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점지해 준 나의 말년, "작가님, 인세들어옵니다

친구들 사주를 봐주다가 내 '말년운'에 무릎을 탁 쳤다.

by 최강정

"내가 올해 사주 봐줄까?" "그래, 올해는 어째 돈복이 좀 굴러들어오려나?"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과 1차를 거나하게 마친 뒤였다. 모임이 무르익고 숨을 좀 돌리려 들른 커피숍, 우리는 제미나이(Gemini)로 사주를 보자며 핸드폰 화면 앞으로 옹기종기 머리를 맞댔다. 분명 여섯 명이 만났는데, 어느새 제미나이는 우리의 '제7의 멤버'가 되어 대화에 불쑥 끼어들어 있었다.


차례로 생년월일시를 만세력 프로그램에 넣었다. 일주와 온갖 귀인, 살이 가득한 화면을 캡처해 제미나이에게 '진상'했다. 성실한 데다 복채도 안 받는 이 인공지능 비서는,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손님이 거북할 법도 한데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사주팔자를 좌라락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건 뭐, 사주 공부 하나 안 하고 '공짜 사주쟁이'가 될 절호의 찬스였다. 손에 부채만 하나 들었으면 딱인데.


"음... 보자 보자. 아니, 귀인 중에 귀인이라는 천을귀인이 셋이나 있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너 전에 큰 사고 당하고 수술했을 때 말이야. 남들은 몇 번이나 고비였을 상황을 넘기고 지금 이렇게 잘 사는 거, 그거 다 천을귀인이 도와줘서래."

친구의 눈에 안도감이 가득 찼다. 감동받은 눈치인데? 사주쟁이는 이 참에 인심을 더 얻기로 했다. "어라, 문창귀인에 학당귀인, 문곡귀인... 현침살까지 난리 났네. 너 공부해야 한다는데?" "맞아! 우리 엄마도 그렇고 다들 나한테 공부하래. 근데 난 공부하기 싫거든." "에헤이, 공부했으면 참 잘했을 텐데..."

점쟁이들의 단골 멘트까지 날리니 친구들이 자지러진다. 맞긴 뭐가 맞나 싶으면서도 너무 재밌다. 자, 다음 손님!


"나도 봐줘! 내 건 어때?"


이번 친구는 사주에 금(金)이 6개, 토(土)가 2개인 온통 '금'밭이었다. "너 지금 보석 만지는 일 하잖아. 이게 천직인가 봐. 네 사주가 금을 세공하고 전문적인 일을 끌어당기고 있네!" "오오오—!"

이 친구의 직업이 사주에 고스란히 드러나니 나조차 신기했다. 평소 인스타그램에 짧지만 감성적인 글을 올려 글재주가 있다 싶었는데, 역시나 현침살 4개가 예리한 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과열될 때쯤, 한 친구가 정곡을 찌른다. "야, 다 필요 없고! 그래서 돈복은 누가 제일 많은데?"

역시 현침살 많은 친구답다. 나는 냉큼 나의 충실한 비서에게 외주를 줬다. '모두의 만세력을 분석해서 말년 복과 돈복이 좋은 순서대로 나열해줘.'

용돈벌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찰나, 결과가 나왔다. 엥? 압도적 1위는 나였다. 친구들은 "주작 아니냐"며 야유를 퍼부었고, 나의 사주쟁이 코스프레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말년 복 1위'라는 타이틀에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았다. 결국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이 내 사주만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으니, 말년에 인세(印稅)와 문서운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풍요롭단다. 특히 시주(時柱)에 자식이 30세부터는 나의 든든한 재물창고를 지키는 형상이라나. 지금은 속 썩이는 자식일지 몰라도, 미래에는 든든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조언자가 되어준다는 말에 '부모 등골 빼먹을 일은 없겠구나' 싶어 안도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인세' 두 글자였다. 안 그래도 출판사에 투고하며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라 그 단어가 어찌나 크게 보이던지! 타고난 사주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찬란한 말년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를 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돈복이 누구에게 제일 많냐며 정곡을 찌르던 친구의 질문 덕에 깨달았다. 좋은 사주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팔자가 아니라, 이렇게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앞날을 축복해 줄 친구가 곁에 있는 팔자라는 것을. 내 사주의 진짜 명당은 '인세'라는 글자가 아니라,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자, 다음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