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통찰 : 기술 전문가가 아닌 '변화의 전사'가 필요하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AI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도입하는 것과 조직 전체가 그 기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닫고 있죠. 전통적으로 IT 전문가들이 주도해온 기술 구현과 달리, 조직 차원의 변화관리에는 다른 종류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먼저 변화관리(Change Management)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보겠습니다. 변화관리란 조직이 새로운 기술, 프로세스, 또는 업무 방식을 도입할 때 구성원들이 그 변화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접근법을 말합니다.
단순히 "새 시스템이 도입되니까 사용하세요"라고 공지하는 것이 아니라, 왜 변화가 필요한지 설명하고, 사람들의 우려를 들어주고,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며, 변화 과정에서 생기는 저항이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죠.
변화관리는 기술적 구현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거든요.
이는 마치 최첨단 주방기구를 들여놓고도 요리법을 모르거나 사용법이 복잡해서 결국 찬장에 방치되는 것과 같습니다. 기술 자체는 완벽하지만, 사람들의 일상과 업무 패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면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어요.
특히 AI처럼 업무 방식 자체를 크게 바꾸는 기술일수록 변화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AI는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고방식과 업무 프로세스, 심지어 역할 정의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저항은 당연한 반응이에요.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시스템도 조직 구성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 실패 사례의 70% 이상이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람들의 저항과 부적절한 변화관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는 놀라운 역설입니다. 수십억 원을 들여 최고의 기술진이 만든 시스템이, 정작 그 시스템을 써야 하는 직원들이 "예전 방식이 더 편해요"라고 말하며 외면하는 순간 실패작이 되어버리는 거죠.
실패하는 프로젝트들을 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기술팀은 "완벽한 솔루션"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사용자들은 "왜 갑자기 이걸 써야 하지?"라고 의문을 품으며, 경영진은 "돈은 많이 들었는데 왜 성과가 안 나오지?"라고 답답해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특히 AI 도입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사람들은 "AI가 내 일을 대체하는 건 아닐까?", "이 복잡한 걸 언제 다 배우지?", "정말 믿을 만한 건가?" 같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되거든요. 이런 심리적 장벽을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제대로 활용될 수 없습니다.
성공적인 변화관리의 핵심은 해당 업무와 조직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AI가 좋으니까 도입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현재 여러분이 매일 30분씩 쓰는 이 반복 업무를 AI가 3분으로 줄여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설득력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은행의 대출 심사 부서에 AI를 도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IT 전문가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신용평가 정확도를 95%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대출 담당자들이 궁금한 건 다른 것들이에요:
"지금까지 경험과 직감으로 판단해온 미묘한 부분들을 AI가 놓치지 않을까?"
"고객과의 상담에서 느끼는 신뢰감 같은 건 어떻게 반영되나?"
"만약 AI 판단이 틀렸을 때 책임은 누가 지나?"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닌가?"
이런 현실적인 우려들을 이해하고 적절히 답변할 수 있으려면, 대출 업무의 실제 프로세스와 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조직마다 문서화되지 않은 고유한 규칙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공식 매뉴얼에는 없지만, 실제로는 업무를 좌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AI 도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암묵적 규칙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예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중요한 대출 건은 항상 팀장이 한 번 더 검토한다"는 관례의 경우,
이 관례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파악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책임 분산의 목적이 있는데, 큰 금액의 대출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또한 팀장의 오랜 경험과 직감을 통해 놓칠 수 있는 리스크를 한 번 더 점검하여 경험을 활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팀원들이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더 자신감 있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 신뢰가 구축되며, 신입 직원들이 팀장의 판단 과정을 보며 노하우를 습득하는 학습 기회도 제공됩니다.
만약 AI를 도입하면서 이런 관례를 무시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AI가 추천하니까 팀장 검토는 생략하겠습니다"라고 하면, 팀원들은 "갑자기 모든 책임을 나 혼자 져야 하나?"라고 불안해할 것입니다. 팀장은 "내 역할이 없어지는 건가?"라고 느낄 수 있고, 전체적으로 "회사가 우리를 신뢰하지 않아서 기계에 맡기려는 건가?"라는 서운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AI는 1차 분석을 담당하고, 팀장님은 최종 의사결정자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시게 됩니다", "AI가 놓칠 수 있는 미묘한 부분들을 팀장님의 경험으로 보완하는 시스템이에요", "오히려 AI 덕분에 팀장님이 각 케이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실 수 있어요"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객 응대에서는 절대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는 문화적 가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치가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면, 대출은 장기간 이어지는 관계이므로 첫 만남에서의 신중함이 중요한 신뢰 관계 형성의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성급한 결정으로 인한 부실 대출을 예방하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중요하며, 고객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므로 충분한 상담과 검토가 필요하다는 고객 존중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고객의 꿈을 돕는 일을 한다"는 직업적 자부심도 이런 문화를 뒷받침합니다.
AI 도입시 이 가치와 충돌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습니다. AI가 "3분 만에 대출 승인 결과"를 제시하면, 직원들은 "이렇게 빨리 결정해도 되나?"라고 불안해할 수 있고, 고객도 "이렇게 빨리 결정하는 게 정말 꼼꼼히 검토한 건가?"라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충분한 상담을 통한 신뢰 구축" 과정이 생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변화관리 전략이 필요합니다. "AI는 빠른 계산을 담당하고, 그 시간에 고객과 더 깊이 있는 상담을 할 수 있어요", "AI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더 정확하고 개인화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결정은 여전히 충분한 검토를 거치되, 단순 계산 업무는 AI가 도와주는 거예요"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기존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AI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AI 시대에는 IT부서의 역할 자체도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기술 주도 혁신이 더 이상 IT부서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5년 전만 해도 IT 부서는 종종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IT부서는 기술 시스템을 구매했고, 나머지 부서는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기대되었죠. 이때는 "기술 전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 IT부서는 다른 부서들과 주요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잠재적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클라우드 컴퓨팅과 마찬가지로, 생성형 AI는 사용자가 IT 팀과 독립적으로 디지털 솔루션을 찾는 것을 훨씬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마케팅팀에서도 ChatGPT로 카피를 작성하고, 영업팀에서도 AI 도구로 고객 분석을 하고, 인사팀에서도 AI로 채용 공고를 만듭니다. 기술 사용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모든 부서가 독립적으로 AI 솔루션을 찾고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인공지능 기술 도입이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일까요? 각 부서가 서로 다른 AI 도구를 마음대로 사용하면, 데이터 보안 문제, 일관성 부족, 중복 투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IT부서는 기술구현자에서 "변화관리자"로 역할이 바뀌고 있습니다. 공직에서는 조정관이라고도 하죠. 더 이상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AI와 기술이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조율하는 역할이 핵심이 되었어요.
하지만 이런 "간극을 메우는" 역할은 순전히 기술적 전문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AI 도입으로 인한 조직 변화 과정에서 기술적 구현만큼이나 중요한 여러 영역의 업무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AI 기술 도입이 가져오는 업무 방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조직 구성원들의 불안감이나 저항감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건강한 조직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 핵심적입니다. 동시에 교육과 소통 분야에서는 각 부서의 특성과 업무 환경을 고려하여 AI 정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구성원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부서들이 각기 다른 목적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서로 다른 AI 솔루션을 도입하려고 할 때, 이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직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갈등 조정 업무도 필수적입니다. 거버넌스와 윤리 영역에서는 조직 내에서 어떤 AI 도구는 활용해도 되고 어떤 것은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정책을 수립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에게 흥미로운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AI 정책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서로 다른 관점과 이해관계를 가진 부서들 사이의 갈등을 지혜롭게 조정하는 이러한 업무들은 프로그래밍이나 데이터 분석 능력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소통 능력, 그리고 복잡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더욱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구성원 이해 측면에서는 AI 도입으로 인해 자신의 업무가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직원들의 복잡한 감정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이들이 새로운 기술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정책 설계와 소통 영역에서는 기술적 전문용어로 가득한 복잡한 AI 가이드라인을 "잘 모르겠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와 같은 친근하고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조직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부서 간 조율에서는 예를 들어 혁신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위해 최신 AI 도구 도입을 원하는 마케팅팀의 열정과, 데이터 보안과 법적 리스크를 우려하는 법무팀의 신중함 사이에서 양측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런 역할들은 코딩 능력보다는 소통 능력, 정책 설계 능력, 갈등 조정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실제로 IT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해당 업무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변화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AI 구현을 성공적으로 주도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 전문성보다는 해당 업무 영역의 이해와 변화관리 능력이 더 중요해진 것이죠.
이러한 주장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서 2005년에 발표된 '새로운 CIO의 역할 : 변화의 전사(New CIO Role: Change Warrior)'라는 아티클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예견했습니다. 이 글은 CIO의 성공 여부가 과거의 기술 전문성에서 "회사 전체가 다르게 일하도록 이끄는 능력"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많은 IT 프로젝트가 기술 자체가 아닌 "기반이 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변하지 않아서" 실패하며, 이 때문에 CIO가 자신의 역할을 좁게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아티클은 성공적인 CIO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리더(business-minded leader)" 이자 사업부와 함께 기회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파트너 로 정의하며, IT 부서 내부가 아닌 "회사 전체의 변화를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AI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훨씬 이전에 쓰인 글이지만, 오늘날 AI 도입에 있어서 CIO와 IT 부서가 왜 단순 기술 전문가를 넘어 '변화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CIO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AI 변화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율과 관리 업무의 상당 부분은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이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앞으로는 기술 전문가와 변화관리 전문가가 함께 협력하는 모델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각자의 강점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전문성을 조합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AI 시대의 핵심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