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디까지 진짜인가?

같은 인물, 다른 이야기… 엇갈린 이혼 서사가 남긴 신뢰의 균열

by 최호림

결혼생활 24년을 해온 중년 남자로서, 내게 요즘 TV 속 '이혼 프로그램'은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래서인지 본방송을 놓치면 OTT를 뒤져서라도 챙겨본다. 화면 속 부부들의 날 선 갈등을 보며 나 자신을 투영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방송들을 보며 마음 한 편의 '물음표'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과연 저들이 정말 벼랑 끝에 선 '이혼 위기'의 부부가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갈등의 깊이를 호소하는 출연자들의 목소리 이면에서, 본질과는 다른 또 다른 목적이 읽히는 듯한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정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로서 느껴지는 미묘한 거리감은 점점 커져갔다.


며칠 전,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다 이혼 예능이 화제에 올랐다. 미용사는 최근 출연한 부부 이야기를 꺼내며 "어디서 본 것 같다"라고 했다. 곁에 있던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특정 출연자의 얼굴이 지나치게 낯익다는 반응이었다. 이혼 콘텐츠가 우리 일상의 대화 주제가 될 만큼 대중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당혹감은 곧 현실이 됐다.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바로 그 부부를 다시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현재 심각한 이혼 고민 중이라 소개되던 그들은, 과거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조금 다른 서사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대형 방송사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출연자를 섭외했을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차분히 지켜봤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무속인의 기운을 느껴 남편에게 3년 전부터 퇴직을 권유했다."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


"남편이 회사에서 명예퇴직 권유를 받아 3년 고민 끝에 퇴사했다."

(과거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 재방송)


같은 인물, 같은 시기, 같은 사건(퇴직)을 두고 설명은 달랐다. 3년이라는 시간은 같았지만, 퇴사의 배경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제시됐다. 단순히 강조점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이야기의 출발선이 서로 달라 보였다.


물론 방송의 편집 방향이나 강조점에 따라 서사의 초점이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이 다르게 전달되는 순간, 시청자가 쌓아온 공감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청자는 방송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출연자의 고통에 이입한다. 하지만 그 토대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시청자가 기댈 수 있는 신뢰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혼이라는 소재가 높은 시청률을 이끄는 장르가 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정직함은 필요하다. 이혼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그 아픔이 자극적인 '위기 콘텐츠'로만 소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이혼은 더 이상 숨겨야 할 인생의 흠으로만 여겨지는 시대가 아니다. 방송 출연 이후 유튜브 활동 등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그 변화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절박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리얼리티라는 이름 아래 정교하게 기획된 하나의 콘텐츠에 강제로 소비당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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