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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스냅 Feb 06. 2019

홍콩 필름; 시장의 사람들

우연히, 그것도 자주 만나게 되는 홍콩의 재래시장

모든 사진은 2018년 9월 홍콩 여행 중에,

Contax G2, Contax T3, Contax T2와 다양한 필름으로 촬영하였습니다.

색감 및 조도가 일정치 않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흔한 홍콩 골목의 풍경

아쉽게도 홍콩의 길거리에서 볼 수 있을만한 많은 모습들을 담기에는 홍콩에 있는 동안 충분히 걸어다니지는 못 했다. 핑계라면 핑계이겠지만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휴가 차 방문했던, 고작 3박4일의 짧은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그렇기에 많은 것을 보아야겠다는 계획이나 욕심 같은 것은 없었고, 짤막한 트레킹과 명소 몇 군데 정도만 염두에 두고 여행길에 올랐다. 허나 이미 트레킹이 일 수로는 2일이었던지라, 도착일과 출발일을 제외하면 내가 순수하게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던 때는 숙소를 오가는 길 외에 몇 시간 정도 뿐이었다.


  

더더구나 날씨도 제법 더웠다. 방문했던 건 9월. 다행히 우기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 탓에 대낮에는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4계절에 익숙한 한국사람에게 가장 여행하기 적합한 날씨는 선선한 11월~1월 사이가 아닐까. 숙소에서 느지막이 늦장을 부리다가 밖으로 나가기엔 대낮의 홍콩은 뜨거웠다. 그마나 9시쯤 채비하여 아침으로 국수 한그릇 먹고 11시 정도까지 돌아다니는 시간이 가장 걷기에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홍콩이 처음인 이방인에게 홍콩 완차이 부근의 모습은 생경하기만 하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화려한 밤 풍경을 주로 접해왔던 여행객에게 오래된 홍콩의 뒷골목은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분명 홍콩 공항에서 고속열차인 AEL을 타고 오는 동안 보았던 홍콩의 건물들이나 홍콩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주변의 건물들은 최신식이었던 것 같은데, 해안도로에서 불과 한 블럭 떨어진 거리의 풍경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건물들은 높은데 많이 낡았다. 벽은 바랠 대로 바래서 곰팡이가 잔뜩 슬어있었고, 창문은 언제라도 깨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이 낡아있었으며, 사람들은 소위 촌스럽고 굉장히 내추럴(?)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홍콩섬 안은 이동하기에 굉장히 단순해서 정확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도도 딱히 필요없다. 먼 거리는 트램으로, 짧은 거리는 도보로 웬만큼 커버가 가능하다. 나는 완차이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았는데, 체크인을 하고 숙소 주변만 지도 상에서 대강 익히고선 시선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녔던 것 같다.


붉은 색이 참 잘 어울리는 홍콩의 시장 풍경


완차이 인근 큰 빌딩 사이로 웬 시장들이 퍽 많다. 당연히 예정이 없던 곳들이다. 레이디스마켓 같은 유명한 시장도 아닌 것들이, 여기저기 산재해있다. 지도를 안 봐서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곳들이지만, 조금 지나다보면 이렇게 빨간 천막을 치고 영업하는 채소가게, 정육점, 생선가게, 마사지샵 등이 줄 지어 있다. 정말 딱 90년대의 한국 재래시장 혹은 흡사 여타 동남아 국가 중 하나에 온 느낌이다. 이미 우리나라만 해도 고기를 냉장시설 외에 꺼내놓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나라보다도 한참 더운 홍콩에서도 생고기들이 길가에 걸려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평균소득이 그렇게나 높은 홍콩이지만 서민들의 생활상만을 보면 기본적인 위생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거리의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사뭇 낯설기만 하다. 교체할 때가 다 되어 깜빡거리던 정육점의 네온싸인마저 참 홍콩스럽다고 느꼈다.



역시나 중국 문화권에 있기도 하고, 지리적으로 동남아의 영향도 많이 받은 곳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취급하지 않는 식재료나 과일도 참 많다. 훈제오리는 물론이요, 토막난 채로 껍질이 벗겨진 생선이나, 돼지 혀나, 거북이, 뱀 등. 그리고 이름 모를 과일들. 세계는 이미 글로벌화되어가고 있는데 난 아직도 선뜻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식재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가게들 사이사이로는 저렴한 국수 등을 판매하는 노포나 좌판 등의 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야외 천막 그늘에 설치된 접이식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 덥지 말라고 좌석 방향으로 틀어주는 선풍기 틀엔 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것까지 어찌나 예스럽던지(?).



어느 시장을 가나 분주한 모습들이다. 마냥 쉬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나 해야할까.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재래시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몇몇 곳을 제외하면, 활기띈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없다. 오죽하면 가장 바빠야할 명절에도 텅빈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뉴스가 매해 나오겠나. 친절하게도 재래시장을 찾는 시민의 숫자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까지 그래프까지 동원하여 상세하게 보여주곤 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홍콩의 재래시장은 아직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마냥 바빠보인다고 해서 경제적 사정까지 좋다고 장담할 길은 없다. 속사정은 상인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야 알 도리가 없는 법.


홍콩에도 대형마트들이 들어서 있을테니 점차 재래시장이 위협받고 있을 것이라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 유통 상황을 비춰보면, 이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마트들조차도 로켓배송이니, 새벽배송이니 하는 전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경쟁할 수 없는 스마트세상이 되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재래시장이 다시금 예전과 같은 위상을 얻을 가능성은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홍콩의 재래시장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언젠가는 우리나라와 같은 마켓 물류시스템이 갖춰지면(우리나라보다 훨씬 좁은 땅덩어리니 머지 않았을 것 같다만) 점차 재래시장이 설 자리를 잃어갈 것임엔 틀림이 없다. 30년 후에 보는 홍콩의 시장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청결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외려 활기가 없는 모습일 가능성이 높아만 보이는 게 현실이다. 경제적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현실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다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누구에게나 너무도 쉬운 일이니까.




이번 홍콩 여행에서는 정말 우연하게 몇몇 시장들을 잠깐잠깐 둘러본 것에 그쳤다. 목적을 갖고 간 것도, 딱히 무엇을 보고 싶어 간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 지나간 사진이나 들춰보며 당시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도 있다.


6월에 예정된 홍콩 여행에서는 조금 더 홍콩의 재래시장 모습들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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