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반발을 뚫고 도입한 소방마(馬)도 결국 자동차로 대체되었다.
브래드 스미스와 캐럴 앤 브라운의 『기술의 시대』를 읽다가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소방차 기술이 어떻게 사람에서 말로, 그리고 자동차로 단계적으로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였습니다.
초기 소방 시스템에서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담당했습니다. 소방차라고 해봤자 물탱크와 호스가 달린 수레 정도였는데, 이걸 소방관들이 직접 끌고 화재 현장까지 달려가야 했습니다. 당시 소방관들의 주된 업무는 말 그대로 소방차를 끄는 것이었습니다. 화재가 신고되면 소방관들이 줄을 잡고 힘껏 달려가면서 무거운 장비를 운반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832년, 뉴욕에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콜레라로 인한 소방 인력의 급감은 더 이상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시를 보호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만들어냈습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을 도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근력과 담력으로 화재와 맞서왔던 소방관들에게 말의 도입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왜 짐승에게 맡겨야 하는가'라는 반발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감정보다 현실이 우선이었습니다. 인력 부족이라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반발은 점차 수그러들었고, 말을 이용한 소방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방차의 소방관들이 추운 겨울 아침 속으로 달려가는 말들의 해진 마구를 단단히 붙잡고, 소방관들이 "이랴!" 하고 채찍을 내리치는 모습이 뉴욕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토록 혁신적이었던 '말을 이용한 소방차'도 시간이 지나자 구식이 되었습니다. 자동차라는 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말들은 또 다시 대체되었습니다. 한때 최신 기술이자 혁신의 상징이었던 말이,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야 할 존재가 된 것입니다.
브루클린 이글 신문이 전한 말들의 마지막 날에 대한 기록은 이런 기술 변화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줍니다. "지난 3세대 동안 남자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만큼이나 소방차를 끄는 말들은 기억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말들이 오늘 뉴욕시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1832년 사람들이 말의 도입에 반발했던 것처럼, 말 시대의 사람들도 자동차의 도입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더 효율적이고 빠른 기술이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소방차는 사람에서 말로, 말에서 자동차로 단계적으로 진화해왔습니다.
190년 후 2020년, 역사는 놀랍도록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를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사람들은 사무실에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면 회의는 불가능해졌고, 기존 방식으로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디지털 기술과 AI의 전면적 도입이었습니다. Zoom 회의, 재택근무 시스템, AI 챗봇 고객서비스, 자동화된 업무 프로세스... 평상시라면 몇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도입했을 기술들이 몇 개월 만에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1832년과 2020년, 190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사건에서 공통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기존 시스템이 붕괴됩니다. 1832년에는 콜레라로 소방 인력이 급감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로 대면 업무 시스템이 마비되었습니다. 그 다음 생존을 위한 급속한 기술 도입이 이루어집니다. 1832년에는 말을 이용한 소방차가 도입되었고, 2020년에는 AI와 디지털 기술이 전면 도입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역할의 재정의가 일어납니다. 1832년에는 '소방차를 끄는 사람'에서 '말을 조종하며 화재를 진압하는 사람'으로, 2020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에서 'AI 도구를 활용해 원격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소방차의 역사를 통해 인간 역할의 변화를 추적해보면 정말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물리적 동력 제공자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초기부터 1832년까지 사람들이 직접 소방차를 끌었던 시기입니다. 이때 인간의 가치는 순수한 근력과 지구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힘만 쓴 게 아니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하고, 언제 멈춰야 할지 결정하고, 화재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었습니다. 즉, 물리적 동력과 의사결정이 하나의 통합된 역할로 존재했던 시대였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관리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입니다. 1832년부터 자동차 도입 이전까지의 시기로, 말이 동력을 제공하게 되면서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직접적인 물리적 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말을 훈련시키고 관리하며 조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할 교체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의 능력이 요구되는 변화였습니다.
말을 다루려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해야 했고, 응급 상황에서 말이 놀라지 않도록 진정시키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말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최적의 경로를 선택하며, 화재 현장에서 말과 장비를 안전하게 배치하는 복합적인 사고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간의 역할이 "더 고차원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근력에서 판단력, 관리 능력, 그리고 생명체와의 협업 능력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기계 조작자이자 전문가로서의 역할입니다. 자동차 시대에 들어서면서 또 다른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인간은 기계를 조작하는 능력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조작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복잡한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판단하고, 다양한 기계 부품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응급 상황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종합적인 능력을 요구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방관이 이제 화재 진압 기술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동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전문성을 더 깊이 발전시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입니다. 단순히 화재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불을 끌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AI 협업자이자 감독자로서의 역할입니다. AI가 많은 정보 처리, 패턴 인식, 심지어 일부 의사결정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인간의 역할은 또 다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은 AI의 감독자이자 윤리적 판단자, 그리고 창의적 문제 해결자의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잡한 상황에서의 직관적 판단,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 그리고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고려한 의사결정 등이 핵심 역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 단계를 관통하는 공통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 기술적 전환점마다 인간의 역할은 더 단순해진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물리적 노동에서 관리와 조정으로, 그리고 전문적 판단과 의사결정으로 진화해온 것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패턴은 각 단계에서 인간이 담당했던 이전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말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물리적 능력이 필요했고, 자동차 시대에도 장비 관리와 동물적 직감 같은 능력들이 여전히 가치를 가졌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이런 "강제된 변화"가 자연스러운 기술 도입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1832년 이전에도 말을 이용한 운송은 존재했지만, 소방서에서 본격 도입된 건 콜레라라는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2020년 이전에도 AI 기술은 있었지만, 전 세계가 동시에 디지털 전환을 시작한 건 팬데믹 때문이었습니다. 평상시라면 10-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났을 변화가 1-2년 만에 압축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AI 혁명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AI 도입을 10년 이상 앞당겨 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속도에 당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라면 2030년대에 일어났을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역사를 보면 이런 급변기마다 인간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냈습니다. 1832년 소방관들이 '말 조련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였듯이, 우리도 'AI와 협업하는 새로운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음 위기도 분명 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때도 우리는 또 다른 기술적 도약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소방차의 진화는 모든 지역에서 비교적 동일한 순서로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끄는 소방차에서 말이 끄는 소방차로, 그리고 자동차가 끄는 소방차로 말입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변화는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기존의 단계를 건너뛰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끄는 소방차에서 바로 자동차가 끄는 소방차로 넘어가는 것처럼, '말 단계'를 생략하고 직접 AI로 전환되는 분야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수작업에 의존하는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간 자동화 단계 없이 바로 AI 기반 스마트 팩토리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는 이미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AI로 업그레이드되는 패턴을 보일 것입니다. 마치 말이 끄는 소방차에서 자동차가 끄는 소방차로 넘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금융 분야의 전산 시스템이나 물류 관리 시스템 등이 이런 패턴에 해당합니다. 이미 디지털화된 기반 위에서 AI 기능이 추가되는 방식입니다.
또 어떤 영역에서는 전통적인 단계적 진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끄는 소방차에서 말이 끄는 소방차로, 그리고 자동차가 끄는 소방차로 넘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교육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전통적인 대면 교육에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교육으로, 그리고 AI 맞춤형 교육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를 보면 이런 다층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단 영역에서는 의사의 경험과 직감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바로 AI 진단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수술 분야에서는 로봇 수술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AI 지원 수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환자 관리 시스템은 이미 전산화된 기반에서 AI 예측 모델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AI 변화는 전방위적 영향을 미치지만, 분야마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각 산업의 현재 기술 수준, 규제 환경, 인력 구조, 그리고 고객의 수용성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층적 변화 패턴을 이해하면, 개인과 조직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더 명확해집니다. 중요한 건 위기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분야가 어떤 변화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높은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응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분야가 '사람→AI' 패턴을 따를 것 같다면, 기존의 중간 단계 기술에 매달리지 말고 바로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반대로 '기존 시스템→AI' 패턴을 따를 것 같다면, 현재의 디지털 역량을 탄탄히 다지면서 AI와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1832년 소방관들이 갑작스런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찾아냈듯이, 2020년 우리 모두가 팬데믹 속에서도 디지털 전환에 적응했듯이, 지금도 우리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변화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