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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42,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42.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사리아까지(22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20241013%EF%BC%BF155450.jpg?type=w773 밤새 소파에 있었던 소지품 가방


새벽에 잠을 자다 항상 베개 옆에 두고 자는 작은 가방이 없는 걸을 알았다. 여권과 카드, 현금, 순례자 여권 등 제일 중요한 것을 넣어 늘 걸고 다니는 가방이다. 순간 앞이 하얗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여권, 현금 많이, 그리고 카드까지!'


저녁 9시까지 와이파이가 잘 되는 현관 입구 휴게실 소파에서 블로그와 브런치 글을 올리고 가방을 그냥 두고 온 것이다. 새벽 4시 얼른 일어나 살금살금 문을 열고 휴게실로 뛰어가 보니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가방을 열어 확인해 보니 모두 그대로였다.


'세상에 이 큰 알베르게에 숙박하는 순례자들이 많은데 휴게실 소파의 귀중품 가방이 그대로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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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길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걷는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로 서로를 챙겨주고 힘이 되어준다.


' 정말 고맙고 믿음이 가는 길이다!


아침 8시 아직도 해가 없고 어둠의 순례길이다. 알베르게를 나와 마을 출구로 가니 두 개의 카미노 표지석이 있다. 트리아카스테야에서 사리 아까지 걷는 길이 두 가지이다. 두 길은 모두 카미노 프린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오른쪽 길은 언덕 산길로 가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을 지나 사리아까지 19km 정도로 약 6시간 걷는다. 왼쪽 길은 아름다운 훌리안 이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이 있는 사모스를 지나는 길로 근사한 갈리시아 지방의 매력적인 풍경을 감상하지만 25km 정도로 두 시간 이상을 더 걷는다.

그렇지만 지금은 개발의 논리에 밀려서 숲은 벌목되고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수도원 근처까지 공장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순례자들은 왼쪽과 오른쪽 반반으로 나뉘어 걷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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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순례자상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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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옆 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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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른쪽 짧고 힘들지만 조금 더 아름다운 풍경의 언덕길을 선택했다. 약 30분 정도 언덕을 오르니 작은 돌집에 순례자들이 들어간다. 무인 판매소인 줄 알았는데 나이 많은 화가가 자기가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아트갤러리였다.

밝고 따뜻한 트리아 카스테야 자연을 부드러운 연필과 수채화로 그린 그림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찬찬히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노 화가는 기타를 치며 어메이징 노래를 잔잔하게 불러주었다. 친구가 그림엽서를 고르라고 한다. 나는 주저 없이 신발 바닥 그림을 골랐다. 무지 외반증에 각질이 많은 나의 발을 감싸주는 정말 고마운 신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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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올레길처럼 이끼 가득한 돌담길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운무에 가득한 사리아도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잠깐 이야기하느라 이정표를 못 보고 직진하느라 길을 잃고 큰 도로를 돌았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그래도 순례길이 마을의 성당은 꼭 들르니까 높은 성당 종탑을 향해 걸어 이정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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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내려가면서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동물 분뇨 냄새가 진동하는 목장 지대와 성당과 공동묘지를 통과한다. 사람도 없는 마을이 온통 동물의 똥과 밤송이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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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가비 우물과 무인 카페

마땅히 쉬는 곳이 없더니 오래되고 작은 마을 입구 무인 카페에 순례자들이 북적인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명상실이 있고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순례자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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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니 트리아 카스테야 마을에서 사람들이 많아지며 사모스를 지나온 길과 합류한다. 이제 큰길 따라 걸으면 갈리시아의 대도시 시리아에 도착한다.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 100km를 걷어도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증을 발급해 준다고 갑자기 단체들이 많아진다. 길에는 생장부터 걸어온 사람들과 단기 걷기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눈에 봐도 진짜 순례자와 어설픈 순례자는 구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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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숙소인 알베르게가 위치가 좋아 대성당 앞에 있다. 일요일이라 사리아 시내의 상가 대부분은 문을 닫고 순례자들을 위한 식당 몇 곳만 씨스타 타임에도 문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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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 전망대에 오르니 문이 닫혀 있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 사리아의 상가들은 내내 걸어온 순례자들의 마음은 모른 채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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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앞 식당에서 먹은 샐러드와 문어 요리

뿔뻬리아 문어요리 전문 식당에 갔다. 많은 순례자들이 전통 중심 거리와 가게들을 오가며 향기롭게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으로 즐거운 것 같다. 오늘은 12유로의 순례자 정식이 아닌 문어요리와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즐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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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포르트마린까지 배낭을 메고 걷다 보면 산티아고까지 100km의 표지석을 만날 것이다. 숫자 표지석 보다 인생의 표지석을 고민해 본다.


800km에서 700km를 걸어 100km 남았다니!

나의 표지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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