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두팔 Sep 11. 2023

아들에게

엄마가 정말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너를 보며, 

너의 고통을 대신 겪을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안타깝고 나 자신이 참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되어가지고 그간 아들이 얼마나 혼자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무지렁이처럼 밥이나 해주고, 셔츠 다림질이나 해주고 있었다니...


혼자서 꾸역꾸역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위로하고 격려한답시고 엄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진심을 다해서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경험을 전해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가족이나 친구가 진심으로 위로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더라도

결국 이겨내고 너의 삶을 살아내는 건 너 자신이니까

너를 사랑하는 우리는 네가 강해지기를, 네가 조금만 더 강해지기를,

너의 오늘이 어제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편안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마음이 너에게 온전히 가서 닿을 수는 없었을 거야. 

내가 오래전에 보냈던 청춘의 시기와 네가 청춘을 살고 있는 오늘은 다소 다를 테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거다.

인류가 돌도끼를 휘두르며 살던 그 옛날로부터 우주를 정복해가고 있는 오늘까지

우리를 성장시키고 강인하게 만들어 준 것은 마음의 힘이다.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몸은 마음을 담아 놓는 그릇이고, 

우리라는 존재는 어쩌면 99퍼센트 마음의 힘으로 살아지는 게 아닐까...


바르고 곱고 여린 마음으로 살아온 우리 아들.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거친 세상에 고운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살아내려니

얼마나 버거울까? 무연히 지나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분노하면서도

바른 마음을 잘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 아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말했지만 엄마는 요즘 자책을 자주 많이 한다.

내가 너를 너무 여리게 키웠나, 거친 세상에 대항해서 싸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엄마가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았나, 혹은 엄마가 철없을 때 저질렀던

잘못들 때문에 내 아들이 힘들게 된 건 아닐까, 네가 겪고 있는 오늘의 고통이 결국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 건 아닐까...


사랑하는 내 아들아.


며칠 전에 네가 말했듯이 본인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단다.

스스로 한계를 그어놓고 '나는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면 결국은 거기까지가 되어 버려.

마음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데도 말이다.

길게 말하면서 결국은 엄마가 너에게 엄마의 생각을 강요하고 있다는 오해는 말았으면 해.

엄마는, 아니 우리 가족은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인 네가

누구나 겪어온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네 속에 있는 강한 마음을 찾아내길 바란다.

너 스스로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사실은 조용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는

그 강인한 너만의 힘을, 세상 어디에서도 빛을 잃지 않을 너의 잠재력을

결국은 바깥으로 끄집어내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온 가족이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우리 아들.

밥벌이를 핑계로 막 태어난 너를 멀리 떼어놓고 내 인생 살기에 바빴던 어린 날의 엄마를

용서해 주겠니?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고 서툴러서 네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변명이지만 엄마도 아빠도 어리고 서툴렀다.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했어. 미안하다.


과오가 많고, 너에게 너무도 미안한 우리가 오직 바라는 건...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순리대로 너의 곁을 떠나고 없을 때에도 사랑하는 내 아들이

씩씩하게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거다. 우리의 마음을 담은 몸이 너의 곁을 떠나도

너를 사랑하는 우리 마음을 네 마음에 간직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거.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연습이라 생각하고 힘껏 이겨내 봐야지 않겠니?

자립해야 할 날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조금씩 강해지길 바란다.


나는 20 몇 년 전 네가 내 뱃속에서 똑똑 노크를 하던 그 순간, 다시 태어났어.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너와 몇 개의 계절을 함께 걷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산책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어. 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너라는 새로운 생명이

지구에 나타난 순간부터 오늘까지 너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배우고, 용서했어.

너의 기쁜 순간들, 너의 슬픈 순간들을 함께 겪으며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

너를 위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다잡으며 살게 되었어.

부끄러운 순간이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많지만 그래도 자꾸만 결심을 하게 된다.

너를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자.


많이 힘들지?

자주 마음이 네 뜻과 다르게 날뛰거든 힘들겠지만 그냥 외면해 버려.

약해지려는 마음, 도망치려는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너를 흔들어댈 때

끌려가지도, 맞서지도 말고

'그래, 날뛰거라. 맞서 싸울 힘은 없지만 그렇다고 끌려가지도 않을 테니.' 이렇게.

결국 시간은 너의 편에 서 있어.

마음이 날뛰더라도 묵묵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너에게 시간이 힘을 줄 거야.


내일 걱정을 하지 말고, 일단 우리 오늘 하루만 잘 살아내자.

엄마가 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

무기력해질 때가 많아. 엄마라고 왜 미래가 두렵지 않겠니?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정해진 시간에 가게로 나와서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는 거야.

오늘은 어떻게 되려나, 내일은 또 어떻게 되려나,

재료비 결제를 해야 하는데, 세금을 내야 하는데 통장 잔고가 부족할 때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래도 자주 외면해버리곤 한다.

뭐 어떻게 되겠지, 불안한 마음, 초조한 마음은 날뛰도록 내버려 두고

그냥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저녁에 너를 기다리면서 따뜻한 음식을 만들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

이렇게 하루를 살았네. 힘들었지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또 저녁을,

사랑하는 너를 위해 저녁을 지을 수 있어서 감사하네. 이렇게 생각해.


우리 인생이 길어야 100년인데,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있어봐야 뭐가 있겠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란다. 낮동안의 긴장과 노고를, 때로는 고통을, 분노를 다 잠재우면서

저녁상에 함께 앉아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


네가 힘들 때 주위에 반드시 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어.

내 고통은 나만 알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라고 막막해말고 도움을 받으며

이겨내거라. 백번도 더 이야기하지만 너는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단지 지금은 마음이 약해져 있을 뿐이야. 많은 사람의 사랑으로 커온 너의 가장 큰 무기는

꺾이지 않는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란다. 너 스스로를 믿어. 우리가 믿는 것처럼.


지금 당장은 큰 시련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아, 그때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어. 힘내서 한 걸음씩 앞을 향해 걸어온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여겨질 날이 올 거야. 


네 마음의 주인이 되길 바란다. 누구보다 강인한 마음을 지닌 너의 주인.


고맙고, 사랑한다.



2023년 초가을 오후, 이태원에서 엄마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