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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빅테크 따라하기의 함정 : 중간관리자 감축?

구글·메타가 하니까 우리도? 성급한 모방이 부르는 위험

by 서지삼

실리콘밸리에서 불어온 "중간관리자 감축 열풍"

2024년 말부터 경영 뉴스를 장악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중간관리자 감축"입니다. 구글, 메타, 아마존, 세일즈포스, X(구 트위터), 바이어까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중간관리자 계층을 대폭 줄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조직을 평면화하고 의사결정을 하위 레벨로 밀어내리는 근본적인 운영 방식의 변화입니다.

가트너(Gartner, 2024.10 리포트)의 예측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2026년까지 조직의 20%가 AI를 활용하여 현재 중간관리자 직위의 절반 이상을 없앨 것"이라고 했습니다. 콘페리(Korn Ferry, 2024.9 조사)에서는 미국 전문직 종사자의 44%가 자신의 회사에서 관리자급 역할이 줄어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맥킨지(2024.8 분석)는 생성형 AI가 전체 관리 업무의 최대 49%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압도적인 숫자들 앞에서 많은 기업들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닐까?", "AI 시대에 중간관리자는 정말 불필요한 걸까?", "뒤처지면 경쟁에서 밀리는 거 아닐까?" 하지만 잠깐, 정말로 모든 기업이 실리콘밸리의 이 길을 따라가야 할까요?


놀라운 역설 : 오래된 예측과 정반대 현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공개한 데이터는 우리의 상식을 뒤흔듭니다. 중간관리자 소멸 예측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011년부터 BBC, HBR, 포브스 등 주요 매체들이 지속적으로 "중간관리자의 종말"을 예측해왔습니다. (The End of the Middle Manager, by Lynda Gratton, HBR, 2011) 2015년 BBC는 "The Death of Middle Management"라는 제목의 특집을 내보냈고, 2018년 포브스는 "AI Will Replace Middle Managers"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어떨까요? 미국 노동통계청(BL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중간관리자가 전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3년 9.2%에서 2022년 13%로 40년간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계 오류가 아닙니다. 지난 지속적으로 "소멸"이 예측되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왜 이런 역설이 발생할까요? 그 답은 "모든 산업이 테크 기업과 같지 않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구글과 메타의 성공 사례가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마치 축구선수의 훈련법을 수영선수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테크 기업은 특별하다

테크 기업들이 중간관리자를 줄일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디지털 네이티브 업무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업무가 이미 디지털화되어 AI 도입이 자연스럽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조직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원격 협업과 디지털 도구 활용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둘째, 개별 기여자(IC) 중심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뛰어난 개발자 한 명이 중간관리자 여러 명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코드와 제품 자체가 명확한 성과 지표가 되며, 창의적 개인 작업이 협업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빠른 변화에 최적화된 조직입니다. 시장 변화 속도가 빨라 계층적 의사결정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빠르게 움직이고 부수기(Move Fast and Break Things)" 문화가 정착되어 있으며, 실패를 통한 빠른 학습과 개선이 핵심입니다.

이런 특수한 환경에서는 AI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산업은 어떨까요?


제조업의 현실 : 여전히 필요한 인간의 판단

제조업은 본질적으로 물리적 자산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입니다. 수십 년간 사용해온 기존 설비와 생산라인을 AI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면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견기업들은 이러한 투자 여력이 제한적이어서 점진적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 환경도 큰 걸림돌입니다. 제조업은 안전, 환경, 품질에 관한 엄격한 규제를 받습니다. 새로운 AI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각종 인증과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 과정만으로도 수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규제 당국 역시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조직 문화적 측면에서도 제조업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 방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 AI 기반의 새로운 접근법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금융업의 딜레마 : 리스크와 신뢰의 문제

금융업은 규제가 가장 엄격한 산업 중 하나입니다.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여러 감독기관의 복잡한 규제를 준수해야 하고, 새로운 AI 시스템 도입 시에도 철저한 검증과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특히 고객 데이터를 다루는 영역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등의 제약이 AI 활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 문화도 변화를 늦추는 요인입니다. 금융기관은 본질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AI 기술을 도입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시스템 오류나 고객 피해를 우려하여 신중한 접근을 택하고 있습니다.

기존 IT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도 큽니다. 수십 년간 구축해온 레거시 시스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AI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전면적인 시스템 교체는 운영 중단 위험이 크기 때문에 단계적 접근이 불가피합니다.


변화 속도를 결정하는 요인들

두 산업 모두 인력 구조상의 특징도 변화 속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상당수 직원들이 오랜 기간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이들에게 AI 도구 활용법을 교육하고 업무 방식을 바꾸도록 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됩니다.

또한 고객과의 관계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제조업체의 주요 고객들이나 금융기관의 기업 고객들 역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적이고 검증된 서비스를 선호합니다.

결국 이들 산업에서 AI 전환이 느린 것은 기술적 한계보다는 산업 고유의 구조적, 제도적, 문화적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긴 호흡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급한 모방"이 부르는 세 가지 위험

첫째, 조직 무너짐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입니다. 테크 기업과 달리 전통 산업에서는 중간관리자가 조직의 접착제,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이들을 성급하게 제거하면 상하간 소통 채널이 단절되고, 현장 지식과 경영진 전략 사이의 연결 고리가 파괴되며, 조직 문화와 가치 전수 경로가 차단됩니다.

둘째, 핵심 역량 손실의 위험입니다. 매뉴얼에 없는 현장의 노하우와 경험이라는 암묵지가 소실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종합적 판단력이 부재해져 위기 대응력이 약화되며, 현장과 전략을 연결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발굴 능력이 감소하여 혁신 동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셋째, 비용 증가의 역설입니다. 감축 후 문제가 드러나면 다시 채용하는 데 더 큰 재채용 비용이 발생하고, 새로운 인력이 기존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2-3년의 학습 비용이 필요하며, 숙련된 인력 부족으로 인한 매출 기회 상실과 고객 만족도 하락이라는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자신의 산업과 조직에 맞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1단계로 우리 산업의 특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테크 기업과 얼마나 다른지, 중간관리자가 수행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지, AI로 대체 가능한 업무와 불가능한 업무를 구분해야 합니다.

2단계로 점진적 실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전면적 감축 대신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특정 부서나 기능에서 소규모 테스트를 실시하며, 6개월-1년 단위로 효과를 측정하고 조정해야 합니다.

3단계로 재정의와 재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중간관리자 역할을 단순 관리에서 코칭과 전략 실행으로 재정의하고, AI 도구를 활용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AI 활용 능력 교육을 실시하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미래 역량을 개발해야 합니다.


결론 : 신중한 혁신이 진짜 혁신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모방"일 뿐입니다. 진정한 혁신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해답을 찾는 것입니다.

구글과 메타가 중간관리자를 줄인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3년간 수많은 전문가들이 "중간관리자의 종말"을 예측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업에서 중간관리자는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나요? 그 가치가 정말 AI로 대체 가능한가요?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는 AI가 정확히 어떤 일을 가져가고 무엇을 남겨두는지, 매니저와 리더의 차이점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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