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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 저작권

저작권을 지켜야 하는 진짜 이유는?

by 최호림

어린 시절부터 사랑해 온 가수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팬으로서 하늘나라에서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할 그를 위해 특별한 추모를 하고 싶었다. 깊은 고민 끝에 한 인터넷 신문사에 추모 기고문을 보냈고, 다행히 편집부의 손길을 거쳐 내 글은 기사화되어 세상에 소개되었다.

https://naver.me/5PlholLd

그러나 그 뿌듯함도 잠시뿐이었다. 기사 채택 후 얼마가 지났을까?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채널에서 출처조차 밝히지 않은 채 내가 쓴 글을 낭독하고, 구독과 ‘좋아요’를 유도하는 영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문장, 한 문장에 애정과 애틋함을 담아 정성껏 쓴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일면식도 없는 유튜버가 내 글을 자신의 채널에서 쇼츠 영상으로 재가공해 구독자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소비시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이십여 장이 넘는 음반을 공들여 발표해 왔지만, 저작권을 무시한 MP3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자신의 앨범이 단돈 200원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허탈했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https://naver.me/FCrnVOqH


음원뿐만 이겠는가? 지류(紙類)의 대표적인 산물인 책과 신문은 이제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하나만 있으면 굳이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전자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전자책을 출판, 유통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급격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타인의 창작물에 더욱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문명의 이기(文明의 利器)가 되었지만, 동시에 이는 양날의 검이 되어 창작물의 무단 복제와 공유, 다운로드 또한 놀라울 만큼 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저작권 제도 역시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춰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저작권이 꼭 창작자만의 몫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분명하지만 만일, 고도화되는 디지털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는 실효성을 잃은 허울뿐인 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상황이 된다면 창작자들의 창작 의욕 저하는 물론 이 때문에 매번 새롭고 신선한 창작물을 소비하려는 이용자들의 니즈 또한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 좋아하는 가수, 작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꿈을 키우며, 삶의 방향을 정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창작물을 우리 일상 속으로 가져왔고, 그중에 선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작품들도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당신이 사랑했던 그 창작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창작자들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 창작 활동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겠지만 그들이 만든 음악과 영상은 꾸준히 수많은 콘텐츠에 재사용되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K-컬처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도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 무대를 휩쓸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글로벌 시상식을 장식하며, 웹툰과 게임까지도 세계인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문화강국’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과의 민낯을 보자면 시쳇말로 “쌍팔년도”에 사회체육은 엉망인데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따오면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콘텐츠는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지만, 정작 그 콘텐츠를 만든 창작자들은 열악한 창작 환경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창작물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고 이를 부정할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K-컬처’라는 이름 아래 빛나는 성과들이 알고 보면 창작자 개인의 희생과 불안정한 노동 현실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작권은 더욱 창작자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 주어야 한다. 공정한 보상 체계와 투명한 수익 분배, 그리고 저작물의 무단 이용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장치가 마련될 때, 비로소 창작자는 오로지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다.


진정한 문화강국은 창작자들이 존중받는 시스템 위에서 만들어진다. K-컬처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면, 이제는 창작자 개인의 헌신이 아닌, 사회와 제도가 함께 지켜주는 저작권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제 지켜야 할 것은 ‘성과’가 아니라 ‘창작자’들이다. 그들이 살아야, K-컬처도 살아남는다.


내가 지금껏 사랑해 온 한 가수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1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며, 나 역시 그가

만든 멜로디와 가사 통해 현재 까지도 위로받곤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역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가 남긴 음악만큼은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기억되어 우리가 아닌 새로운 세대에게도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저작권을 지킨다는 것은, 창작자의 삶과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의 작품이 잊히지 않도록 돕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잊히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창작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저작권을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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