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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Nov 16. 2024

가을 10,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길 10.

팜플로니아에서 우테르가까지(17.2km)

페르돈 봉우리 순례자상


 아침 8시 팜플로냐 성곽과 성문 사이로 여유롭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 이슬 머금은 팜플로시아 시가지는 평화롭고 오늘 하루도 편안할 것처럼 보인다.



 흐리고 쌀쌀했던 하늘이 시가지를 벗어나자 빛 고운 가을처럼 맑고 푸근해졌다.

 나바라대학과 공동묘지를 지나자 야트막한 들판이 펼쳐진다.


 저 멀리 풍력 발전기들이 많이 있는 곳이 페르돈 산의 봉우리들이다. 강원도 대관령의 선자령과 비슷한 듯하지만 또 다른 분위기이다.

 이곳은 살기가 넉넉하니 풍경도, 개들도, 사람도 모두 순한 것 같다고 말한다. 

 밀 농사가 끝난 빈 농토에 볏짚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여기저기 시들어 말라가는 해바라기 밭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 만난 여행 친구와 나는 동시에 소피아 로렌의 영화 '해바라기'를 생각했다.  나이가 같아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공감을 하여 기뻤다. 지나가는 한국 단체 순례팀 남자분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끼어든다.



 "저도 그 영화를 생각했어요."


 이 먼 길에서 우리는 오래 알고 있던 친구처럼 사진을 찍어주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 산티아고 여정은 오래 기다리다 어렵게 출발했고, 지금까지 일주일 고생했지만 역시 잘 왔다며 서로를 치켜세웠다.



 저 빈 밭에 노오란 밀들이 가득하여 출렁거렸을 봄에 왔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서울과 달리 오늘처럼 흐린 날씨가 걷기에 딱 좋다며 좋은 계절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온 사람은 없다며 다음에는 바다를 끼고 걷는 포르투갈 길도 한적하게 걷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정말 그렇다. 


  자신들은 40일 단체로 와서 여유가 없는데 혼자 떠나 두 달 여정으로 여유 있게 걷는 나를 부러워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미끄럽고 물이 고여 진흙 웅덩이가 많다. 누군가 넓적한 돌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아 감사함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묵묵히 해내는 선한 마음을 배운다.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어느 사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페르돈 봉우리 순례자상을 만났다. 

 12명의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에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이 험한 언덕을 걸어 넘었다는 곳이다.  

 순례자들의 고행과 희망을 담은 모습을 녹슬어가는 철로 만들고 멋진 문장으로 새겨 놓았다.


 '별이 지나는 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가는 곳.'


 '고행을 통해 정신을 정화할 수 있을까?'

 '내가 힘들 때마다 걷고 걷는 이유와 같은 걸까?'


 성찰과 많은 반성을 용서하려는 듯 세찬 바람이 페르돈 산등성이에 불었다. 저 바람은 뭐든 날려 보낼 것 같았다.


 '나도 날아갈 수 있을까?'

 '너무 죄가 많아 무거워서 꿈쩍하지 않네!'

 '62년 성실하게 살았고, 41년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였는데---'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용기에 감사하며 무엇보다 힘껏 도전한 자신에게 용서받을 일이라고' 



 저 아래 작은 마을이 오늘 쉬어 갈 마을 우테르가이다. 오늘은 순례길 4구간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24.4km를 모두 걷지 않고 여유 있게 16.8km만 걷기로 했다.

 모래와 자갈투성이 내리막길에 부상자가 많다며 큰 경고 표지판이 써있다. 


 '그래 내리막길을 조심히 걸어야 이 어려운 순례길을 완주할 수 있듯이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아까 본 해바라기들처럼 시들고 말라도 제자리를 마지막까지 잘 지켜내야 한다.'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 우테르가 입구에 순례꾼들이 버리고 간 신발과 가방이 생명을 담은 화분이 되어 맞아준다.

 미리 예약한 사립 알게르게도 만실이고 공립 알베르게 배낭 대기 줄이 장난이 아니다.

 

 오래된 돌집 알베르게의 시설이 열악하지만 찬물에 몸을 씻어도  감사하고 이 시간이 소중하다.


 저녁식사를 하며 짧은 영어 변역으로 독일인 부부, 뉴질랜드 할아버지, 프랑스  여인들과 이야기했다. 



나, 

한국에서 41년 교사로 일하다 정년 퇴임하고

곧바로 

혼자서 

이 길을 

두 달 걸을 사람이야


모두 놀라며 박수를 친다. 


알베르게 풍경


산티아고 순례길 간다고 한국에서는


"너 제정신이니?"


" 미쳤니!"


걱정과 조소(?)를 받았지만 

나는 미친듯 정년퇴직을하고 

더 미친듯 용서의 언덕을 넘으며  

이런 용기가 박수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알베르게 실내



나는 지금 참 좋다.


많이 걸어서 발바닥에 불이 나고 


동키서비스 배낭이 사라져 힘들었지만


이곳에 있는 나의 용기를 사랑한다.



오늘 꽤 난이도기 높았다고 하지만 이정도야~~~~

오늘의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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