껴지는 연기가 느껴져 빠져들었다. 계속 이 배우를 주목하게 될 것 같다. 연기의 밀도가 높아서 차기작품이 기대되었다. 단종을 끝까지 곁에서 모신 전미도의 절제된 연기 또한 인상 깊었다. 뮤지컬이나 슬의생에서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알고 있는데 모든 것을 절제하고 필요한 순간에 살짝 드러내는 연기의 밀도가 깊어서 오히려 더욱 슬픔이 가증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이끈 장항준 감독!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 아니라 이제는 장항준 감독의 아내 김은희라고 해도 되겠다. 배우들과 스텝들과 얼마나 소통을 잘 해냈을까?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최적의 연기의 합을 이끌어 냈으리라. 영화를 보면서 유해진의 말투에서 장항준이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왕과 사는 남자는 유해진이 아닌 장항준이었다. 장항준식 특유의 가벼움이 오히려 단종의 비극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같이 느껴졌다.
과거의 역사의 순간을 현재의 나와 연결시키며 깊게 공감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며 곁에서 내 마음을 후벼 파지만 살아있어서 다행인 아들의 소중함과 어른이 되기 전에 나약한 존재인 아이들에 대한 시선까지 생각하게 해 준 소중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