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 AI가 못하는 일만 사람을 뽑겠다고요?

쇼피파이 CEO가 던진 충격적 선언, 채용의 새로운 기준

by 서지삼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려면, AI가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

상상해보세요. 어느 날 아침, 회사 메일함에 이런 내용의 메모가 도착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요청하기 전에 AI를 사용해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없는 이유를 입증해야 합니다."

이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2025년 4월, 전 세계 수백만 온라인 쇼핑몰이 사용하는 플랫폼 쇼피파이(Shopify)의 CEO 토비 루트케가 실제로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의 내용입니다.

루트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율 AI 에이전트가 이미 팀에 포함된다면 이 분야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쇼피파이에서는 직원들이 일상 업무에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기대"가 있으며, AI 활용 능력을 성과 평가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https://www.cnbc.com/2025/04/07/shopify-ceo-prove-ai-cant-do-jobs-before-asking-for-more-headcount.html


이미 시작된 변화의 신호들

루트케의 발언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증거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나(Klarna)는 2024년 AI 도입으로 콜센터 상담원 700명의 역할을 대체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AI는 인간 상담원이 처리하던 업무를 20% 시간만으로 완료했고, 고객 만족도는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클라나는 이를 통해 연간 4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기술 기업들이 해고한 직원 수는 15만 2천 명에 달합니다. 2025년에도 이미 2만 8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쇼피파이 자체도 지난 2년간 두 차례의 대규모 감원을 통해 직원 수를 1만 명에서 8,100명으로 19% 줄였습니다.


기업들의 속마음

루트케의 정책 발표 이후, 다른 기업 CEO들과 인사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공개적으로는 "성급한 결정"이라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사적으로는 "우리도 이미 고려하고 있던 것인데..."라고 속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미 비공식적으로 유사한 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신규 채용 승인 회의에서 "이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이 점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한폭탄 가동

포브스는 루트케의 정책을 "일자리 보장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job security's ticking clock)"고 표현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효율성 개선책 같지만, 실제로는 일의 미래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새로 뽑을 사람이 AI보다 나은지 증명하라"고 하지만, 이 논리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1단계 : 신규 채용 시 "AI로 대체 가능한지" 검토

2단계 : 기존 직원도 "AI로 대체 가능한지" 재평가

3단계 : "AI가 더 효율적이라면 왜 이 사람을 계속 고용해야 하나?"

결국 모든 직원이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AI가 당신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데 왜 우리가 당신에게 계속 급여를 지급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머뭇거리거나 "음..." 하며 말을 잇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가 위험 신호입니다.

https://www.forbes.com/sites/rogerdooley/2025/04/08/shopify-ceos-ai-first-hiring-policy-is-job-securitys-ticking-clock/


현실적 전망 : 기존 자리 vs 새로운 자리

제가 보기에는 기존 직원들의 자리는 당분간 급격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연스러운 인력 순환이 존재합니다. 퇴직, 이직, 승진으로 인한 공석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AI로 즉시 대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둘째, AI 전환이 100%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아직 AI 도입의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어떤 업무를 AI로 대체할 수 있는지, 어떤 업무는 여전히 인간이 필요한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셋째, 과도기의 혼재 상황입니다. AI 트랜스포메이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존 업무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변화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채용 규모는 소폭 감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량 해고보다는 점진적인 자연 감소가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새로운 포지션의 운명은?

문제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 때입니다. 여기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신이 CEO라고 상상해보세요. 부서장이 와서 "마케팅 캠페인 관리를 위해 새로운 매니저가 필요합니다"라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어떤 질문을 던질까요?

"인사부서에서 이 역할을 AI가 대체할 수 있는지 검토했나요?"

이는 자연스러운 질문이 될 것입니다. 기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법적, 도덕적 부담이 따르지만, 새로운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은 훨씬 간단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시작된 미래

포브스는 쇼피파이의 대대적인 인력 감축 정책을 "기업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표현했습니다. 탄광에서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먼저 보내는 카나리아처럼, 쇼피파이의 움직임이 기업계 전체에 닥칠 변화의 전령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AI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조심스럽게 "AI가 과연 이런 복잡한 일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AI가 왜 이 일을 할 수 없는지 합리적으로 증명해봐"라고 묻고 있습니다. 입증의 책임이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에서 인간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완전히 넘어온 것입니다. 이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을 직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포브스는 명확한 두 가지 생존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공감 능력, 데이터 너머의 창의적 비전을 그려내는 상상력, 신뢰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관계 구축, 그리고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나침반 같은 능력들 말입니다. 이런 역량들은 AI가 아무리 학습해도 모방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두 번째 전략은 더욱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입니다. AI와 경쟁하지 말고 AI를 완벽하게 활용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해주는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는 새로운 형태의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AI의 언어를 이해하고, AI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며, AI와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쇼피파이의 CEO 루트케의 말은 이런 변화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직원들은 "이전에는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불가능해 보였던 작업들에 당당히 도전하여 100배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그는 증언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향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가능성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변화의 핵심은 대립이 아닌 협력에 있습니다. AI를 적으로 여기며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성장하며 새로운 형태의 인간 역량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만 살아남는다.

루트케의 정책이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많은 기업에서 조용히 적용되고 있는 기준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일 뿐입니다. 쇼피파이는 단지 시대를 조금 앞서 나간 것이고, 다른 기업들도 조만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려면 AI가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 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에 앞서 적응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2. AI 기술은 훌륭한데 조직 변화는 왜 실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