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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매니저는 죽고 리더는 남는다

AI가 대체하는 중간관리자는 '매니저' 인가? '리더'인가?

by 서지삼

1977년의 예언이 현실이 되다

1977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아브라함 잘레즈닉은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제목은 "매니저와 리더 : 다른가?(Managers and Leaders : Are They Different?)"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니저와 리더를 같은 개념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잘레즈닉은 이 둘이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매니저는 안정성과 통제를 추구하는 반면, 리더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4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언이 AI 시대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AI가 매니저의 일을 하나씩 가져가면서, 인간에게는 진정한 리더십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매니저 vs 리더 :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잘레즈닉이 제시한 구분을 현재 상황에 맞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니저의 특징: AI가 잘하는 일들

목표에 대한 태도 매니저들은 목표를 주로 필요에서 찾습니다. 시장이 요구하니까, 회사가 정했으니까, 작년 대비 성장해야 하니까. 프레드릭 도너 전 제너럴모터스 CEO의 말처럼 "고객의 요구와 욕구의 변화를 파악하여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제품을 제공"하는 반응적 접근을 취합니다.

업무에 대한 관점 매니저들은 일을 역량 강화 과정으로 봅니다. 사람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전략을 수립하고, 반대 의견을 조율하며,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알프레드 슬론이 제너럴모터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갈등 상황에서는 모든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구조적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관계에 대한 접근 매니저들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혼자 있는 활동을 피합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감정적 참여는 낮게 유지합니다. 승패 상황을 승승 상황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직접적 메시지보다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신호를 사용합니다.


리더의 특징 :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

목표에 대한 태도 리더들은 목표를 욕망에서 찾습니다. 에드윈 랜드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만들 때처럼, 고객의 요구에 반응하기보다는 새로운 욕구를 창조해냅니다.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자극"하는 능동적 접근을 취합니다.

업무에 대한 관점 리더들은 기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효과적인 리더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영감을 주는 이미지에 투영하고, 그 이미지에 실체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존 F. 케네디의 취임사처럼 사람들이 당장의 우려를 넘어 중요한 공유 이념에 공감하도록 만듭니다.

관계에 대한 접근 리더들은 더 직관적이고 공감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사건과 결정이 참여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심을 두며,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정체성과 차이, 사랑과 증오 같은 강렬한 감정을 다루며, 때로는 격렬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AI 시대의 충격적 현실 : 매니저 기능의 대규모 이관

현재 AI가 가져가고 있는 중간관리자의 업무들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것이 '매니저'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단계 : 기초 행정 업무의 소멸

성과 데이터 수집과 분석 과거에는 중간관리자가 팀원들의 성과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제는 AI가 실시간으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을 분석하며, 심지어 예측까지 제공합니다. 사람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말입니다.

업무 할당과 진척 관리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정하고 진행 상황을 추적하는 일도 AI의 몫이 되었습니다. 각 팀원의 역량, 현재 워크로드, 과거 성과를 종합해서 최적의 업무 배분을 제안하고, 실시간으로 진척도를 모니터링합니다.

일정 조정과 회의 관리 캘린더 조정, 회의실 예약, 참석자 확인 같은 업무들은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되었습니다. AI 어시스턴트가 참석자들의 일정을 분석해서 최적의 회의 시간을 찾아주고, 심지어 회의 안건까지 제안합니다.


2단계 : 운영 관리의 고도화

목표 설정과 KPI 모니터링 AI는 과거 데이터와 시장 동향을 분석해서 현실적이면서도 도전적인 목표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KPI를 모니터링하면서 목표 달성 가능성을 예측하고, 필요시 조정 방안을 제시합니다.

자원 배정과 최적화 인력, 예산, 장비 등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정하는 것도 AI가 잘하는 영역입니다. 복잡한 제약 조건들을 모두 고려해서 최적해를 찾아내는 능력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문제 감지와 알림 각종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관련자들에게 알림을 보내는 일도 AI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모든 지표를 감시하면서,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경고를 발송합니다.


3단계 : 고급 의사결정 지원

예측 분석과 추천 AI는 과거 패턴을 학습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추천안을 제시합니다. 중간관리자가 경험과 직감에 의존해서 내리던 많은 판단들을 데이터 기반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개인별 맞춤 코칭 팀원 개개인의 성향, 학습 스타일, 성과 패턴을 분석해서 맞춤형 코칭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AI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객관적이고 일관된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는 오히려 AI가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럼 인간에게 남은 것은?

놀랍게도 AI가 가져간 모든 기능들은 잘레즈닉이 정의한 '매니저'의 역할들입니다. 반면 '리더'의 역할들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전 창조와 영감 부여

AI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전을 창조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1000곡을 주머니에"라는 비전으로 iPod을 만들어낸 것처럼,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고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AI가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가치 충돌의 조율

AI는 정해진 규칙과 패턴에 따라 판단할 수 있지만,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나 가치 충돌 상황에서는 한계를 보입니다. 특히 이해관계자들 간의 상충되는 요구를 조율하고, 조직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인간 리더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공감과 소통

AI는 감정을 분석하고 반응할 수 있지만, 진정한 공감은 다릅니다. 팀원의 개인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어려운 시기에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며, 갈등 상황에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창의적 문제 해결

정형화되지 않은 복합적 문제들, 특히 전례 없는 상황에서는 AI보다 인간의 창의성이 더 중요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예측 불가능한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 리더의 고유한 역할입니다.


중간관리자의 이중 역할 : 그래서 혼란이 온다

전통적으로 중간관리자들은 매니저와 리더의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왔습니다.

아침에는 성과 데이터를 분석하고 업무를 배정하는 '매니저'였다가, 오후에는 팀원들을 격려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어야 했습니다. 월초에는 예산을 배정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매니저'였다가, 분기말에는 팀의 사기를 북돋우고 혁신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이중 역할 때문에 현재 중간관리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AI가 매니저 기능을 하나씩 가져가면서 "내 역할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사라지는 것은 '매니저' 기능이고,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리더' 기능입니다. 문제는 많은 중간관리자들이 이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관점 : 해방과 기회

AI의 등장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중간관리자들은 데이터 정리, 보고서 작성, 일정 조정 같은 매니저 업무에 시간의 60-70%를 써왔습니다. 정작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며,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리더십 업무에는 30-40%의 시간밖에 할애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AI가 매니저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면서, 중간관리자들은 100% 리더십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히려 중간관리자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변화하는 중간관리자의 새로운 정체성

성공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중간관리자들은 더 이상 매니저가 아닌 진정한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잘레즈닉의 표현을 빌리면, "기존 질서의 수호자"에서 "변화의 촉진자"로 변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역할 조정이 아닌 정체성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인 중간관리자가 상부의 지시를 하부에 전달하고 통제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새로운 시대의 중간관리자는 미래를 설계하고 조직을 혁신으로 이끄는 변화의 엔진이 되어야 합니다.


반응적 목표 설정에서 능동적 비전 창조로

기존의 중간관리자들은 주로 상위 조직에서 내려온 목표를 받아 이를 달성 가능한 단위로 분해하고 배분하는 역할에 집중했습니다. "시장이 요구하니까", "회사가 정했으니까"라는 논리로 팀원들을 설득하며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핵심 업무였습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이런 접근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의 요구가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간관리자는 단순한 목표 전달자가 아닌 비전 창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이를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비전으로 제시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능동적 비전 창조는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먼저 시장과 고객의 잠재적 니즈를 예측하고 선도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현재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아직 인식하지 못한 필요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팀을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기술 발전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이를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하는 통찰력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팀원들이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목적을 추구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비전은 구체적이면서도 영감을 주는 것이어야 하며, 팀원 각자가 자신의 역할이 더 큰 그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갈등 조정에서 새로운 선택지 창조로

전통적인 중간관리자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갈등 조정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중간지점을 찾아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 숙련된 관리자의 덕목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효과적인 접근법이었지만,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발전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중간관리자는 기존의 대립되는 의견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재정의하고 혁신적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는 "either-or"의 사고에서 "both-and" 또는 완전히 새로운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품질과 속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전통적 접근법은 적당한 품질 수준에서 적당한 속도를 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혁신적 리더는 프로세스 자체를 혁신하여 높은 품질과 빠른 속도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기존의 가정들을 의문시하며,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시도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갈등을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기회로 인식하는 관점 변화가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으며, 이를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감정적 거리두기에서 진정한 공감과 연결로

과거 중간관리자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팀원들과 적절한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개인적 감정이 업무 판단을 흐린다고 생각했고, 모든 팀원을 동일한 기준으로 대하는 것이 공정한 리더십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식 기반 업무가 중심이 되고 창의성과 몰입이 중요해진 현재, 이런 접근법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팀원들과 깊이 소통하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리더십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공감과 연결은 단순히 친근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각 팀원의 강점, 약점, 동기, 두려움, 꿈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화된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팀원에게는 도전적인 목표가 동기부여가 되지만, 다른 팀원에게는 충분한 지원과 안정감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취약성을 적절히 드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완벽한 리더의 모습을 연출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도 학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써 팀원들과의 진정한 연결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전환 과정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존의 사고 패턴과 행동 양식을 바꾸는 것은 지속적인 노력과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찰하는 자세,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민감성이 모두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스킬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정체성과 목적 의식의 근본적 전환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중간관리자는 조직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 주체로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결론 : 진화의 시작점

AI 시대의 중간관리자에게 지금은 진화의 시작점입니다.

매니저로서의 기능이 AI에게 이관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AI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에서 리더로의 근본적인 정체성 전환이 필요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런 전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왓킨스가 제시한 '7가지 지각변동'을 통해 실용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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